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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역사 지구 [Vilnius Historic Centre]

  • 빌뉴스 역사 지구
  • 제목 : 빌뉴스 역사 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F. Bandarin
빌뉴스 역사 지구

상세정보

  • 국가 리투아니아(Lithuania)
  • 위치 빌뉴스 시(City of Vilnius)
  • 좌표 N54 41 12.012|||E25 17 35.016
  • 등재연도 1994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빌뉴스는 여러 세기에 걸쳐 동유럽의 광범위한 지역 문화와 건축의 발달에 깊은 영향을 끼친 중세 도시의 뛰어난 예이다.

    기준 (ⅳ) : 경관과 다양한 건축물들은 빌뉴스가 500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발전해 온 유럽의 중심 도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요약
13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 중심지였던 빌뉴스(Vilnius)는 동유럽 국가들의 문화와 건축 발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침략을 많이 받아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뉴스에는 중세의 도시 배치와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및 고전주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신석기 시대부터 간간이 사람이 거주해 오다, 서기 1000년에 게디미나스 구릉을 지키기 위해 네리스 강과 빌니아 강이 합류하는 곳에다 목조 성을 지었다. 13세기에 와서야 정착촌이 마을로 발전하였고, 발트 해 연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게르만 침략자들과 투쟁했다.

1323년경 빌니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에 등장하던 시기에, 이곳은 갈리친 가문의 선조였던 대공 게디미나스가 세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였다. 이 당시에 빌뉴스 인들이 수로를 변경하여 만든 작은 섬에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있었던 듯하다. 리투아니아는 민간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1387년에 대공 울라디슬라브 자가일라가 세례를 받으면서 동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이렇게 하여 빌뉴스는 서구 세계로 개방되었고, 같은 해에 마그데부르크도시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1410년에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 기사단이 몰락하고 나서야 도시는 약탈자와 침입자들로부터 안전해졌다.

마을은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1471년에 일어난 대화재의 피해를 입어 세인트 존 성당의 교구교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및 시토 수도회의 건물 등 처음 지어졌던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그로 인해 초기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성벽이 유일하며, 그중 일부는 1503년~1522년에 타타르의 침공에 대비해 지은 방어물 아래에 남아 있었다.1530년에 또 한 번의 큰 화재를 겪은 후 부분적으로 재건하여 중세의 거리 형태를 개선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가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달한 시기였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긴밀한 무역 관계가 확립되었고, 이로 인해 서유럽의 문화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로 확산되었다.

1522년에는 인쇄 공장이, 1579년에는 대학이 세워졌다. 그러나 1610년, 또 화재가 발생해 새로 지은 저지대 성과 성당이 불타 버렸다. 그 뒤에 교회 건축물이 대규모로 재건되었다. 성 미카엘 교회, 성 슈테판 교회, 성 카시미르 교회, 올세인츠 교회, 성 테레사 교회가 모두 이 시기에 지어졌다.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던 시기에 빌뉴스에는 종교 건축물이 41개나 있었으나 전쟁 중에 많이 소실되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 역시 대부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잇따른 재건으로 도시에는 특징적인 건물이 많아져, 성당, 시 공회당, 무기고 및 티젠하우자이, 렌사이, 파카이, 마살스키아이 등의 궁전이 지어졌다. 남아 있는 초기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짓거나 재단장했다.

1795년에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리투아니아의 수도는 점점 그 특징을 잃어 갔다. 요새 성곽과 저지대 성이 1799년에 무너졌고, 1837년에는 대성당 광장이 엄숙한 학문적 분위기로 계획되었고, 성조지 에비뉴는 구도시 구조를 가로질러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80채가 넘는 가옥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재건이 시작되었다. 이 역사 지구 재건 사업 계획은 1956년~1958년과 1970년~1974년에 세워졌다.

