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세웰 광산 마을 [Sewell Mining Town]

  • 세웰 광산 마을
  • 제목 : 세웰 광산 마을
  • 설명 : © UNESCO / Author : F. Bandarin
세웰 광산 마을

상세정보

  • 국가 칠레(Chile)
  • 위치 리베르타도 제네랄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주(Libertador General Bernardo O'Higgins Region), 카차포알 현(Province of Cachapoal), 마찰리 시(Municipality of Machali)
  • 좌표 S34 5 4|||W70 22 58
  • 등재연도 2006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독특한 광산 마을인 세웰은 외국에서 들여온 기술, 투자, 건축물 재료를 통해 발달했다. 세웰의 마을 조성 계획과 기술, 간접적인 경제적 이득 등이 다른 지역의 관행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첨단 기술이 널리 이용된 마을 조성 계획은 독특하며, 환경에 대한 실용적인 반응으로 여겨진다. 세웰은 세계에서도 규모가 큰 구리 산업의 일부이지만, 다른 지역과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자본을 교환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의 자본과 장비, 그리고 북아메리카 유형의 건물들이 영향을 주었다. 공업국의 자원과 지방의 노동력을 결합해 고부가가치의 천연자원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것으로, 전 세계의 여러 벽지에서 태어난 기업형 도시의 뚜렷한 예이다. 이곳은 대규모 광산 기술의 세계적인 확산에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이 특성이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기준 (ⅲ) : 이런 기준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웰은 기술적 · 사회적 · 경제적 발달의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에서 독특한 부분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비록 이 마을의 공간 배치가 독특하지만, 이러한 독특한 배치는 특별하거나 폭넓은 문화 전통의 일부라기보다는 자연환경 조건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이런 특징이 등재기준 (v)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공간 배치의 관점에서 독특했지만, 세계 곳곳에는 많은 광산지들이 있다. 심지어 구리 광산지만 보더라도,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20세기에 구리 광산의 발전상을 보여 주는 다른 유사한 사례가 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이 점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기준 (ⅳ) : 세웰은 높은 고도에 있는 산악지대라는 불리한 환경에 맞추어 개조된 마을로, 기업형 도시의 뚜렷한 예이다. 그래서 이곳의 건축 양식은 표준화되어 있으면서도 배치상으로는 독특하다. 위치라는 관점을 배제하면 예외적인 사례라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폭넓은 글로벌화 현상의 일부로서 잘 보존된 기업의존형 마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
세웰 광산 마을은 랑카구아(Rancagua)에서 동쪽으로 60㎞ 떨어진 표고 2,000m의 안데스 산맥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극도의 기후 환경 속에 있는 광산 도시이다. 1905년 브래든 구리 회사(Braden Copper Co.)가 구리를 채굴하기 위해 건설했으며, 1915년에는 같은 회사의 초대 사장인 바턴 세웰(Barton Sewell)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세웰’로 정했다. 이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구리 광산인 엘 테니엔테(El Teniente)의 노동자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졌다. 공업국의 자원과 지방의 노동력을 결합해 고부가가치의 천연자원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형태로, 전 세계의 여러 벽지에서 태어난 기업형 도시의 대표적인 예이다.

기차역에서 시작하는 큰 중앙 계단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다니기에는 너무 가파른 지형을 끼고 있다. 그래서 주요 공공장소나 마을의 광장은 공장과 장식용 나무가 심어진 불규칙적인 모양의 형식적 광장 루트를 따라 건설되었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건물들은 주로 선명한 녹색과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칠해진 목재 건물이다. 세웰에는 한때 15,000명의 주민이 있었지만, 1970년대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해 지금은 이곳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세웰 광산 마을은 20세기 초반에 기업이 조성한 광산 마을의 사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광산 마을은 외국의 투자와 기술로 설립됐으나, 기본적으로는 그곳의 지형과 노동력을 이용했다. 이것은 남아메리카 구리 광산의 번영과 대규모 광산 기술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초창기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유산면적
17㏊
완충지역
33㏊
참고번호
1214
본문

엘 테니엔테 구리 매장은 스페인 정복 시대 이전부터 채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세기~17세기에 구리 매장의 원료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 수출되었고, 그 후 200년 동안 거의 활동이 없었다. 1897년에 그 지역의 구리 층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광산 권리의 소유주는 구리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큰 지점을 발견했고, 구리 추출은 거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03년에는 1894년의 산티아고 대 박람회에 참가했던 북아메리카의 광산기술자 윌리엄 브래든(William Braden)이 이곳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브래든은 1904년 칠레에 도착해 소유권을 얻기 시작했으며, 이와 동시에 랑카구아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까지 도로가 건설되었다. 브래든은 아메리칸 제련 및 정제사(American Smelting and Refining Company)의 사장인 내시(E. W. Nash), 그리고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바턴 세웰(Barton Sewell)과 힘을 합해 브래든 구리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2년간 기본적인 시설이 개발되었고, 미국에서 수입된 대량의 기계류와 광산 장비에 대해 칠레 정부가 동의한 세관 면세가 허가되었다.

1906년까지 첫 번째 제조 공장과 발화 집중 장치가 세워졌고, 리프트 건설과 전기 발전기도 설치되었다. 이러한 모든 작업은 최첨단 기술과 연관되어 있었지만, 극단적으로 외진 곳에 있는 지리적 조건 탓에 조금씩 지연되었다. 그러나 1905년에 채광에 대한 공식적인 인가를 받은 후 채광이 시작되었다.

1909년 미국의 경기 후퇴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1915년에 전반적인 통제권을 잡은 구겐하임 형제 소유의 회사에 의해 새로운 자금이 투입되었다. 브래든 구리 회사는 케니코트(Kennecott) 구리 기업의 자회사가 되었다. 회사를 위한 운영 토대는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는 랑카구아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17년 세웰의 주조 공장 가운데 오래된 것은 칼레토네스(Caletones)의 좀더 현대적인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칼레토네스 역시 새롭게 발달한 도시이다.

회사는 번창했지만, 산업안전 측면에서 광부들의 조건은 좋지 못했다. 1945년에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낸 비극적인 재난이 발생했다. 광산 입구에서 일어난 화재로 연기가 갱 안으로 들어가 355명의 광부들이 질식사한 것이다. 이 ‘연기 비극’으로 인해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안전사고 입법의 부당함과 외국 기업에 의해 휘둘리는 권력에 대한 국가적인 토론을 야기했다. 이에 대해 회사는 산업 안전을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1950년대까지 칠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구리 생산국이었다. 1967년 국유화의 결과로 칠레 정부는 광산의 51%을 점유했고, 1971년에 이 산업은 국영화되었다. 회사는 칠레의 구리 회사에 분할이 되었다. 이로 인해 광부들의 휴식공간이었던 엘 테니엔테 클럽(El Teniente Club)과 A급 주거 건물, 그리고 다른 건물들이 헐리게 되었다.

세웰 마을의 주민들은 아래쪽 골짜기로 이동했으며, 1980년에 버려진 마을은 하도급 업자들의 직원을 위한 기숙사로 일부 사용되었다. 이후 몇몇 빌딩은 변경되고 다른 건물들은 파괴되었다. 1980년대 말경에 마을이 국가적인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더 이상 파괴되지는 않았다. 광산은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으며, 구리 회사의 엘 테니엔테 지사는 현재 세계 구리의 3% 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