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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White City of Tel-Aviv - the Modern Movement]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 제목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 설명 : © UNESCO / Author : Yvon Fruneau
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상세정보

  • 국가 이스라엘(Israel)
  • 위치
  • 좌표 N32 4 0|||E34 46 60
  • 등재연도 2003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는 20세기 전반의 건축 및 도시 계획에서 모더니즘 운동의 다양한 경향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중요한 사례이다. 이러한 영향은 장소의 문화와 기후 조건에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 전통과 융합되었다.

    기준 (ⅳ)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는 20세기 초기의 새로운 도시 계획과 건축이 특수한 문화적·지리적 환경에 적용된 우수한 사례이다.

요약
텔-아비브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기간인 1909년에 건설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화이트시티’는, 1930년 초부터 1950년대까지 패트릭 게디스(Sir Patrick Geddes)의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현대적이고 기능적인 도시로 건설되었다. 유럽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이스라엘로 이민 온 건축가들이 화이트시티의 건물을 설계했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적 배경 속에서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뛰어난 건축적 조화를 창조해 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텔-아비브는 1909년에 지중해의 동부 해안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성벽으로 에워싸인 항구 도시 야파(Yāfa)의 바로 북쪽에 있다. 텔-아비브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시기(1917~1948)에 번화한 도심으로 개발되어, 이스라엘 경제 및 수도권의 최고 핵심지역이 되었다. 이 유산은 중앙의 화이트시티, 레브 하이르(Lev Hayir) 및 로스차일드 거리, 그리고 비알리크(Bialik) 지역 등 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지역은 완충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텔-아비브 화이트시티는 20세기 전반의 대규모로 이루어진 혁신적 도시계획의 우수한 사례이다. 화이트시티의 건축은 유럽에서의 모더니즘 운동이 발전한 것과 같이 건축 분야에서 모더니즘 운동을 반영한 종합적 결과물이었다. 화이트시티는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기후 조건을 고려하여 모더니즘 건축을 적용한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텔-아비브는 1909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던 시기에 대도시로 개발되었다. 텔-아비브의 중심부를 이루는 화이트시티 지역은 근대 초기의 최고 모더니즘 이론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게디스의 도시 기본 계획(1925~1927)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게디스의 대규모 도시 계획이 실현된 텔-아비브는 ‘정원 도시(garden city)’는 아니지만 유형적·경제적·사회적·인간적 요구를 반영하여 환경적으로 접근한 계획도시이다.

‘도시 연합화(conurbation)’와 ‘환경(environment)’의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한 게디스는 도시의 성격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로 보고, 도심과 전원을 동질적인 경관으로 발전시킨 통찰력을 지닌 선구자였다. 게디스의 도시 계획에 대한 과학적 원리는 ‘장소’와 ‘지역’에 대한 새로운 비전에 기초하였으며, 20세기 전세계의 도시 계획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주제들은 게디스의 텔-아비브 건설 기본 계획에 반영되어 있다.

텔-아비브의 건물들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공부하고 활동해 온 전문가들이었다. 텔-아비브의 건축물에서 그들은 모더니즘의 다양한 창조성을 표현했으며,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고려하였다. 유럽이나 북아프리카의 어느 곳에서도 텔-아비브와 같이 모더니즘적 건축 형태가 종합적으로 표현된 사례는 없다. 텔-아비브의 건물들은 지역 전통과 환경을 반영하면서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즉, 건축물을 지역의 특수한 기후와 환경에 맞게 설계함으로써 개별 건축물과 도시 전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완전성

게디스 도시 계획 정신은 도시 설계의 다양한 측면(형태, 구획, 거리의 위계와 윤곽, 개방 공간 및 폐쇄 공간의 비율, 녹지)에서 잘 보존되고 있다. 도시의 기반 시설은 잘 보존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설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젠고프(Dizengoff)의 교통과 보행자 체계는 변경되었다. 이 구역은 여러 면에서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도시 조화의 완전성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몇몇 대규모의 사무용 및 주거용 건축물을 포함한 새로운 건축과 상업적 개발로 인하여 완충지역에서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화이트시티는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초기의 도시 환경으로부터 변화된 모습이다. 도시가 더욱 발달한다면 시각적 완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진정성

건축 설계의 진정성은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이는 시각적으로 동일하게 인식되는 도시 조직, 양식의 통합성, 유형별 공간 구성, 거리의 특징, 분수와 정원을 포함한 녹지 면적과 도시 요소의 관계 등으로 증명되었다. 현관 로비, 계단, 난간, 목조 사서함, 정면부와 고층 주택의 문, 창틀 등의 세부사항은 대체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적 도시에서처럼 손실된 부분도 일부 있다.

