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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와 석호 [Venice and its Lagoon]

  • 베네치아와 석호
  • 제목 : 베네치아와 석호
  • 설명 : © UNESCO / Author : Junaid Sorosh-Wali
베네치아와 석호

상세정보

  • 국가 이탈리아(Italy)
  • 위치 베네토 주(Veneto Region)|||베네치아 현(Province of Venezia)
  • 좌표 N45 26|||E12 20 20.2 3.5
  • 등재연도 1987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118개의 작은 섬 위에 세워져 석호에 있는 베네치아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물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카날레토, 과르디, 터너를 비롯한 다수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베네치아의 석호는 토르첼로(Torcello) 대성당 및 성모마리아(St. Mary of Salvation) 성당과 같은 걸작이 세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산마르코(San Marco) 광장, 두칼레(Ducale) 궁전, 자니폴로 스쿠올라 디 산마르코(Zanipolo and Scuola di San Marco), 크라르치 스쿠올라 디 산로코(Crarci and Scuola di San Rocco), 산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성당 등과 같은 뛰어나게 아름다운 기념물들은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상징한다.

    기준 (ⅱ) : 베네치아는 건축과 기념물 예술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베네치아는 달마티아 해변을 따라 산마리노, 소아시아, 이집트, 이오니아 해의 섬들, 유보이아 섬, 펠로폰네소스 반도, 크레타 섬, 키프로스 섬의 모든 교역 시장과 지점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이들 지역에서는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얻은 기념물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 해양 제국이 최초로 패배를 경험한 시기에, 이와 달리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매우 차별화된 양식의 예술 학파를 창시하게 되었다. 벨리니와 조르조네에 이어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제, 티에폴로는 공간, 빛, 색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유럽의 회화 및 장식 동향에 결정적인 자취를 남겼다.

    기준 (ⅲ) : 베네치아의 고고 유적은 여전히 생생하게 유지되고 있다. 해양 세력으로서 동양과 서양,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 온 베네치아는 수천 개의 기념물과 유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기준 (ⅳ) : 베네치아가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은 이 도시의 번영기를 나타낸다. 산마르코 광장 및 소광장과 같은 훌륭한 기념물들부터 구시가지 6개 구역 내의 좀 더 소박한 가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3세기에는 원래 동신회였던 병원과 자선 및 조합 기관 등을 포함하여, 중세 베네치아의 건축물은 완벽한 유형별 공간 구성을 보여 준다. 베네치아의 건축물이 보유한 이러한 사례로서의 가치는 이 지역의 특수한 요건에 적용된 도시 환경이 지니는 탁월한 개성과 서로 관련 있다.

    기준 (ⅴ) : 지중해 지역에서 베네치아의 석호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인해 취약해진 반호수 정착지의 사례를 보여 준다. 이 일관된 생태계에서, 수위 아래로 잠겼다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진흙 밭은 섬과 동일하게 중요하며, 퇴적지 위에 건축된 가옥과 어촌, 농경지 등은 궁전 및 교회와 마찬가지로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기준 (ⅵ) : 베네치아는 인류가 환경 요소와 투쟁하여 승리했으며, 적대적인 환경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음을 드러낸다. 이 도시는 세계의 역사와도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해양의 여왕’으로 불리며 작은 섬들을 지배했던 베네치아의 범위는 석호, 아드리아 해, 지중해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르코 폴로(1254~1324)는 베네치아에서부터 중국, 안남, 통킹, 수마트라, 인도, 페르시아를 찾기 위해 출발했다. 산 로렌초 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은 아랍 인들 이후로, 그러나 포르투갈 인 훨씬 이전에 세계를 발견한 베네치아 상인들의 역할을 상기시켜 준다.

요약
5세기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118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세기에 주요한 해양 세력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특별한 건축 걸작으로, 아주 작은 건물에까지도 조르조네(Giorgione), 티치아노(Tiziano), 틴토레토(Tintoretto), 베로네제(Veronese)를 비롯한 세계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목차
참고번호
394
본문

118개의 작은 섬들이 있는 석호(潟湖)에 있는 베네치아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물이다. 베네치아가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은 건축과 기념물 예술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베네치아의 건축물은 완벽한 유형별 공간 구성을 보여 주며, 이러한 사례로서의 가치는 이곳의 특수한 요건에 적용되어야 했던 도시적 환경이 지니는 탁월한 개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50,000㎢에 달하는 이 지역의 석호에서는, 베네치아 주민이 이민족의 공습을 피해 토르첼로(Torcello), 이에솔로(Iesolo), 말라모코(Malamocco)의 모래섬으로 피난한 5세기 이래로 자연과 역사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다. 이들 임시 거주지는 점차 영구 정착지가 되었고, 농민과 어부의 최초 피난처였던 이곳은 해양 국가로 변화하여, 작은 섬인 리알토(Rialto)가 새로운 도시의 핵심부로 선정되었다.

서기 1000년에 베네치아는 달마티아 해안을 지배하게 되었고, 1112년에 지중해 동부 연안의 시돈(Sidon) 항구에 교역 시장이 세워졌다. 1204년에 베네치아는 십자군과 동맹을 맺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때 획득된 풍부한 전리품 중에는 산마르코 성당에 서 있는 청동 말들이 있는데, 이는 엔리코 단돌로(Enrico Dàndolo)가 동맹들과 함께 비잔티움에서 공수해 온 많은 전리품 중에서도 훌륭한 것으로 꼽힌다.

엔리코 단돌로의 지배 하에서, 필적할 수 없는 세력을 지닌 해양 제국이 된 베네치아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이오니아 해의 섬 및 크레타 섬에 이르는 해안 전체로 확장되었다. 베네치아의 팽창기 내내 아랍, 제노바, 오스만 제국은 물론 베네치아의 세력을 질시한 유럽 군주들의 상업 활동에 대항하여 교역 시장을 방어해야 했던 시기 동안, 베네치아는 석호 지역에서 그 위치를 끊임없이 확고히 하였다.

바다에 대한 베네치아의 위상은 ‘바다와의 결혼(Lo Sposalizio del Mare, The marriage with the sea)’이라는 의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바다와의 결혼’은 1172년 이래 베네치아의 도제(Doge, 총독, 697년에 최초로 시민집회로 선출된 도시국가의 총독으로 라틴어 Dux에서 온 말)가 부친토로(bucintoro, 총독의 바지선)를 타고 바다로 나가 아드리아 해에서 반지를 바다에 던지는 의식을 말한다.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았던 이 내륙해의 작은 군도 한복판에는 중세 시대에 드물게도 건물이 가득 들어선 지역 중 하나가 있다. 북쪽으로는 토르첼로(Torcello)에서부터 남쪽의 키오자(Chioggia)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작은 섬들에는 고유의 정주지, 도시, 어촌, 장인 마을(Murano, 무라노)이 있다. 그러나 석호의 한가운데에 있는 베네치아는 그 자체로 중세 세계에서 가장 큰 중심지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원시 시대의 지형에서는 주데카(Giudecca) 운하, 산마르코 운하, 대운하와 같이 운하가 된 부분과 수상 도시의 실질적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조그만 ‘리(rii)’의 네트워크로 변한 부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육지의 콘셉트의 개념이 아닌 믿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이 공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건축 박물관 중 하나이며, 이곳의 예술품들은 1,000년을 넘게 축적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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