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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 in Essen]

  •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 제목 :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ia Alberth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노드라인 베스트팔렌 주(State of North Rhine-Westphalia)
  • 좌표 N51 29 29|||E7 2 46
  • 등재연도 2001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졸버레인 제12탄광 공업 지대는 산업 전반적 맥락에 현대건축운동의 설계 개념을 적용한 우수 사례라는 점에서 뛰어난 산업적 기념물로 인정된다.

    기준 (ⅲ) : 졸버레인 제12탄광 공업 지대의 기술과 기타 구조물은 유럽의 전통적 중공업 발달의 중요시기를 대표하며, 그러한 산업 발달에 따라 건축 설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보여 준다.

요약
노스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에 있는 졸버레인(Zollverein) 탄광 산업단지에는 역사적 탄광 기반 시설 유적과 뛰어난 건축적 가치를 지닌 20세기 건축물이 있다.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는 150년에 걸쳐 발달과 쇠락을 되풀이한 탄광 산업의 흔적을 보여주는 훌륭한 유산이다.
목차
참고번호
975
본문

졸버레인 제12탄광 공업 지대의 기술과 기타 구조물은 유럽의 전통적 중공업 발달의 중요 시기를 대표하며, 산업 발달에 맞먹는 건축 설계 기술의 적극적 활용을 보여준다. 이 채굴 갱은 그 건물들이 산업 전반적 맥락에 현대건축운동(Modern Movement in Architecture)의 설계 개념을 적용한 우수 사례라는 점에서 뛰어난 산업 기념물로 간주된다. 13.2㎢ 달하는 졸버레인의 광구(鑛區, mining claim)권 불하(拂下) 신청은 1847년 12월에 승인되었다. 당시 지역 최북단 광산이었던 졸버레인은 땅속 깊이 평균 두께 1.17m 탄층이 형성된 겔젠키르헨(Gelsenkirchen) 배사(背斜)층에 속했다.

채굴은 19세기 중반 지하 120m에서 시작되어 1,200m 깊이(14층)까지 이르렀는데, 채굴 막바지에 지하 통로의 총 길이는 120㎞에 달했다. 통로는 1847년〜1932년에 만든 갱도 12개와 이어졌다. 졸버레인 제12탄광 지대가 생긴 이후 그 이전에 생긴 갱도는 사람과 보급품을 옮기는 용도로만 사용되었고, 채굴 석탄은 전부 신설 갱도를 통해 광산이 문을 닫은 1986년까지 운반되었다. 1847년에 쾰른 민덴선에 오베르하우젠(Oberhausen)과 함(Hamm) 구간이 증설되었는데, 졸버레인의 초기 갱도들은 석탄과 코크스의 용이한 수송을 감안하여 이곳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설치되었다.

여객용 기차역의 운용은 그로부터 40년 뒤에야 시작되었다. 아울러 졸버레인의 북서쪽 모퉁이를 가로지르는 엠셔 계곡 노선(Emscher Valley line)과의 연결선이 1847년에 개통되었고, 그 뒤 80년에 걸쳐 내부 연결노선이 연이어 개통되었다. 노선들은 1926년에 페라이니히테 슈탈베르케가 졸버레인을 인수한 이후, 근처의 보니파시우스(Bonifacius) 탄광과도 이어졌다. 채광 기술은 곡괭이를 사용한 방식에서 절탄기(coal cutting) 사용으로 발전하였다. 졸버레인에서 채굴되는 석탄은 코크스(cokes) 제조에 특히 적합해서, 1857년에는 최초의 굴뚝형 코크스 제조용 가마가 이곳에 지어졌다.

코크스 제조 공장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그 범위를 크게 넓혔다. 그러나 철강 회사인 페라이니히테 슈탈베르케(Vereinigte Stahlwerke)가 1926년에 졸버레인 탄광을 인수한 뒤, 그곳에서 채굴된 석탄을 모두 가공 처리할 새로운 코크스 공장을 만들었다. 졸버레인 탄광에서 코크스 생산이 재개된 것은 당시 지역 탄광들의 지주 회사였던 겔젠키르헨 베르크베르크스(Gelsenkirchen Bergwerks AG)가 노드슈턴(Nordstern) 공장을 보완할 새로운 코크스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 1950년대 후반이었다.

각각 24개의 가마를 보유한 8개 구역으로 이루어진 이 새로운 공장은 1961년에 코크스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1일 생산량은 8,600t에 달하였으며 타르, 황산, 벤젠, 암모늄 복합물, 가스 등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시설도 있었다. 공장은 코크스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1993년에 문을 닫았다. 석탄 채굴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은 탄갱 구덩이 속에 퇴적되어 있는데, 1895년, 제1·2 갱도 동쪽지역에 있던 초창기에 생긴 폐기물 더미 위에 나무를 심어 광산 임원을 위한 휴양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갱도 서쪽의 두 번째 폐기물 더미는 1932년부터 졸버레인 제1, 2 채굴 갱의 보일러 재와 석탄 슬러리를 건조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880년부터 생긴 폐기물 더미는 광부들이 기거할 주택의 대지를 확보하기 위해 1958년에 일부 제거되기도 하였다. 다른 폐기물 더미는 가파르게 파인 탄층이나 버려진 이착륙장에서 석탄이 채굴된 뒤 생긴 공동(空洞)을 채우는 데 사용되었다. 집약적 채굴 방식 때문에 몇 곳은 토양이 침하되었는데 심한 경우는 깊이가 25m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주택과 기타 시설의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파손되어 시설 자체를 제거하기도 했다.

