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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실라 [Taxila]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탁실라

상세정보

  • 국가 파키스탄(Pakistan)
  • 위치 펀자브(Punjab) 주
  • 좌표 N33 46 45|||E72 53 15P
  • 등재연도 1980년
  • 등재기준
요약
사라이달라(Saraidala)의 신석기시대 고분부터 시르캅(Sirkap, 기원전 2세기)과 시르수흐(Sirsukh, 1세기)의 성벽에 이르기까지 탁실라는 페르시아, 그리스 및 중앙아시아로부터 번갈아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불교에 관한 주요 학습의 장이었던 인더스(Indus) 강 유역 도시의 다양한 발달 단계를 보여 준다.
목차
참고번호
139
본문

탁실라는 고속도로인 그랜드 트렁크 로드(Grand Trunk Road)가 있는 라왈핀디(Rawalpindi) 시의 북서쪽 30㎞ 지점에 있다. 이곳은 아시아에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 가운데 한 곳이다. 중국과 서양을 연결한 실크로드(Silk Road)의 지류라는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 도시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창하였다.

탁실라는 1세기~5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불교 기념물들이 탁실라 계곡 전체에 건립되어, 이 계곡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같은 먼 곳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한 종교 중심지이자 목적지로 변모하였다. 이 당시 탁실라는 여러 언어로 언급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무척 유명하였다. 산스크리트어로 ‘탁샤실라’(Takshaçila, ‘뱀족의 왕자‘라는 뜻)로 불렸고, 팔리어(Pâli)로는 ‘타카실라’(Takkasilâ)로 알려졌으며, 그리스어로는 ‘Taxila’, 로마어로는 ‘Taxilla’가 되었다. 또 중국에서는 ‘추차실로(Chu-ch’a-shi-lo)’라 불렸다.

탁실라는 여러 유적이 광대하게 모여 있는 곳이다. 일부는 현대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져 있으며, 이 유적지에는 중석기시대의 칸푸르(Khanpur) 동굴, 사라이달라·비르(Bhir)·시르캅 및 시르수흐 네 곳의 정착지, 여러 시대 및 기리(Giri) 위의 수많은 불교 수도원, 또한 중세 시대의 모스크와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신학교)가 포함된다.

비르마운드(Bhir Mound)는 탁실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 도시이며, 전설적 영웅 라마(Rama) 형제의 아들에 대한 전설에 따르면 아케메네스 왕조가 기원전 6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마을은 인더스 강의 지류인 탐라날라(Tamra Nala)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중요한 문화 중심지였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가 탁실라에서 처음 암송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돌담, 주택의 토대 및 구불구불한 거리는 아대륙(亞大陸, 인도 반도를 가리킴)에 있던 초기 형태의 도시화를 보여 준다.

시르캅은 기원전 2세기 중반에 발견된 요새 도시였다. 탁실라는 힌두시(Hinduš, 인더스 강 유역 국가)라 불리는 왕조의 수도였으며, 펀자브 지방의 서쪽 절반에 해당하였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대왕(Darius I the Great) 통치 하에 아케메네스 왕국에 부속되었으나 페르시아의 점령이 오래가진 못했다. 수많은 주택, 사리탑 및 사원들이 그리스 풍의 그리드 시스템(grid system, 격자형 도시 계획) 위에 만들어졌으며, 지역 건축에서 서양의 고전적 영향이 막대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도시는 중앙아시아의 쿠샨 왕조(Kushans)에 의해 1세기에 멸망하였다.

북쪽으로는 쿠샨 도시인 시르수흐의 유적 발굴지가 둥근 모양의 요새들로 마름돌을 쌓은 불규칙한 직사각형 벽으로 이어져 있다. 이 벽은 아대륙의 건축에 미친 중앙아시아 건축 양식의 초기 영향을 증명해 준다. 연대순으로 탁실라의 두 번째 주요 도시인 시르캅(‘잘린 머리’라는 뜻)은 하티알스푸르(Hathial Spur)의 아래쪽과 탁실라 계곡의 평원에서 발견된다. 탐라 하천과, 북쪽과 남쪽으로는 가우(Gau) 하천이 경계를 이루지만, 현대식 도로와 수로로 인해 오늘날에는 흔적이 거의 완전히 없어졌다.

현재의 도시 배치는 기원전 180년 무렵 박트리아 왕국(Bactrian Greeks)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넓고 개방적인 그리드 시스템 양식을 취하였다. 일반적으로 비르마운드보다는 더 낫게 계획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이 도시는 길이 5㎞ 이상, 두께 최대 6m의 강력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래는 네 면 각각에 출입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북쪽 벽만이 그 유일한 증거이며, 방문객들은 대체로 이곳을 통해 이 도시로 들어가게 된다. 압시달(Apsidal) 사원, 태양(Sun) 사원, 쌍두취탑(Shrine of the Double Headed Eagle), 쿠날라(Kunala) 수도원 및 가이(Ghai) 수도원 등 수많은 사원과 수도원이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비르 고분과 시르캅에서 동쪽으로 정확하게 2㎞ 지점에 있는 대탑(Great Stupa)으로, 파키스탄 전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인상적인 탑 가운데 하나이다. 대탑 주변으로 기원전 1세기부터 쿠샨 왕조 이후의 시대까지 다양한 시기에 법당과 방들이 들어섰다. 아마도 불교의 다양한 학파를 대표하는 순례자들이 기증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구조물들은 광범위한 디자인을 보여 준다.

흥미를 끄는 다른 유적으로는 쿠샨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르수흐 시가 있다. 시르캅 북쪽에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초기 고분 위에 세운 사원 4곳이 있다. 모두 그리스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곳은 아마도 시르캅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잔디알(Jandial)에 있는 사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