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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수비 부간다 왕릉군 [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

  • 제목 :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
  • 설명 : © UNESCO / Author : Lazare Eloundou Assomo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

상세정보

  • 국가 우간다(Uganda)
  • 위치 캄팔라 지역(Kampala District)
  • 좌표 N0 20 55|||E32 33 5
  • 등재연도 2001년(2010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등재)
  • 등재기준

    기준 (ⅰ) :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은 그 개념과 수행에 있어서 인류 창조성의 걸작이다.

    기준 (ⅲ) :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은 부간다 족의 살아 있는 문화 전통을 대변한다.

    기준 (ⅳ) :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의 공간 배치는 부간다 왕궁/건축 유적 중에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사례이다. 부간다의 훌륭한 전통 건축과 궁전 설계는 수세기 동안 개발된 기술의 성과를 반영한다.

    기준 (ⅵ) : 카수비의 왕릉 유적의 건축적·자연적 요소는 역사적·전통적·영적 가치를 표현한다. 유적은 부간다 족의 주요 영적 중심지이며, 왕국에서 가장 활발한 종교적 장소이다.

요약
카수비 부간다 왕릉군(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은 캄팔라(Kampala) 언덕에 있는 약 30㏊에 이르는 지역이다. 유적지의 대부분은 전통 방식의 농업 지대이다. 언덕 꼭대기 중심에는 1882년에 건축된 부간다 족 카바카(Kabaka, 통치자)들의 옛 궁전이 있으며, 1884년에 개장(改裝)한 왕족의 묘지가 있다. 4개의 묘는 현재 초가지붕이 얹힌 원형의 주 건물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Muzibu Azaala Mpanga)’ 안에 있다. 이 건축물은 나무·억새·갈대·잔가지, 질박한 도료와 같은 유기물 재료로 건축된 건축물의 중요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 유적의 중요한 의미는 신앙·종교·영속성·정체성과 같은 무형의 가치에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부간다 족 왕릉군은 캄팔라 시의 카수비 언덕 위 26.8㏊에 달하는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적에서는 전통과 문화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부간다(Buganda) 족의 영적 중심지이다. 이곳에서는 카수비 무덤에서 의례를 행하고 있는 왕국 내에 가장 활동적인 종교적인 장소이다. 이곳은 4명의 이전 왕들의 무덤이며, 왕가의 종교 중심지이며, 카바카와 그의 대리자들이 부간다 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의례를 치르는 곳이다. 유적은 영적인 세계와의 소통을 유지해온 장소이다. 유적의 공간 구성은 전통 목질의복(木質衣服)나무로 특징지어진 유적의 경계 안에 있다.

성문과 주요 안뜰을 지나가면, 4개의 카바카의 묘로서 만들어진, 커다란 이엉으로 초가를 얹은 건물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부간다의 궁전/매장 유적에서 현존하는 최상의 사례이다. 언덕 꼭대기 중심에는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라고 불리는 주요 왕릉 건축물이 있으며, 이것은 유적 중 최고 걸작이다. 왕릉 건축물은 13세기부터 있었다. 가장 최근의 건물은 1882년에 지은 것으로, 1884년에 왕족의 묘지로 개장된 부간다 카바카의 옛 궁전이었다. 현재 네 왕의 묘가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 안에 있다.

돔형 지붕을 얹은 듯한 원형의 왕릉 주 건축물은 나무기둥, 어린 풀, 갈대와 잔가지 등 식물 재료를 사용하여 세운 건축물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평범하지 않은 규모와 뛰어난 세부 장식은 부간다 족의 창조적 천재성을 증명하며, 형태와 기교에 있어 걸작이다. 이는 13세기 이후 강력한 부간다 왕국이 발전시켜 온 건축 양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훌륭한 본보기이다.

카수비 왕릉 유적지의 건축적·자연적 요소는 역사적·전통적·영적 가치를 표현한다. 유적은 부간다 족의 주요 영적 중심지이며, 왕국에서 가장 활발한 종교적 장소이다. 건물들의 구조와 유적과 관련된 전통 의례는 오늘날에도 전통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문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유적의 중요성은 부간다 족의 신앙·종교·영속성·정체성 등 무형의 가치에 있다. 전체적으로 우간다와 동아프리카에서 이 유적은 중요한 역사적·문화적 상징이다.

