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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
설명 : © Gloucestershire Archives, Song of Slaves in Barbados
요약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African Song or Chant from Barbados)’는 17세기 중반부터 1824년까지 노예시대에 만들어진 기록물이다. 이 노래 가사는 바베이도스의 사탕수수밭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이 음송하던 노동요가 기록된 현전하는 유일한 필사 문서이다. 이 음악은 단조로써 다른 바베이도스의 민요가 주로 장조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악보에는 박자 기호가 적혀 있지 않다. 윌리엄 디킨스(William Dickson) 박사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때는 에드워드 헤이(Edward Hay)가 1772년부터 1779년까지 바베이도스(과거에는 ‘Barbadoes’라고 표기했으나 지금은 ‘Barbados’로 표기한다)를 통치했던 시기에 그의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때였다. 이 노래를 듣고 악보로 기록한 사람은 그랜빌 샤프(Granville Sharpe, 1735~1813)로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 운동의 선구자였다. 이 기록물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바베이도스의 기록유산이다. 이 악보에 적힌 노래는 당시의 바베이도스 노예들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독특한 표현이 담겨 있다. 또한 이 노래는 억압받은 사람들이 압제에 저항하여 추악한 노예제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의 전략으로써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이 기록물은 세계적 중요성이 있다.
국가
바베이도스(Barbados), 영국(United Kingdom)
등재연도
2017년
외국어 표기
An African Song or Chant from Barbados
소장 및 관리기관
글로스터셔 기록관(Gloucestershire Archives)
본문
세계적 중요성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라고 불리는 이 악보(음계와 가사)는 이와 같은 유형의 자료로서는 유일한 기록물이다. 1688년 한스 슬론(Hans Sloane, 1660~1753) 박사가 『마데라 섬, 바베이도스, 네비스 섬, 세인트 크리스토퍼, 자메이카 여행기(A Voyage in the Islands of Madera, Barbados, Nieves, and Jamaica)』 제1권에 자메이카에서 기록한 3곡의 아프리카 노래의 악보를 실었는데, 그 노래들보다 연대로 보아서 비록 100년 가량 늦기는 하지만 이 노래는 축제나 행사에서 음악가나 전문 댄서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 ‘노예들이 삶 속에 부른 노동요’라는 점에서 주목 받을 만하다. 완벽하게 작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슬론의 악보와는 달리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는 완벽한 가사와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울러 슬론의 책이 인쇄본인 것과 달리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는 직접 손으로 필사한 악보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기록물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고 고유하다.
가창자와 청자, 그리고 필사자가 서로 문화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인데다가 이 노래들이 인기 있었던 당시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여 연구할 만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록은 몇 가지 사실 때문에 세계적 중요성이 있다. 식민지 바베이도스에 관한 초기 저작물들은 대부분 이 섬의 자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곳의 수많은 노예들은 식민지 여행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노예들은 침묵했거나 침묵을 강요당한 다수였을 뿐이므로 식민주의자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때문에 초기 식민지 기록에서 노예란 주로 사고 파는 물건으로써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노예에게 들판에서 무슨 일을 시킬지, 노예에게 식량을 얼마나 주고 옷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노예를 유지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등과 같은 노예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문제들만 다루었다. 유럽의 문화패권은 노래를 비롯한 노예들의 문화 전반을 결정했기 때문에, 아프리카 노예의 문화를 하찮게 여기고 보존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노예 문화를 짓밟는 것이 노예제도를 유지했던 지역의 현실이었다
노예 문화는 흔히 ‘저속한’ 것으로 여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베이도스의 아프리카 노래 또는 찬트’와 같은 악보(음계와 가사) 자료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희귀한 기록물이다. 노예 문화는 구술 문화이기 때문에 제3자가 그 음악을 옮겨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노래의 곡과 가사에는 노예들의 삶이 온전히 녹아 있다. 노예들은 노동을 하는 동안 대화를 금지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렇지만 노동을 할 때 노래하는 것은 허락되었는데 그 이유는 식민지 대농장의 관리인이 생각하기에 노예가 노래를 부르면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노예 문화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식민지 지배자 계급에 속하는 한 사람이 이 노래 가사를 보존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죽음과 같은 고통을 받고 살았던 노예들은 가사와 곡을 악보로 기록할 쓰기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했으므로, 이 기록이 남겨졌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예들은 노래 부르기가 허용된 덕분에 노래로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구술로써 남길 수 있었다. 서던(Southern)은 “…… 그들은 유형의 자료를 하나도 남길 수 없었지만 풍부한 문화 전통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그들은 ‘노래를 통해서’ 이 전통을 자녀들에게 전수했다”라고 썼다. 결과적으로 노예들에게 예술은 저항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존 수단이었다. 노예들은 자신의 운명이 전적으로 주인(마사(massa))이 베푸는 자비에 달려 있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동시에 이 노래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어떻게 소망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노예들은 노래와 음악을 악보로 기록할 방법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아 불렀던 노동요가 적힌 이 악보가 바베이도스에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적 중요성을 지닌 주목할 만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바베이도스에서 음악 관련 문서가 발굴되는 일은 거의 드물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바베이도스 음악에 관한 자료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바베이도스는 음악적인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카리브 해 음악에 대한 현대의 저술에서도 바베이도스가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존 로버츠(John Roberts)가 쓴 『두 세계의 흑인 음악(Black Music of Two Worlds)』만이 유일하게 바베이도스 음악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