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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상 [The Town Hall and Roland on the Marketplace of Bremen]

  •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상
  • 제목 :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상
  • 설명 : © UNESCO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상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브레멘(Bremen, 자치도시)
  • 좌표 N53 4 33.5|||E8 48 26.9
  • 등재연도 2004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지은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석상은 도시의 자치와 주권을 잘 보여준다.

    기준 (ⅳ) :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석상은 도시의 자치와 시장의 자유를 대표하는 우수한 복합 구조물이다. 시청 건물은 북독일 베저 르네상스 양식의 우수 사례이다. 브레멘의 롤란트 석상은 시장의 권리와 자유를 상징하기 위해 세워진 롤란트 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것이다.

    기준 (ⅵ) : 브레멘의 시청과 롤란트 석상으로 구성된 복합 구조물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생겨난 도시의 자치와 시장의 자유라는 개념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 인물인 브레멘의 롤란트는 샤를마뉴 대제의 12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무훈시(chanson de geste)』 등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서사시의 원천이 되었다.

요약
북서 독일 브레멘의 중심 광장인 시장터에 면한 시청과 광장 중앙에 있는 롤란트 석상은 이 도시의 자치와 주권을 상징한다. 1404년에 만들어진 롤란트 석상은 좌대 위에 5.5m 높이로 서 있다. 옛 시청은 15세기 초에 브레멘이 한자 동맹에 합류한 후 지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17세기 초에 이른바 베저 르네상스(Weser Renaissance)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20세기 초에 옛 시청사 뒤쪽에 지은 새 시청사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복합 구조물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브레멘의 기원은 이 도시가 주교령이 된 8,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빌레하트 주교와 샤를마뉴 대제가 브레멘에 부여한 특전이 설립 기반이었다. 965년에 브레멘은 관세권과 조세권을 획득하였다. 브레멘 시민들은 1186년 특허장에 승인된 바와 같이 시민공동체(universitas civium)의 연합을 이루었으며, 1225년에는 집정관으로 구성된 시의회가 존재하였음이 문헌에 적혀 있다. 이 시의회에서는 시민에게 적용되는 시민법을 마련하였는데, 이 가운데 주로 참조되는 것은 1303년~1304년 개정판이다. 브레멘 시는 1358년에 한자 동맹에 합류하였다.

일찍이 자치권을 획득한 바 있는 브레멘 시는 1646년에 공식적으로 자유 제국 도시로 승인받았으며, 1947년부터 독일연방공화국의 주(州)가 되었다. 브레멘의 자치도시로서 존엄을 상징하는 롤란트 석상은 1404년에 세워졌다. 당초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방화로 소실된 뒤 브레멘 대주교가 석조로 재건하였다. 이는 아직 남아 있는 독일의 롤란트 석상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885년에는 석상을 보호하던 차폐물이 제거되었고, 1938년에는 대폭 수선되었으며, 1959년과 1969년에 추가로 복구 작업을 하였다.

1983, 1984년에는 석상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다시 만들었으며, 두상 부분은 모조로 대체하였다. 채색 작업도 몇 년에 걸쳐서 여러 차례 실시하였다. 브레멘 최초의 시청은 14세기에 만들어졌다. 현재의 구청사는 1405년~1409년에 건설되었다. 1595년~1612년에 건축가 뤼더 폰 벤트하임(Lüder von Bentheim, 1555~1612)이 개조하였는데, 그는 이미 1585년 착수된 라이덴(네덜란드)의 고딕양식 시청 외관 재건축과 브레멘의 다른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벤트하임은 개조 과정에서 광장을 조망하는 새로운 파사드를 만들었다. 베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파사드는 이때 새로운 건축 요소들이 한스 프레데만 드 프리스(Hans Vredeman de Vries), 헨드리크 골트지우스(Hendrik Goltzius), 야코프 플로리스(Jacob Floris) 등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기초를 마련한 건축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909년~1913년에는 뮌헨의 건축가인 가브리엘 폰 자이들이 건물 뒷부분에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신청사를 증축하였다. 브레멘 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폭격을 당하여 건물의 62% 정도가 파괴되었으나, 시청 지역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유산면적
0.29㏊
완충지역
376㏊
참고번호
1087
본문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브레멘의 시청과 롤란트 석상은 도시의 자치와 시장의 자유를 상징하는 복합 구조물이다. 시청은 중세의 잘게쇼바우(Saalgeschossbau) 형태를 띠며, 동시에 북독일 베저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주는 우수한 사례이다. 브레멘의 롤란트 석상은 상업적 권리와 자유를 상징하기 위해 세워진 롤란트 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것이다. 북서 독일의 베저(Weser) 강변에 있는 중세 도시 브레멘은 타원형 모양으로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베저 강, 북쪽으로는 과거 도시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해자인 슈타트그라벤에 둘러싸여 있다.

시청은 동부의 옛 도시 지역 중심에 위치하며, 남쪽의 시장과 북쪽 대성당 광장(Domshof)을 분리한다. 시장의 중앙에는 롤란트 석상이 있다. 시장 건너편에는 과거 상인 단체인 상업회의소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브레멘 대성당과 근대적인 시의회, 왼쪽에는 성모교회가 있다. 광장 서쪽에는 게르하르트 마르크스(Gerhard Marcks)의 작품인 ‘브레멘 음악대 상’이 서 있다. 1960년대에는 시장 동쪽에 자치 도시의 입법을 위한 현대적 시의회 건물(Haus der Bürgerschaft)을 지었다.

시청 건물과 롤란트 석상이 세계 유산에 해당하며, 시장과 대성당 광장은 완충지대에 있다. 시청은 1405년~1409년에 시장 북쪽에 지어져 1595년~1612년에 개조된 구청사와 20세기 초에 대성당 광장 맞은편에 증축된 신청사로 구성된다. 구청사는 평면이 직사각형인 2층 건물이며 담장은 벽돌로,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다. 외관의 벽돌은 어둡고 밝은 층이 교대로 겹쳐 있으며 지붕은 초록색 구리로 되어 있다. 1층은 상업 활동과 연극 공연에 쓰였으며, 1층과 규모가 같은 2층은 주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창문 사이에 세운 황제와 선거후의 석상은 그 연원이 고딕 양식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도시의 자치를 상징하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적 특징도 있다.

시청은 17세기에 개조되었는데, 이때 주랑(柱廊)의 11개 기둥 중 가운데 3개 사이에 커다란 직사각형 창문과 높은 박공(牔栱)이 추가되면서 이른바 베저 르네상스 양식을 구현하였다. 신청사는 뮌헨의 건축가 가브리엘 폰 자이들(Gabriel von Seidl)이 설계했는데, 건축 경연을 거쳐 1909년~1913년에 만들어졌다. 3층인 청사는 의원단과 관청 직원을 위해 쓰인다. 청사의 정면은 클링커 타일로 덮었으며, 건물 세부는 남부 독일의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높이 5.5m의 롤란트 석상은 1404년에 자유 제국 도시 브레멘의 권리와 특전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 독일의 도시와 기타 행정 구역에는 이교도에 대항한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종종 그러한 조각상을 세우곤 하였다. 브레멘의 롤란트 석상은 브르타뉴의 후작이자 샤를마뉴 대제의 용사 12명 가운데 한 명인 롤란트를 기린다. 바로 중세 문학 『롤란트의 노래』에 등장하는 영웅 롤란트이다. 브레멘 시내에는 롤란트 상이 모두 4개 있는데, 브레멘 대성당에 옆에 시장 중앙에 있는 이 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유산으로 지정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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