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이 기록물은 3장의 초대형 네거티브 유리원판(1.35×0.94m, 53”x37”)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19세기의 습식 공정 네거티브로 알려져 있다. 이 거대한 사진은 훗날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지인 시드니 항구의 1875년 당시, 아직은 원시 정글에 둘러싸인 채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려고 하는 식민지 도시의 경관을 담고 있다.
1875년은 국제 사진 역사상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저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는 2명의 식민지 혁신가들이 ‘습판 공정 기술을 이용하여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진’을 찍어내는 방법을 고안하였고, 이로써 19세기 사진 기술은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졌다. 독일 태생의 부유한 금광업자이자 열정적인 사진가였던 베른하르트 홀터만(Bernhardt Holtermann, 1838~1885)은 자신의 제2의 고향을 사진으로 찍어 전세계에 홍보하기로 결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서 훈련 받은 전문 사진 작가였던 찰스 베일리스(Charles Bayliss, 1850~1897)의 주도 아래 두 남자는, 23m(87피트) 높이의 전용 탑을 제작하고 그 끝에 올린 3㎡(10피트) 크기의 방을 거대한 카메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항구를 담은 일련의 습식 공정의 대형 네거티브를 찍었고 이 사진을 가지고 전 세계를 여행했다.
이 기술적 위업은 당시에 발행된 지역 신문과 국내외 신문을 통해 알려졌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적 자긍심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음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제적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홀터만과 베일리스의 기술적 성과인 이 초대형 네거티브 유리원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19세기에 사진이라는 매체가 확산되는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등재연도
2017년
외국어 표기
Giant Glass Plate Negatives of Sydney Harbour
소장 및 관리기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본문
세계적 중요성
홀터만의 초대형 네거티브 사진이 나타난 때는 1875년으로, 이 사진은 세계 사진역사상 19세기에 제작된 대형 습판 네거티브 사진으로 오늘날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럽의 몇몇 컬렉션 중에 대형 네거티브 몇 점이 현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홀터만의 네거티브보다 더 큰 작품은 없다. 게다가 홀터만의 사진은 사진술이 발명된 지 40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때에 진보와 발명의 세계적 중심지의 변방이라고 할만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찍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더 특별하다. 이 사진들은 사진으로서 이룰 수 있는 성취의 절정이었다. 또한 이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이미지는 당시 대영제국의 맨 끝자락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의 항구이자 이 나라의 첫 번째 수도였던 시드니의 모습을 아직 독립도 하지 못한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찍은 것이었다.
홀터만과 베일리스는 이 초대형 네거티브를 통해 사진계의 최전선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모험적 사업을 시도한 것이었고 그 결과 세계 만방에 호주 사진계의 혁신성과 천재성을 증명하는 고유한 기록 증거를 남겼다. 이 네거티브는 두 사람이 사진 기술 현장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 시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세계의 변방에서도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음을 세계에 알린 사례였다. 홀터만은 이렇게 표현했다. ‘세계의 정보를 생산해야 함에 있어 재현해야 할 대상을 왜곡 없이 재현해 내는 기술, 즉 사진 기술이라는 정확한 매체를 동원했다.’ 만약 홀터만과 베일리스가 이룬 기술적 성취를 복원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19세기 사진이라는 매체의 보급에 대해서 세계인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초대형 습식 유리원판의 규모는 식민지 사진가의 야심과 그것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이 사진들은 국내의 관람객을 넘어서서 전 세계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기록과 증거로서의 특징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제작되었다.
사진계의 선각자인 사진가와 후원자가 감행한 여행의 수준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자긍심 넘치는 비영국계의 오스트레일리아 이주민이었던 홀터만(독일계)은 이 대형 네거티브를 통해 그의 도전 정신을 증명했다. 아울러 이 네거티브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깨지기 쉬운 초대형 습식 네거티브가 19세기에 만들어지고 보존되기까지 정말 기적에 가까운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선각자의 안목으로 재정 후원자이자 공동작업자와 함께 한 야심 넘치는 젊은 사진가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깨지기 쉬운 유리 네거티브 컬렉션을 오랜 세월(80년 이상) 동안 안전하게 보관했다.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지한 개인 및 단체가 있어서 주요한 유물 수집 기관에 보존을 의뢰했다. 이러한 세 가지 기적을 통해 오늘날까지 보존된 홀터만의 초대형 네거티브 유리원판은 사진 역사상 독보적인 유산이며 이러한 지위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