완전성

무덤이 있는 유적지의 경계는 전통 목질의복나무(인도고무나무 종)로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는 1882년의 전통적인 경계와 일치한다. 살아 있는 나무로 된 경계는 주택 건설, 개발 등으로 인한 침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따라서 원래의 유적지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궁전 구조를 반영하는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 주위의 왕족의 무덤/묘지와 건물들의 배치로 이루어진 궁전의 건축 설계는 여전히 본래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 비극적인 화재가 일어나 묘가 있는 주 건물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을 잃어버렸지만, 나무기둥, 풀, 갈대와 잔가지로 만든 건물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은 여전히 활기차게 유지되고 있으므로 이 무덤 건물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전통 건물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으며 전통 의식, 종교 행사, 땅의 소유와 이용 행사와 관련된 중요한 특성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진정성

카수비에 있는 부간다 왕릉군의 진정성은 유적과 관련된 전통과 문화 행사의 지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부간다 족 카바카의 본래 장례 제도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대형 중앙 안뜰(올루갸, Olugya) 안에 여러 건물들 중 중앙에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를 배치한 것은 부간다 왕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형 안뜰 안에는 그밖에 원통형 집이 있는 앞마당과 출입문 건물이 있다.

야자나무 잎을 엮어 초가지붕을 얹는 것과 목질의복나무 장식으로 긴 나무 기둥을 둘러싼 것처럼, 내부요소와 외부 마감 재료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록 유산의 진정성이 주 무덤의 화재로 구조적으로 약화되었으나, 전통적 건축 기술과 필요한 기술로 다시 재건할 수 있다. 사실 건물에 대한 광범위한 문서화 작업은 건축물의 중요한 특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부간다 왕국이 관리하고 있는 유산은 1972년에 공포된 기구 법령 163호와 역사기념물법안 (1967년의 법안 22)에 의거하여 보호 지역으로 공포되었다. 유산의 법적 지위는 헌법(1995)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역사기념물법안은 카수비 왕릉단지에 주택이 들어서거나 그 밖에 성격에 맞지 않는 용도로 사용하는 모든 행위로부터 보호한다. 왕릉단지가 있는 땅은 토지법(1998)에 의거해 명칭을 얻었다. 땅의 명칭은 왕국을 대표하여 카바카에게 위탁하여 등록되었다. 유산 보호는 우간다가 여러 관광정책으로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유산은 일반관리계획(2009~2015)의 승인을 받았다.

또 유산 관리자를 배치했다. 유산의 가장 큰 위험은 화재이다. 화재의 위험에 대처하여, 특히 등록된 유산을 가능한 한 완전하고 안전하게 보존할 것을 보장하는 세세한 위기관리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흘러도 유산과 관련된 전통적인 건축 과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젊은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무덤 주 건물을 재창조하기 위한 지침 원칙은 모든 이해관계자들, 즉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부간다 왕국과 우간다 공화국 정부 사이에 합의를 얻을 필요성이 있다. 건물을 재건하는 과정은 증거와 적절한 기록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재창조되어야 한다.

유산면적
27㏊
참고번호
1022
본문

카수비 유적은 부간다 족의 살아 있는 문화 전통을 대변하고 있다. 왕릉의 공간 배치는 부간다 왕궁과 건축물들 중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사례이다. 부간다의 건축과 왕궁 설계의 가장 훌륭한 전통으로 지은 유적은 수세기 동안 발전해 온 기술의 성과를 반영한다. 무덤의 자연요소와 건축물은 역사적·전통적·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다. 이곳은 부간다 족의 중요한 종교 중심지이자 왕국 내에서 가장 활발한 종교적 장소이다.

부간다 족은 반투어 어족에 속해 있고, 정치 문명은 약 13세기부터 생겼다. 오늘날 부간다 족은 우간다에서 주요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약 28%인 6,000,000명이다. 부간다 지역은 약 66,350㎢에 달한다. 최초의 전설적인 카바카였던 킨투(Kintu)로부터 무테사 1세(Muteesa I)까지 35명의 카바카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기원은 카수비에 왕궁을 지었던 수나 2세(Suuna II, 1836~1856) 때부터로 알려져 있다. 수나 2세의 뒤를 이은 아들 무테사 1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1882년 자신의 궁전으로 사용하려고 오늘날의 무덤 건물을 지었다.

