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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키아 무덤 [Tomb of Askia]

  • 아스키아 무덤
  • 제목 : 아스키아 무덤
  • 설명 : © UNESCO
아스키아 무덤

상세정보

  • 국가 말리(Mali)
  • 위치 가오 지방(Circle and Region of Gao)
  • 좌표 N16 17 23.28|||E0 2 40.416
  • 등재연도 2004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아스키아 무덤은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문화의 영향과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창조하려는 이슬람 문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지역의 건축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기준 (ⅲ) : 아스키아 무덤은 한동안 서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을 지배하고 사하라 지역의 무역을 관할한 송가이 제국의 중요한 발자취이다.

    기준 (ⅳ) : 아스키아 무덤은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독특한 건축 전통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특히 이것은 몇 세기 동안 정기적이면서 전통적인 유지·보수로 진화하는 지역의 건축 전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요약
아스키아 무덤은 송가이(Songhai) 제국의 황제 아스키아 모하메드(Askia Mohamed, 1442~1538)가 1495년 수도 가오(Gao)에 세운 17세기의 인상적인 피라미드 구조물이다. 이는 15세기~16세기 사하라 사막에서 특히 소금과 금 무역을 활발히 한 제국의 풍요와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무덤은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기념적인 진흙 건축 전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 무덤 유적지에는 피라미드 무덤과 평평한 지붕으로 된 이슬람 사원 두 채 그리고 묘지와 야외에 세워진 집회장 등이 들어서 있다. 이 무덤은 아스키아 모하메드가 메카를 순례한 후 돌아와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고, 가오를 송가이 제국의 수도로 정한 때에 건설되었다.
목차
역사적 배경

가오는 사하라 지역 아프리카 남쪽의 고대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도시는 7세기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1세기경 아랍 연대기에 가오의 지명은 카우카우로 기록되었다. 1137년에 송가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 무덤은 1464년에서 1492년까지 이곳을 다스렸던 소니 알리 베르(Sonni Ali Ber)의 조카인 모하메드 아부바카 실라가 세웠다. 소니 알리 베르는 유목민인 투아레그족(Touaregs)·풀라니족(Peuls)·모시족(Mossi)을 몰아내고 송가이 제국의 영토를 넓힌 인물이다.

소니 알리 베르가 죽자 그의 조카인 모하메드 아부바카 실라가 아스키아 왕조를 계승했는데, 그는 아스키아 모하메드로 알려져 있다. 선왕의 영토 확장 정책을 계승한 아스키아 모하메드는 서쪽으로는 대서양, 북쪽으로는 에어(Air, 지금의 니제르)까지 영토를 확장했고 남쪽으로는 숲까지 영토를 제한하였다. 송가이 제국은 금과 소금이 이동하는 무역 경로를 장악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북쪽으로 난 사라하 무역 지구의 길과 남쪽으로 난 숲길을 각각 장악했기 때문이다. 제국은 초기의 가나 제국과 말리 제국을 계승하여 경제적 가치가 높은 무역로를 장악함으로써 이들 제국과 비슷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아스키아 모하메드 통치 시기의 송가이 제국은 통북투 지역과 함께 서아프리카의 학문·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는 북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중동과 교류하면서 문화·상업의 발전을 이룩하여 가능하였다. 16세기에 들어와 계승자 간에 갈등이 생기고 서아프리카로 난 수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송가이 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아스키아 무덤과 300~400가구만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유산면적
4.24㏊
완충지역
83㏊
참고번호
1139
본문

이 유적은 정기적·전통적인 관리와 보수로 지역의 독특한 건축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유적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무덤과 이슬람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무덤과 니제르 강(River Niger) 사이의 서쪽 지역과 북쪽 지역의 일부를 에워싸고 있다. 유적에 둘러싸인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진흙으로 덧칠한 벽에 평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이슬람 사원과 가오의 주변 옛 도시는 말리 제국 중앙에 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곳은 마치 작은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사하라 사막의 남쪽 끝에 있다. 피라미드식 무덤은 진흙 벽돌에다 진흙 회반죽을 덧칠하여 지었다. 울퉁불퉁한 비계 목재가 무덤 표면에 돌출되어 있어서 회반죽을 덧칠하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동쪽에는 꼭대기로 향하는 외부 계단이 구불구불하게 나 있다. 피라미드에 돌출된 비계 들보 ‘숲’과 몇 세기 동안 회반죽을 덧칠하여 유지해 온 건축물의 외벽선이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평평한 지붕으로 된 2개의 이슬람 사원 중 무덤 오른쪽에 있는 것은 남성 전용 예배당이다. 지붕은 정사각형 기둥 69개가 4열로 받치고 있다. 기둥은 회칠을 한 진흙 벽돌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성소의 가장 동쪽 벽의 중앙은 이중 벽감으로 된 미흐라브(Mihrab, 이슬람교 사원에서 신자들이 메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벽 쪽의 오목한 곳)가 뚫려 있다. 이슬람 묘지는 무덤과 사원 그리고 기념 석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아스키아 시대부터 전해 내려왔으며 1980년대 말까지 사용되었다.

약 1㏊에 이르는 큰 울타리의 동쪽에 있는 집회 장소는 타바스키(Tabaski, 양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 때 신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방된 공간이다. 15세기 이후 이곳은 다른 문화적 목적으로 계속 사용되었는데, 이슬람 의례인 ‘정령 신앙자’ 전통과 뒤얽힌 부족 간의 결혼식에 쓰였다.

7세기 말에 세워진 가오는 아랍의 연대기에 카우카우(Kaw Kaw)로 나타난다. 무덤은 11세기 아스카이 왕조를 열었던 모하메드 아부바카 실라(Mohamed Aboubacar Sylla, 아스키아 모하메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키아 모하메드는 이집트를 거쳐 메카로 가던 길에 본 피라미드에 감탄한 나머지 피라미드식 무덤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내려오는 주요한 조상의 봉분 또는 무덤 고분을 사용한 사하라 지역의 오랜 장례 전통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 양식은 알제리 남부 음자브(Mzab) 지역에 있는 이슬람 성지 자이야(Zawiya)의 3층 계단식 정사각형 뾰족탑 형태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아스키아 무덤은 계속해서 이슬람 사원의 일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원의 이름은 아스키아 드지라(Askia Djira)인데, 이는 문자 그대로 아스키아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1960년대에 남자 전용 예배당이 작아서 전통 기법과 자재를 써서 증축하였다. 이 유적지의 가장 큰 변화는 1999년에 유적지 주변에 콘크리트로 큰 외벽을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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