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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리그 마이클 [Skellig Michael]

  • 스켈리그 마이클
  • 제목 : 스켈리그 마이클
  • 설명 : © UNESCO / Author : G. Gonzalez-Brigas
스켈리그 마이클

상세정보

  • 국가 아일랜드(Ireland)
  • 위치 케리 주(County Kerry)
  • 좌표 N51 46 18.984|||W10 32 18.996
  • 등재연도 1996년
  • 등재기준

    기준 (ⅲ)(ⅳ) : 스켈리그 마이클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는 유적으로서 여러모로 독특하다. 또한 일부러 먼 바다 한가운데의 피라미드형 바위섬에 세움으로써, 그 두드러진 환경 덕분에 더욱 잘 보존된 초기 종교 거주지의 대표적 예이다. 스켈리그 마이클 유적은 북아프리카, 근동, 유럽에서 특성화한 기독교 수도 생활의 극단을 보여 주는 유례없는 사례이다.

요약
스켈리그 마이클(Skellig Michael)은 아일랜드 남서 해안에서 약 12㎞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섬이다. 이 바위섬의 가파른 경사면에는 7세기 무렵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수도원 유적이 있다. 이 수도원 단지는 아일랜드 초기 기독교도들의 매우 엄격한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스켈리그 마이클 섬은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최근까지 찾는 이의 발길이 드물었던 까닭에 유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목차
역사적 배경

스켈리그 마이클 수도원이 세워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6세기에 성 피오난이 세웠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며, 수도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8세기 말의 것이다. 수도원은 950년~1050년에 성 미카엘에게 봉헌되었는데, 봉헌을 위해 새로운 교회를 짓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다. 이 시기는 성 미카엘 교회로 알려진 현존하는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부분의 건축 양식과도 일치한다. 수도원에는 12세기 말까지 사람들이 살았지만, 이후 기상 악화로 교단이 섬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수도원의 존재는 발린스켈리그스 수도원의 지부로서 유지되었다.

수도원은 12세기에 확장되었고, 오래된 건물들은 보수되었다. 발린스켈리그스 수도원의 부원장은 교황의 전언에 ‘로체의 성 미카엘 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 소 수도원장’으로 계속 언급되었다. 1578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섬의 보호를 맡고 있던 데스몬드 백작이 반란을 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발린스켈리그스 수도원을 해체시켰다. 소유권은 아우구스티누스 체제에서 존 버틀러에게로 넘겨졌다. 그럼에도 섬은 순례의 장소로 남아 있었다.

1826년 무렵, 당시 소유자인 존 버틀러는 섬을 ‘더블린 요새 보존 및 개선을 위한 조합’에 매각하였고, 조합은 서쪽 해안에 등대 2기를 건설하였다. 섬의 남쪽과 서쪽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길을 내고 부두를 개선하면서 등대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졌다. 1880년 공공사업국(Office of Public Works, OPW)이 이 섬을 맡아, 섬에 있는 건축물 보전과 유지를 책임지고 있다.

유산면적
22㏊
참고번호
757
본문

여러모로 독특한 스켈리그 마이클은 일부러 바다 한가운데의 피라미드형 바위섬에 세운 것으로, 남다른 환경 덕분에 잘 보존된 초기 종교 거주지의 대표적 사례이다. 스켈리그 마이클 수도원은 북아프리카, 근동, 유럽에서 특성화한 기독교 수도 생활의 극단을 보여 주는 유례없는 사례이다. 스켈리그 마이클 섬은 케리 주의 아이베라(lveragh) 반도 서쪽 끝 볼루스 곶(Bolus Head)에서 11.6㎞ 떨어진 곳에 있다. 데본기의 사암층과 사력층의 단층이 U자형으로 움푹 팬 곳으로, ‘그리스도 골짜기’ 또는 ‘그리스도의 안장’으로 알려져 있다.

섬 중앙부 해발 130m 지점의 두 산마루 사이에 있는데, 북동쪽 산의 고도는 185m이며 서남서쪽의 산은 218m이다. 바위산은 밖으로 노출되어 상당히 침식·풍화되었지만 서리는 거의 끼지 않는다. 섬은 바다의 상태에 따라 세 지점에서 진입할 수 있다. 이들 지점은 섬의 북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의 경사진 암붕(岩棚)에 터를 잡은 주요 수도원 유적과 계단으로 연결된다. 은둔처는 더 가파른 남쪽 산마루에 있다.

그리스도 골짜기에서 수도원으로 가려면 길고 좁은 벼랑 턱을 지나야 한다. 뒷벽의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번갈아 계단식 단이 보이고, 길이 나뉘는 곳에서 더 큰 담이 나온다. 가장 낮은 층은 예배당·기도실·암자·지하실, 그리고 수많은 십자가와 십자형 석판이 있는 주요 수도원 구역이다. 건물들 사이에 깔린 하얀 석영은 유적 전체에 도시적 색채를 가미한다. 대형 기도실은 뒤집어진 배 모양의 일반적인 형태이며, 서쪽 벽에 문이 있다. 가공된 석재로 만들었으며 기단 부분은 직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가면서 원형이 된다.

길게 늘인 돔은 일렬로 늘어선 커다란 석판 안에서 끝난다. 소형 기도실은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만들었으며 시기적으로 나중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는 벌집 모양의 독특한 화장실 터가 있다. 6개의 암자 가운데 가장 큰 ‘암자 A’는 암자 외에 다른 기능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몇몇 암자에는 찬장과 물건을 매달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돌출된 돌들이 있다. 암자의 모양을 평면도로 보면 정사각형, 직사각형, D자형으로 다양하다. 원래의 포석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암자들도 있다.

성 미카엘(St Michael) 교회는 기도실과 달리 직사각형이고 본래 목재 지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단계로 건설된 것으로 보이며, 회칠한 석재로 만든 작은 교회는 나중에 좀 더 큰 사암 블록을 사용하여 확장하였다. 스켈리그 마이클 섬의 수도원을 건립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6세기에 성 피오난(St Fionan)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을 뿐이다. 기록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8세기 말의 것이다. 수도원은 950년~1050년에 성 미카엘에게 봉헌되었다.

봉헌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교회를 짓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으며, 이 시기는 성 미카엘 교회로 알려진 현존하는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부분의 건축 양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12세기 후반까지는 사람이 계속 거주하였지만, 기상 악화로 섬 주위 바다의 폭풍이 심해지면서 수도자들은 본토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도원의 존재는 발린스켈리그스(Ballinskelligs) 수도원의 지부로서 유지되었다. 성 미카엘 교회는 12세기에 확장되고 옛 건물들도 보수되었다. 발린스켈리그스 수도원의 부원장은 로마 교황의 서신에 ‘로체(Roche, 스켈리그를 가리킴)의 성 미카엘 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 소(小) 수도원장’으로 계속 언급되었다.

1578년에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스켈리그 마이클 섬의 보호를 맡고 있던 데스몬드(Desmond) 백작이 반란을 일으키자 발린스켈리그스를 해체하였다. 그 후 섬은 아우구스티누스 체제에서 존 버틀러(John Butler)에게로 넘어갔고, 1826년 무렵에는 대서양 연안에 2기의 등대를 세운 ‘더블린 요새 보존 및 개선을 위한 조합(Corporation for Preserving and Improving the Port of Dublin)’에 매각되었다. 이 조합은 후에 아일랜드 등대 위원회(Commissioners of Irish Lights)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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