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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上都) 유적 [Site of Xanadu]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상도(上都) 유적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 좌표 N42 21 28.8|||E116 11 6.46
  • 등재연도 2012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상도 유적의 위치와 환경은 몽골족의 문화와 중국 한족의 가치 및 생활양식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도시 유적은 두 민족의 융합을 의미하는 도시계획의 형태를 보여 준다. 원 왕조는 몽골족과 한족의 사상과 제도를 결합하여, 그 당시에 알려져 있던 세계 안에서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상도 유적은 여러 민족 공동체가 참여한 통합도시계획의 독특한 사례이다.

    기준 (ⅲ) : 상도 유적은 원나라의 최고의 통치자이자 정복자인 쿠빌라이 칸이 중국(피정복자인 한족)의 문화와 정치제도의 흡수하고 그들의 종교를 개종시키면서, 동시에 몽골의 원래 문화전통을 유지하고자 한 정복자의 결단 및 수고를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

    기준 (ⅳ) : 상도 유적의 위치와 환경은 도시의 형태와 함께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공존 및 융합을 보여 준다. 상도에서 한족의 도시계획에다가 원 왕조의 몽고식 생활양식에 필요한 정원과 경관을 결합함으로써 인류사에 있어 중요한 단계를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가 되었다.

    기준 (ⅵ) : 13세기 상도에서는 불교와 도교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동북아시아로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었다.

요약
만리장성 북쪽에 있는 상도(上都, ‘제너두’라고도 불린다) 유적은 1256년에 몽골 지배자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이 그의 자문가인 한인(漢人) 류빙종(劉秉忠)에게 명하여 건설한 전설적인 수도이다. 면적 25,000ha에 이르는 이 유적은 몽골 유목민의 문화와 한족의 문화를 융합하려 한 독특한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쿠빌라이 칸은 원(元)나라를 세워 1세기 동안 중국을 지배하였으며 그 지배 영역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종교 분쟁으로 동북아시아에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여러 지역에서 그 문화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수도 유적은 중국의 풍수지리(風水地理) 전통에 따라 주변의 산과 강과 관련하여 계획되었다. 사원, 궁전, 묘, 유목민의 야영지, 그밖에 수로와 티에판강(Tiefan’gang) 운하를 포함한 도시의 유적이 특징적으로 남아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상도 유적은 문화적 융합을 보여 주는 초원의 수도 유적이다. 이곳은 북부 아시아의 유목 문명과 농경문명이 만나 상호 융합된 모습을 보인다. 몽골 고원의 남동부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1263년~1273년까지 쿠빌라이 칸의 첫 수도였고, 1274년~1364년까지 원 왕조가 여름동안 머무는 수도였다. 도시 유적과 무덤군은 초원지대 위에 중국 전통의 풍수지리 원칙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북쪽으로는 산을 배경으로 남쪽에 강을 두고 남북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상도에서부터, 쿠빌라이 칸의 기마 부대는 중국의 농경문명을 통합하고 그 문화에 일부 동화되기도 하면서 원 제국을 북아시아로 확대했다. 유목민의 야영지와 왕의 사냥터 흔적이 있는 외성으로 부분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궁전과 제국의 도시인 상도의 평면배치는 이런 문화적 융합의 독특한 사례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물을 끌어들이는 대규모 물 관리시설의 흔적이 티에판강 운하 유적에 남아 있다. 쿠빌라이 칸은 이곳에서 권좌에 올라, 종교 논쟁을 주최하기도 하고, 수세기 동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술 작품을 남긴 외국의 여행가들을 환대하기도 하였다. 이곳은 전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널리 전파한 곳이기도 하다.

완전성

상도 유적은 1430년에 폐허로 버려졌다. 오늘날 대부분 초지로 뒤덮인 넓은 고고 유적지에는 13세기와 14세기에 건설되어 이용되었던 상도 도시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중원의 전통적 도시계획과 몽골족의 부족회의 및 사냥을 위한 사전 협의 장소로서 궁전도시·제국의 도시·외곽 도시 등의 성벽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또 궁전과 사원 건물이 있던 언덕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는 발굴했다가 기록만 남기고 다시 묻은 곳도 있다. 성문 밖의 주거지 유적지와 티에판강 운하와 묘지 지역 모두 자연 환경과 문화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 묘지는 도시의 입지에 꼭 필요한 자연적 요소들, 즉 4가지 유형의 초원 경관과 함께 북쪽으로는 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이 흐르는 형세를 하고 있으며 특히 강의 습지와 연관되어 있는 금매화 평원이 펼쳐져 있다. 그 경관에서도 상도 유적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진정성

고고학적 발굴 유물과 역사적 기록에서 유산의 진정성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수도로서 설계와 역사적 배치, 그리고 건축 자재에서 몽고족과 한족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은 상도에서 몽골인과 한족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 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밍데(Mingde) 문과 제국 도시의 동쪽 성벽을 수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구조를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지리적 환경과 초원의 경관은 손상되지 않은 그대로이고, 초원의 수도가 지닌 환경과 광활한 공간적 느낌을 여전히 전해주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유산은 국가·지방·자치시의 법률에 의해 다양하게 보호되고 있다. 상도 도시와 주거지역, 그리고 티에판강 운하를 포함하는 좁은 지역은 국가 수준에서 문화유적보호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법에 의거하여 보호된다. 진즈(镇子) 언덕의 무덤을 포함한 지정 구역은 네이멍구자치구의 정부 수준에서 보호된다. 모돗(Modot)의 묘지를 포함하고 있는 지정구역과 12곳의 지정된 오보(Oboo) 유적도 네이멍구자치구 정란 기(Zhenglan Qi)차원에서 보호된다.

보호구역 주변의 초원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원보호법(1995년 공포, 2002년 개정)과 네이멍구자치구의 초원보호법(1984년 공포, 2004년 개정)의 관할을 받고 있다. 네이멍구자치구의 상도 유적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의해 전반적으로 보호되며, 시린궈러 맹(锡林郭勒盟)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런 법률에 기초하여, 유적 주변의 농지 개간을 억제하고 초원의 생태계와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상도 유적지와 주거지역 주변의 국가보호구역은 모돗 묘지와 진즈 언덕 묘지 주변 지역과 함께 울타리로 경계하고 있다.

유산의 관리는 상도 유적의 보존 및 관리계획의(2009~2015) 지침에 의해서, 시린궈러 맹 보존 및 관리 위원회 하에서 상도 문화유산관리부에서 유산 관리를 조정하고 있다. 유산을 보존하면서 지역의 사회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막화 억제를 비롯한 초원의 생태계 보호와 가축 수용력 및 관광 수요의 증가와 관련하여 이해당사자간의 요구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산면적
25,131㏊
완충지역
150,722㏊
참고번호
1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