엠셔 지역(Emscher Zone)의 경우, 광업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입었는데 물 문제로 인해 토양 침하 현상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엠셔 지역은 물이 중력의 방향으로 흘러내리면서 거대한 규모의 늪지가 형성된 것이다. 지역의 행정 당국과 기업들이 창설한 엠셔 협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수장 이용이나 간척지 조성 프로젝트들을 실시하였다. 19세기 말에 이러한 프로젝트에 동원된 노동자는 꾸준히 늘어나 5,000여 명에 이르렀고, 20세기에는 5,000〜8,000여 명 정도로 증가하였다.

1847년에는 별도의 택지 개발자가 없어서 노동자들이 기거할 주택을 직접 짓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건설 프로젝트는 탄광 운용 프로그램과 통합되었다. 1860년에는 넓은 대지를 구입하여 공동 주택 146개를 마련하였으며, 당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의 수는 710명에 달했다. 이 ‘헤게만스호프 탄광촌(Hegemannshof Colony)’은 꾸준히 확장되었고(세기가 전환될 무렵 90㏊ 가까이 됨), 이후 ‘오테캄스호프(Ottekampshof)’와 ‘바이젠(Beisen)’이라는 탄광촌 2개가 더 생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탄광에 속한 지대는 720㏊까지 늘어났지만, 이는 당시 5,000여 명에 달하는 인력을 수용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광부들이 기거할 주택이 새로이 개발되었는데, 여기에는 특히 광부주택신탁청이 건설한 주택단지가 포함된다. 1920년대 후반에 연봉제 직원과 임원에게는 공동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8,000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위한 주택은 3,000채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인 1950년대부터는 칼데키르헤(Kaldekirche), 베스터브루흐(Westerbruch), 카피트라커(Kapitlacker) 등 공동 주택 구획을 포함한 새로운 주택단지를 페라이니히테 슈탈베르케가 설립한 주택협회에서 만들었다. 또 광부들 스스로가 글뤼카우프(Glückauf) 주택 단지를 조성하였다. 주택은 개인이 소유하였으며, 수습생을 위한 ‘페스탈로치 마을(Pestalozzi village)’을 2개 만들기도 했다. 1958년에는 8,000명의 인력이 7,061개의 주거지를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이곳은 탄광 운용 초기부터 직원들에게 저가로 음식이나 공업제품을 판매하는 시설을 갖추었다. 시설은 ‘조합’ 기반으로 운용되어, 그 이윤은 연간 배당금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6개 판매점으로 구성된 체계는 페라이니히테 슈탈베르케가 인수한 이후 단일 회사에서 운영하였다.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업적 업체들과 경쟁하느라 판매점을 서서히 감축하였고, 그나마 남은 판매점도 1970년대에 매각하였다.

졸버레인 탄광은 1920년대 중반부터 피고용자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최초의 복지센터는 1928년(1938년 개축), 두 번째는 1934년에 지었다. 1953년에는 프리츠 슈프가 설계한 대규모 현대적 복지센터를 지었다. 그러나 졸버레인 탄광의 복지시설은 루어 지역의 전반적인 흐름에 따라 1960년대 전반에 폐쇄되었다.

• 탄광
본래 만들었던 탄광에는 ‘말라코브 탑(Malakow towers)’의 기반만 남았다. 이 탑들은 현재의 헤드기어(headgear) 옆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프리츠 슈프(Fritz Schupp)가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설계한 것이다. 1922년에 만든 주 저장고는 강화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되어 있다. 갱구(坑口)의 욕실은 벽돌 홀의 형태이며 광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복합 건축물은 1906년에 웅장한 행정 건물, 1898년에 탄광 관리자의 저택, 1878년에 탄광 임원들의 주택 등이 증축되면서 완성되었다.

• 코크스 공장
졸버레인의 각 탄광에 있던 코크스 공장들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1993년 폐쇄된 이후에도 중앙 공장만은 보존되었다. 코크스 제조용 가마들은 옛 쾰른 민덴 철로와 평행을 이루며 1㎞ 가까이 뻗어 있다. 광산용 웨곤푸셔, 소화장, 석탄 찌꺼기 제거장, 적재장 등의 공장 설비는 가스·부산물 처리 설비, 부속 건물 등과 함께 모두 온전히 남아 있다.

• 철로
쾰른 민덴선(Cologne-Minden line), 베르기슈 메르키슈 선(Bergische-Märkische line) 등 본래의 주 철로들은 도이체 반노선(Bahn AG)의 일부로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쾰른-민덴선에서 탄광을 거쳐 라인 헤르네 운하까지 이어지는 철로도 보존되어 있다.

• 폐기물 더미
탄광 폐기물 더미는 대부분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중 일부에는 나무를 심어 광산의 임원을 위한 휴양공간으로 사용한다.

• 광부들의 숙소
옛 헤게만스호프(Hegemannshof) 탄광촌과 오테캄스호프(Ottekampshof) 탄광촌 지역에 있던 주택은 아직 상당수 남아 있다. 이 주택들은 대체로 십자형으로 된 4개의 주거용 건물로, 커다란 정원이 딸린 벽돌 건물이다.

• 판매와 복지 시설
판매 시설 2개가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전쟁 때 파손되었으므로 대규모로 재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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