
Orkhon Valley Cultural Landscape
© D.Dojnyam
상세정보
국가: 몽골(Mongolia)
위치 : N47 33 24 E102 49 53
등재연도 : 2004
요약
121,967ha의 오르콘 계곡 문화 경관에는 오르콘 강 양 언덕에 넓은 목초지가 있고,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 유적이 남아있다. 또 13세기-14세기 칭기즈칸 제국의 수도였던 카르코럼이 있다. 기념물의 유적들은 유목 목축 사회와 행정 및 종교 센터 사이의 공생적 관계와 중앙 아시아 역사에서 오르콘 계곡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곳은 몽고의 유목민들이 여전히 가축을 방목하고 있는 목초지이기도 하다.
영문명
Orkhon Valley Cultural Landscape
등재기준
기준 (ii): 오르콘 계곡은 광대한 교역망을 개발하고 거대한 행정, 상업, 군사, 종교 중심지를 만든 유목 문화가 얼마나 탄탄했고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도시의 중심이 지탱했던 제국은 아시아 전체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들에 영향을 미쳤으며, 반대로 동과 서 모두의 영향을 흡수했다. 진정한 의미의 인류가치의 교환이다.
기준 (iii): 지난 2000년 동안 오르콘 벨리의 발전을 지탱했던 것은 강한 유목 목축 문화였다. 이 문화는 지금도 존재하며 몽고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경관과 어울러지는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준(iv): 오르콘 계곡은 인류 역사의 몇몇 중요한 단계를 설명해주는 뛰어난 예이다. 가장 먼저 몽고 제국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터키 권력의 몽고식 변형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드쁘홍 사원(Tuvkhun hermitage monastery, 번역자 주)은 불교의 몽고식 발전이었다. 넷째, Khar Balgas(번역자 주)는 위구르 제국 수도의 도시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배경
지금의 몽고는 몽고로 알려졌던 역사에서 광대했던 내륙 아시아(Inner Asian)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13세기에서 14세기 동안 한국에서 헝가리까지, 인도 아대륙과 동남 아시아의 일부를 제외한 사실상 아시아 전지역에 해당하는 징키스칸 제국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유사이래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이었다. 몽고가 점령했던 사회들에는 몽고에 대한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대부분 우호적이지 않은 기록들이다. 반면 몽고의 기록들은 징기스칸의 신과도 같은 군사적 천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성공이 군사 기술뿐 아니라 정교한 행정 체계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또 제국이 약 2세기 동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과 이란, 러시아 등 다른 문화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몽고와 몽고인들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주요 국가들의 역사 발전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쳐왔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파급을 줬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몽고에 거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다. 몽고인들은 지난 2000년 동안 합종연횡하며 이 지역에 살았던 여러 유목 민족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BC 3세기에서 AD 9세기까지 발생했던 훈(Hun), 샨비(Synabi), Jujuan(번역자 주), 투르크(Turkic), 위그루 제국 같은 중앙화된 국가들이다. 수백 년에 걸쳐, 유목 민족 중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해 유럽의 훈 제국을 건설했도, 일부는 이란과 인도, 중국으로 옮겨갔다.
징기스칸의 제국은 2세기 동안 중앙화된 통제를 통해 이런 흐름을 바꿔놓았다. 또 다른 민족들에 앞서는 기술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정교한 군사 및 정치 체계를 수립했었다. 몽고인들은 징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의 지휘 아래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16세기 초 제국이 기울면서, 몽고는 다시 한 번 전쟁에 휩싸였다. 17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와 만주 지배하의 중국이 몽고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몽고는 쪼개졌다. (몽고의 남부인) 내부 몽고는 중국에 예속됐고, 러시아는 외부 몽고에 영향력을 확대했다. 1921년까지 러시아가 외부 몽고를 지배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1924년 모스크바의 통제 아래 몽고 인민 공화국이 수립됐다. 몽고는 1946년 독립 국가가 됐다.
현재 중국의 영토인 내몽고에는 몽고 인민 공화국보다 더 많은 몽고인들이 살고 있다. 각각 350만 명과 270만 명이다.
유산면적
121,967ha
완충지역
61,044ha
참고번호
1081rev
본문
오르콘 계곡은 광대한 교역망을 개발하고 거대한 행정, 상업, 군사, 종교 중심지를 만든 유목 문화가 얼마나 탄탄했고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국은 아시아 전체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들에 영향을 미쳤으며, 반대로 동과 서 모두의 영향을 흡수했다. 진정한 의미의 인류가치의 교환이다. 이 문화는 지금도 존재하며 몽고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경관과 어울러지는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계곡은 그 자체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몇 단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몽고 제국의 중심으로서의 역할, 터키 권력의 몽고식 변형, 불교의 몽고식 발전인 드쁘홍 사원, 위그르 제국의 수도인 Khar Balgas를 통해서다.
문화 경관은 몽고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인 울란 바토르(Ulan Bator)에서 남서쪽으로 360km 떨어진 곳으로 옆으로 오르콘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러시아와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바이칼 호(Lake Baikal)로 이어진다. 넓은 몽고 영토의 90% 이상은 목초지이거나 사막으로 된 황무지이다. 평균 고도 또한 1500m에 달한다. 물이 아주 귀하기 때문에 강 계곡은 아주 중요한 장소이며 여러 동물들의 중심 거주지 역할을 하고 있다. 몽고에서 말과 양, 염소, 소 등을 키우는 유목 목축 생활은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기술적 요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몽고 문화의 심장과도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역으로 몽고의 유목 문화는 한층 넓고 특색있는 유목 목축 문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몽고 외에도 많은 다른 민족들이 있고 중앙 아시아 전역을 아우른다. 이 유목 문화는 최소 2000년 동안 경제와 정치, 문화를 통틀어 아시아 전역과 유럽 일부의 정착 문화권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유목민들은 가축을 몰고 때로는 광대한 거리의 목초지를 오가며 일생을 보낸다. 이들은 엄격하게 규제되고 통제된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토 전역을 이동하며 생활한다.이는 특정 자격과 목축지의 이용, 영토에 대한 권리, 사회 단위와 관련이 있다. 이런 이동의 기초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정점이다. 이는 도시, 정부, 무역, 상업 중심, 사원이나 장레 지역 같은 종교적 기념물이 될 수 있다. 이런 고정점의 밀도는 광대한 유라시아 스텝 지대 전역에 걸쳐 크게 차이가 있다.
오르콘 계곡 문화 경관은 유목 목축 생활과 거주지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고,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이 밀집해 있는 몽고내 핵심 지역 중 하나이다. 오르콘 계곡은 아시아 스텝 지대 전역을 아우르는 교통의 중심이다. 위그르 제국의 수도는 물론 스스로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라고 일컫는 몽고 제국의 수도가 됐다.
넓고 얕은 강 계곡은 물과 거주지, 스텝 지역 전역에 걸친 고대 무역로의 출발점으로 역할에 필요한 핵심 기반을 제공했다. 실크로드가 여기에 포함된다. 또 중앙 아시아에 본거지를 둔 두 제국의 중심으로 발전을 했다.
주요 연속유산은 일반에게 공개가 되어 있다. 호쇼 차이담의 터키 기념물, Khar Balgas와 카르코럼의 유물들, Erdene Zuu Monastery, Shankh Western Monastery, Palace at Doit Hill, Talyn Dorvoljin 고대 도시, Har Bondgor와 Bayangol Am, 많은 deer stone과 고분들, Hangai Ovoo와 Undor Sant의 영산들, 오랜 유목 목축 생활 전통이 여기에 포함된다.
출처: UNESCO/CLT/W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