참고번호
541
본문

빌뉴스는 여러 세기에 걸쳐 동유럽의 광범위한 지역 문화와 건축의 발달에 깊은 영향을 끼친 중세 도시의 뛰어난 예이다. 경관과 다양한 건축물에서 빌뉴스가 500년에 걸쳐 유기적으로 발전해 온 유럽의 중심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간간이 사람이 거주해 오다, 서기 1000년에 게디미나스 구릉을 지키기 위해 네리스(Neris) 강과 빌니아(Vilnia) 강이 합류하는 곳에다 목조 성을 지었다. 13세기에 와서야 정착촌이 마을로 발전하였고, 발트 해 연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게르만 침략자들에 맞서 투쟁했다.

1323년경 빌니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에 등장하던 시기에, 이곳은 갈리친(Galitzinn) 가문의 선조였던 대공 게디미나스(Gediminas, 재위 1316~1341)가 세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였다. 이 당시에 빌뉴스 인들이 수로를 변경하여 만든 작은 섬에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있었던 듯하다. 리투아니아는 민간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1387년에 대공 울라디슬라브 자가일라(Uladyslaw Jagaila, 재위 1377~1392)가 세례를 받으면서 동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이렇게 하여 빌뉴스는 서구 세계로 개방되었고, 같은 해에 마그데부르크도시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1410년에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 기사단이 몰락하고 나서야 도시는 약탈자와 침입자들로부터 안전해졌다.

빠르게 성장하던 마을은 1471년 대화재에 휩싸여, 세인트 존 성당의 교구교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및 시토 수도회의 건물 등 처음 지어졌던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성벽이 유일하며, 그중 일부는 1503년~1522년에 타타르의 침공에 대비해 지은 방어물 아래에 남아 있었다. 1530년에 또 한 번의 큰 화재를 겪은 후 부분적으로 재건하여 중세의 거리 형태를 개선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가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달한 시기였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긴밀한 무역 관계가 확립되었고, 이로 인해 서유럽의 문화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로 확산되었다.

1522년에는 인쇄 공장이, 1579년에는 대학이 세워졌다. 그러나 1610년, 또 화재가 발생해 새로 지은 저지대 성과 성당이 불타 버렸다. 그 뒤에 교회 건축물이 대규모로 재건되었다. 성 미카엘(St. Michael) 교회, 성 슈테판(St. Stephen) 교회, 성 카시미르(St. Casimir) 교회, 올세인츠(All Saints) 교회, 성 테레사(St. Theresa) 교회가 모두 이 시기에 지어졌다.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던 시기에 빌뉴스에는 종교 건축물이 41개나 있었으나 전쟁 중(1654~1667)에 많이 소실되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 역시 대부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1517, 1737, 1748, 1749 화재), 잇따른 재건으로 도시에는 특징적인 건물이 많아져 성당, 시 공회당, 무기고 및 티젠하우자이(Tyzenhauzai), 렌사이(Rensai), 파카이(Pacai), 마살스키아이(Masalskiai) 등의 궁전이 지어졌다. 남아 있는 초기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짓거나 재단장했다.

1795년에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리투아니아의 수도는 점점 그 특징을 잃어 갔다. 요새 성곽과 저지대 성이 1799년에 무너졌고, 1837년에는 대성당 광장이 엄숙한 학문적 분위기로 계획되었고, 성 조지 에비뉴는 구도시 구조를 가로질러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80채가 넘는 가옥이 파괴되었으나 교전이 끝난 후 재건이 시작되었다. 이 역사 지구 재건 사업 계획은 1956년~1958년과 1970년~1974년에 세워졌다.

빌뉴스 역사 지구(Vilnius Historic Centre)는 3개의 성 지역(고지대 성, 저지대 성, 굽은 성)과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치 형태는 기본적으로 원형이며, 원래 성이 있는 지점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도로는 주로 중세 시대의 형태로, 작은 길들이 불규칙하게 구역을 나누고 있지만 후기에 큰 광장을 끼워 넣었다. 역사적 건축물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이다(몇몇은 후에 더해졌다). 그중 약 40%는 건축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건축물은 도시 경관에 다양성을 주면서도 중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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