몇몇 개별 건물은 옥상이 추가되면서 건축물의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유적의 규모와 범위 등의 도시 윤곽을 변경시킬 만큼 많은 수량의 건물이 변경된 것이 아니라서, 텔-아비브를 역동적이고 생기 있는 도시로 만들어주는 전통의 연속성으로 보아도 좋다. 하지만 비록 제한된 범위라고 할지라도 건축물의 이러한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역사적 배경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 치하의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주로 16세기 스페인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팔레스타인 영토는 1920년에 영국에 위임되었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성장하면서 20세기 초기에 대규모의 유대인 이민자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최초로 들어왔으며 1933년 이후로도 다수가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왔다.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의 이산)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조국 건설을 지지하는 정치적 운동을 시오니즘(Zionism)이라고 한다.

텔-아비브의 기원은 19세기 초기 농지 한가운데에 세운 성벽 도시 오스만 야파(Ottoman Jaffa)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수에즈 운하의 건설로 야파는 성지 순례자들의 안식처이자 상업 항구로 발달하였다. 1856년 외국인의 토지 보유가 허용되면서 교외 지역이 발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유대인 정착지는 야파 북쪽의 네베 제데크로 1887년부터 1896년 사이에 세워졌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부유한 상인들이 전원 주택지로 아쿠자트 바이트(Achuzat Bayit)를 세웠고, 나중에 이곳은 텔-아비브로 불리게 되었다.

1920년~1925년에 텔-아비브의 인구는 2,000명에서 34,000명으로 늘어났고, 지역 특유의 동양적 모티브와 결합한 다양한 건축 양식이 나타났다. 1921년 독일 출신의 건축가 리하르트 카우프만(Richard Kauffmann, 1887~1958)은 이곳에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려는 최초의 기본 계획을 마련하였다. 스코틀랜드 건축가 패트릭 게디스는 1925년에 새로운 계획을 세웠고, 이는 1927년에 비준되어 1938년에 개정안과 함께 승인되었다. 1930년대 초에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설계는 유럽에서 활동하다 이주한 건축가들이었고 이들은 이곳에서 모더니즘적 비전을 구현하였다.

텔-아비브의 모더니즘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르 코르뷔지에 및 에리히 멘델존의 사례와 바우하우스의 사상(텔-아비브의 설계자 중 19명은 바우하우스 건축학교에서 공부했다.)이다. 이들 건축가 중에는 리하르트 카우프만의 친구인 멘델존과 함께 작업한 요제프 노이펠트(Joseph Neufeld)와 카를 루빈(Carl Rubin)도 있었다.

아리에 샤론(Arieh Sharon), 슈무엘 메스테흐킨(Shmuel Mestechkin)은 바우하우스 건축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삼 바르카이(Sam Barkai)와 슐로모 베른스테인(Shlomo Bernstein)은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서 작업했으며, 제브 레흐터(Ze'ev Rechter)는 파리에서 교육받은 건축가였다. 도브 카르미(Dov Karmi), 게니아 아베르부흐(Genia Averbouch), 벤야민 아넥스테인(Benjamin Anekstein)은 겐트와 브뤼셀에서 교육받은 건축가들이었고, 다른 이들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테라니(Terragni)와 파가노(Pagano)의 영향을 받았다. 멘델존은 1934년부터 1942년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와 예루살렘에서 작업하였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유적 관리는 도시 및 지역의 계획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계획에는 중앙 텔-아비브 - 야파의 도시 보존 계획안의 58조항인 국가 기본 계획 ‘TaMA 35’와 텔-아비브 보존 지역의 주요 계획안을 제공하는 지역 기본 계획 ‘TMM 5’를 포함한다. 관리 정책은 관광 활동을 장려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보존에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들을 포함한다. 2002년에 착수된 보존 계획(2650B)은 2008년에 승인되었다. 이 보존 계획과 기타 지역 계획에서 파악된 1,000개 가량의 역사적 건물의 대부분은 개인의 소유였다. 따라서 이들 건축물의 권리 손실을 보상하기 위하여 건축물의 권리 양도를 허용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 정책에는 180채의 건물에 적용되는 어떤 변경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나머지 보호 건물에서는 층을 추가할 수 있는 것만 허용되었다. 등재 지역에서의 건축 허가 및 건설 평가, 승인 및 감독을 위하여 특별한 절차가 수립되었다. 현재 이 정차는 8명의 건축가로 이루어진 지방 자치체의 보존 기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존 도시 구조 변경의 통제를 개선할 방안을 찾기 위하여 자치단체는 지속적으로 개발 동향을 모니터하고 있다. 20세기의 새로운 도시에 관련된 ‘운영 지침 부속 조항 3항’에 따르면, 텔-아비브의 역사적 핵심 지역이 적절한 규제 하에서 성장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유산 및 완충 지역의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유산면적
140㏊
완충지역
197㏊
참고번호
1096
본문

