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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강 석굴 [Ungang Grottoes]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윈강 석굴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산시성(山西省, Shanxi Province)|||다퉁시(大同市, Datong City)
  • 좌표 N40 6 34.992|||E113 7 19.992
  • 등재연도 2001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윈강 석굴의 불상 조각군은 중국의 초기 불교 석굴 예술의 최고 걸작이다.

    기준 (ⅱ) : 윈강 석굴은 중국 황실의 후원 아래 서기 5세기경부터 시작되었으며,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진 불교의 상징 예술이 중국 전통문화와 성공적으로 융합되었음을 보여 준다.

    기준 (ⅲ) : 윈강 석굴에는 중국불교가 지닌 신앙으로서의 권위와 지구력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기준 (ⅳ) : 윈강 석굴은 불교전통이 종교적 석굴예술에 끼친 영향력이 강하게 발현된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과 예술적 역량을 잘 발전시켜 나갔다.

요약
윈강 석굴(雲崗石窟)은 중국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에 있는 중국 최대의 불교 석굴이다. 윈강 석굴의 252개 석굴과 51,000여 개 석상은 5세기~6세기 중국 불교 석굴 미술의 위업을 보여 준다. 특히 승려 탄야오(曇曜)가 만든 담요오굴(曇曜五窟)은 엄밀한 배치와 통일성 있는 디자인으로 중국 전통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윈강 석굴 조성 기간 가운데 중기(471~494)는 불교 신앙이 황실과 귀족들 사이에 널리 퍼진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12개의 대규모 석굴이 만들어지는 등 윈강의 대형 석굴 가운데 70%가량이 만들어졌고, 숭복사(崇福寺)가 건립되었다. 또한 황실이 후원하는 초기 사업이 대부분 완성된 525년 이후로도 하위 관리들과 승려들이 계속해서 석굴을 파고 석상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석굴이 200개가 넘는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일부는 매우 뛰어난 예술성을 보인다. 1651년에는 윈강 석굴의 제5굴과 제6굴 앞에 각각 5개의 방을 가진 4층 높이의 목조 누각을 세웠으며, 제7굴 앞에는 각각 3개의 방을 가진 3층 높이의 누각을 세웠다.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건립 이래로 제5굴, 제6굴, 제7굴 앞에 있던 주요 석굴들과 목재 구조물들은 모두 잘 보호, 보존되면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유산면적
349㏊
완충지역
847㏊
참고번호
1039
본문

윈강 석굴은 종교적 석굴예술에 끼친 불교 전통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발현된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과 예술적 역량을 잘 발전시켜 나갔다. 윈강 석굴은 중국 황실의 후원 아래 서기 5세기경부터 조성되기 시작되었으며,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진 불교의 종교적 상징예술이 중국 전통문화와 성공적으로 융합되었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윈강 석굴에는 중국불교가 지닌 신앙으로서의 권위와 지구력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고대에는 평성(平城)이라 불렸던 다퉁은 서기 398년부터 494년까지 북위(北魏) 왕조의 수도였으며,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후에 반란이 일어나면서 수도의 자리를 잃었지만, 523년까지 그 중요성을 잃지 않은 도시였다. 윈강 석굴의 석상들은 60여 년(460~525)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이 기간은 북위 왕조의 불교 석굴예술 발전의 절정기로 기록된다. 북위의 첫 황제가 제위에 오르면서 중국불교도 번영기를 맞이했고, 460년에는 승려 탄야오가 5개의 석굴인 ‘담요오굴’을 만들었다. 이후로 이 석굴들은 북중국 불교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황실이 후원하는 초기 사업은 525년까지 대부분 완성되었지만, 하위 관리들과 승려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석굴을 파고 석상을 만들었다. 요(遼)나라 시대에는 석굴이 중국 10대 사원(Ten Famous Temples)과 같은 사원 건물로 바뀌면서, 석굴 앞쪽에 목재로 누각들을 만들어 세웠다. 이 사원들은 1122년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고대에는 무주산석굴(武周山石窟)로 알려졌던 윈강 석굴은 다퉁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스리허(十里河) 유역에 있는 우저우산(武周山) 남쪽 기슭에 있다. 윈강 석굴은 동서로 1㎞ 정도에 걸쳐 있는데, 다양한 크기의 석굴 252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굴 안에는 51,000개가 넘는 석상들이 있다. 윈강 석굴 조성 기간은 크게 초기(460~465), 중기(471~494), 말기(494~525)의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주요 지역에는 석굴과는 별도로, 석굴 위 평야 지대에 있는 명나라의 성터와 방벽, 봉화대가 있다. 초기(460~465)에 만들어진 석굴은 5개의 주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엄하면서도 단순한 이 석굴들은 승려 탄야오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담요오굴’이라고 불렸다. 석굴의 배치를 보면, 13m~15m 높이의 거대한 석상을 세우기 위해 높직하게 굴을 팠으며, U자형으로 설계되었고 고대 인도풍의 초가를 본떠 만든 아치형 지붕이 있다. 또한 각각의 굴마다 문과 창문이 있다. 석굴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불상이 석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외벽에는 1,000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석굴예술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윈강 석굴의 핵심적 형태는 2개로 이루어진 동굴 네 그룹과 3개로 이루어진 석굴 한 그룹을 포함한 대형 동굴이다. 중기(471~494)에 이르자 윈강 석굴의 양식은 한(漢) 양식으로 급격하게 발전해 나가며,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왕조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자 조각상의 새로운 주제와 조합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석굴들은 일반적으로 네모지게 설계되었고, 정면과 후면에 방이 있는 형태가 많다.

벽에 새겨진 조각은 윗부분과 아랫부분,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지붕천장 패널(caisson ceilings)에는 대부분 조각을 새겼으며, 외벽 양쪽에는 이중 바닥으로 된 높은 누각이 있다. 정원 중앙에는 탑주들이 높이 솟아 있고, 1,000개의 부처가 각각 조각된 팔각기둥이 나무로 된 누각을 지탱해 주고 있다. 또한 층과 열이 서로 다르게 나뉜 긴 그림이 동굴 내부 벽들을 덮고 있다.

이는 모두 한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전통적인 전당의 설계와 배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말기(494~525)의 석굴들은 석굴 지역 서쪽인 용왕사(龍王寺) 계곡에 있다. 이 시기에는 모두 200개가 넘는 석굴과 벽감들이 만들어졌는데, 석굴의 크기는 중소형이며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다양한 모양을 갖고 있다. 동굴 입구 주변 절벽에도 갖가지 불상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이 조각들은 내용이 단순해지고 형태도 양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섬세함과 우아함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