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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Santiago de Compostela (Old Town)]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 제목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e Thébault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상세정보

  • 국가 스페인(Spain)
  • 위치 갈리시아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 of Galicia)|||코루냐 주(Province of A Coruña)
  • 좌표 N42 52 50.736|||W8 32 40.848
  • 등재연도 1985년
  • 등재기준

    기준(ⅰ)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인 대성당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최대 성지 중 하나로서 가치가 있는 귀중한 역사적 중심 지대를 보존하고 있다.

    기준(ⅱ) : 산티아고에 있는 성전은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시대에 갈리시아 지역을 비롯해 이베리아 반도 북부 지역의 건축과 예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준(ⅵ) : 이 문화유산은 중세 역사의 주요 테마 중 하나와 관련이 깊다. 북해와 발트 해 연안에서 수천 명의 순례자가 수백 년 동안 참된 신앙의 길인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갈리시아의 성지까지 걸어서 갔다.

요약
스페인 북서부의 유명한 순례지인 이곳은 스페인의 기독교가 이슬람교와 벌인 항쟁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10세기 말에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1세기에 완전히 재건되었다. 로마네스크·고딕·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있는 산티아고(Santiago)의 옛 시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이다. 가장 오래된 기념물들은 성 야고보(St James)의 무덤과 대성당 주변에 모여 있는데, 포르티코 데 라 글로리아(Pórtico de la Gloria, 영광의 문)가 특히 유명하다.
목차
참고번호
347
본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중세 역사의 주요 테마 중 하나와 관련이 깊다. 북해와 발트 해 연안에서 가리비 껍데기(옛날 성지 순례자의 표지)와 석장(순례자들이 사용한 지팡이)을 지닌 수천 명의 순례자가 수백 년 동안 참된 신앙의 길인 산티아고의 길을 따라 갈리시아(Galicia)의 성지까지 걸어서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인 대성당 주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독교의 최대 성지 중 하나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이곳은 역사적 중심 지대로 보존되어 있다. 산티아고에 있는 이 성전은 로마네스크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갈리시아 지역을 비롯해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 북부 지역의 건축과 예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도시는 성 대(大) 야고보(St James the Greater)의 무덤 주위에 모여 있는 빼어난 기념물들의 유적이며,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기독교에서 가장 위대한 순례지로 가는 모든 길의 최종 목적지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념물의 완전성으로 인해 고유한 가치와 보편적인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걸작들은 비할 데 없이 독특하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 넘쳐흐르는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요소들을 사용함으로써 초월적 미학에도 기여하고 있다.

기독교 순례 도시로서의 이러한 특성은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의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풍요로워졌다. 이 도시를 본보기로 아주 깊은 신앙이 스며들어 신성해진 몇몇 장소 중 하나는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도의 유골이 묻혀 있던 곳이 기적적으로 발견된 후, 아스투리아스(Asturias)의 왕 알폰소 2세(Alfonso II)의 통치 기간인 818년 무렵에 이곳에 성전이 세워졌다. 그 후로 이 갈리시아인의 무덤은 이슬람에 맞선 스페인 기독교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클라비호(Clavijo) 전투(844) 후에 압달라만 2세(Abd ar Rahman II)의 군대에 승리한 것은 산티아고 때문에 가능했다. 997년에 알 만수르(Al Mansour)에게 함락되어 버려진 이 도시는 11세기에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도의 무덤 근처에 재건되었다.

이 시대에 가장 오래된 기념물은 대성당이며, 대성당은 1211년에 봉헌되었다. 찬탄할 만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조물(라틴십자 모양의 평면, 성가대석, 산책 회랑, 방사상의 예배실, 많은 회랑에 의해 장엄하게 보이는 내부 공간)과 배열된 조상들(수랑의 남쪽 가지에 있는 푸에르타 데 라스 플라테리아스(Puerta de las Platerías, 은세공인의 문))을 갖추고 있었다. 12세기 내내 건축이 계속되었고, 1188년에 주 파사드에 ‘영광의 문’인 포르티코 데 라 글로리아가 세워지자 함께 승리를 축하하며 건축이 종결되었다.

이후 성가대석과 수랑에 고딕 예배실을 추가하고, 1448년에는 둥근 천장, 그리고 16세기에는 안뜰의 회랑, 마지막으로 오브라도이로(Obradoiro)의 추리게라 양식(Churrigueresque) 관(棺)(1738~1750)을 추가했다. 계속 이어진 장식 과정은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변모했지만, 기념물로서의 우수성은 언제나 존중받으며 이 완전한 중세 도시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심 지역 중의 하나인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에서는 각종 건축 양식이 혼합된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디에고 헬미레스(Diego Gelmírez) 궁과 산 헤로니모(San Jerónimo) 궁이 있고, 엔리케 데 에가스(Enrique de Egas)가 만든 플라테레스크(Plateresque) 양식의 삽입형 정문이 달린 레알 병원(Hospital Reál)에는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1505~1511)가 있다. 또한 라호이(Rajoy) 궁은 신고전주의적 주제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구성이 조금 더 느슨한 도심 이외의 지역에서도 17세기와 18세기의 주제들이 주조를 이루는 탁월한 도시 구조 속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서 유래한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건축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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