텔-아비브 화이트시티는 20세기 초 건축 및 도시 계획에서 모더니즘 운동의 다양한 경향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곳의 모더니즘 건축은 지역의 문화와 기후에 알맞게 적용되어 지역 특유의 전통과 잘 융합되었다. 텔-아비브는 지중해 동부 해안가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로, 야파 시의 북쪽에 있다. 텔-아비브 화이트시티는 영국의 건축가 패트릭 게디스의 도시 기본 계획에 기반으로 1930년대에 세워진 세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디스의 계획에는 이 지역이 ‘정원 도시’로 구상되었으나, 이전에 건설된 것들보다 도시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각 구역에는 정원으로 둘러싸인 독립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의 평면 면적은 부지의 ⅓ 이내여야 했다. 텔-아비브는 고대 야파에서 시작하여 네베 제데크(Neve Zedek)의 역사 지구(1896), 아쿠자트 바이트(Achuzat Bayit, 1909), 레드시티(the Red City), 레브 하이르(Lev Hayir,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부) 그리고 텔-아비브 화이트시티(1931~1947)의 연속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개발되었다.

역사적으로 텔-아비브의 기원은 네베 제데크의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 언덕 위에 전통 양식의 기와지붕을 얹은 2층의 사암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텔-아비브의 최초의 중심부가 되었다. 동쪽으로 개발된 레드시티의 대부분은 기와지붕을 얹은 절충적 건물이 건축되었다. 레브 하이르에는 정원이 있는 3층에서 5층 높이의 국제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이 늘어서 있으며, 북쪽에까지 확장되었다.

게디스의 설계에 따라 북쪽에 건설된 중앙 화이트시티는 주거 지역 및 사무 지역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중앙 화이트시티의 중심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데, 그곳에는 하비마(Habima) 극장이 있는 지나 디젠고프(Zina Dizengoff) 광장, 박물관, 만 강당 등이 있다. 이 건물들은 주로 3층에서 4층 높이이고, 편평한 지붕과 석회칠의 벽체 및 장식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외부는 크림색에서 흰색 계열로 채색되었다. 벤 구리온(Ben Gurion) 대로 너머에 있는 북부 화이트시티는 더 이후에 지어졌다.

북부 화이트시티의 서쪽 지역은 중앙 화이트시티와 유사하지만, 1948년 이전까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북부 화이트시티의 동쪽 지역은 194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까지 건설되었는데, 불황기에 세워져 다른 지역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북부 화이트시티의 남쪽 구역은 완충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세 구역은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모더니즘 운동을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 A구역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기까지, B구역은 1930년대 초기에 건설되었다. 비알리크(Bialik) 지구로 불리는 C구역은 1920년대 이후의 지역 건축을 나타내며, 아르데코와 절충주의의 사례뿐만 아니라 ‘백색 건축’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좁은 지역에 있는 엄선된 건물들은 텔-아비브의 모더니즘이 지역적으로 독특하게 발달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건물들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에리히 멘델존(Erich Mendelsohn), 그리고 바우하우스(Bauhaus) 건축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모더니즘 사상을 지역적 조건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유럽 양식 건물의 넓은 유리창은 무더운 날씨에 적합하게 상대적으로 길고 좁은 형태의 창문으로 변경되었다. 많은 건물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것과 같은 필로티(piloti, 건물을 지면보다 높이 받치는 기둥)를 설치하여 바닷바람이 통할 수 있게 하였다. 이곳 건물들에는 직사광을 차단하기 위한 창문의 차양, 건축물에 유연성과 그늘을 주는 깊은 발코니 등과 같은 요소들도 있다.

평평하게 포장된 지붕은 사교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건축학적 특징은 멘델존 건축 양식의 표현인 커브 모양의 모서리와 발코니를 사용한 것이다. 또한 반원형 지붕과 같은 지역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건물의 가장 일반적인 건축 재료는 강화 콘크리트인데, 비숙련 노동자에게 적합하여 1912년부터 사용되었다. 외부 표면을 위해 석재와 금속 등의 다른 자재도 도입되었다. 장식은 발코니 난간, 화분, 차양 등과 같은 기능적 요소들이었지만, 장식적 석회칠도 일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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