무테사 1세는 최초로 외국 문화를 받아들여 아주 강력한 카바카가 되었다. 그는 잔지바르에서 들어온 상아 상인들과 노예무역 상인들에게서 배운 이슬람 종교 의식을 차용했다. 그는 1862년 최초의 유럽인 방문자였던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ke)를 맞아 대접하면서 유럽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1875년에는 탐험가였던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에게 유럽의 지식과 종교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남아 있는 몇몇 건물들은 부간다의 역사 중 부간다 족이 최초로 아라비아 무역상인과 유럽 탐험가들에게 노출되었던 이 격변의 시기를 반영한다.

1884년에 무테사 1세가 죽었을 때 그는 두 가지 전통을 깨뜨렸다. 자신의 시신을 온전히 묻었고, 또 다른 곳이 아니라 카수비 자신의 궁전에 묻혔다. 이런 관행은 1910년 그의 후계자인 므왕가 2세(Mwanga II)의 유해가 세이셸에서 돌아와 부간다 족 카바카들의 중요한 묘지인 카수비에 묻힘으로써 계속되었다. 1939년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다우디 츠와 2세(Daudi Chwa II)가 죽어 카수비에 묻혔을 때 카수비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 무테사 2세(Edward Muteesa II)는 영국과 최초로 대립했고, 1962년에 우간다는 독립했다. 무테사 2세는 자신의 총리를 데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1966년에 카수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대통령은 추방당했지만, 1969년에 무테사 2세는 죽은 후 유해로 돌아와 1971년에 카수비에 묻혔다. 4명의 부간다 족 후계자 카바카들은 이렇게 하여 카수비의 같은 묘지 건물에 묻혔다. 그 건물이 세계유산의 유적지의 핵심 건물이다. 4명의 카바카들의 후예인 왕자와 공주들은 주요 성지 뒤에 있는 곳에 묻혔다.

1967년에서 1993년 사이에 유적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았지만, 1993년에 전통적인 국왕 제도로 돌아갔다. 카바카 로널드 무테비 2세(Ronald Mutebi II)가 부간다의 카바카로 즉위한 뒤 1997년 카수비 왕릉군은 부간다 왕국에게 반환되었다. 부간다 왕국은 오늘날 우간다에 있는 4개의 왕국 가운데 하나이다. 이 유적은 이제 부간다의 가장 중요한 문화 성지일 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이다.

카수비 왕릉 유적지는 캄팔라 안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3개의 주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유적지의 서쪽 끝에 자리한 주요 무덤 구역, 많은 건물과 묘지로 구성된 주요 무덤 뒤편 구역, 주로 농사에 사용되는 유적지의 동쪽 편에 있는 대규모 구역이다. 건물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구운 벽돌로 만든 벽이 보이지 않게 지었다. 그 너머에는 왕실의 드럼형의 원형 건물이 있는 작은 안뜰이 있다.

D자 모양의 주 안뜰(올루갸)은 갈대 담장의 틈을 통해 나 있다. 이 담장은 안뜰을 둘러쌀 뿐 아니라 9개의 건물들로 연결된다. 9개 중 5개 건물은 카바카의 미망인들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4개는 2개씩 쌍을 이루고 있어서, 4개 중 2개는 무덤이고 마지막 2개는 영안실이다. 올루갸 너머에는 주택, 왕릉단지, 농업용 건물들인 많은 건물들과 왕실의 묘가 있다. 전체 지역은 신성한 곳으로, 방문객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1938년 이후 건물은 구조가 심하게 손상되어 대대적인 복원과 개보수를 했다. 콘크리트 기둥과 같은 현대적인 재료를 써서 1938년~1940년에 완전히 복원했다. 1990년대에 건물들 대부분에 일어난 변화는 유적의 건축적 가치를 약간 변화시켰다. 화재의 위험이 빈번한 유적은 비, 배수 문제, 흰개미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었다.

작은 건물들 대부분이 결함을 보이고 있다. 1998년 화재로 타버린 건물은 다시 지었지만 자금이 부족하여 이엉으로 엮은 지붕은 없다. 유적지 전체를 둘러쌌던 원래의 갈대 담장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목질의복나무 울타리는 끊임없이 땔감을 찾는 사람들의 손쉬운 목표가 되어 상당히 심하게 손상되었다. 그렇지만 유적은 신성한 종교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으로 어느 정도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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