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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캐트린 지구 [Saint Catherine Area]

  • 제목 : 성 캐트린 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Dr S. Ghabbour
성 캐트린 지구

상세정보

  • 국가 이집트(Egypt)
  • 위치 자눕 시나 주(Governorate of Janub Sina)|||남부 시나이(South Sinai)
  • 좌표 N28 33 22.428|||E33 58 31.548
  • 등재연도 2002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성 캐트린 수도원의 예술 작품들, 그리고 험준한 풍광과 조화를 이룬 수도원 건축물의 통일성은 인간의 창의적 천재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기준 (ⅲ) : 성 캐트린 수도원은 오지에 자리 잡은 기독교 수도원 정착의 동방 전통을 보여주는 매우 초기의 훌륭한 사례들 중 하나이다. 이것은 자연의 위대함과 영적 헌신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기준 (ⅳ) : 초기 기독교에서는 오지의 수도원에서 금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로 인해 여러 기독교 수도원 공동체들이 탄생하였다. 성 캐트린 수도원은 6세기 이래로 수도원 기능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 초기 기독교 수도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기준 (ⅵ) : 성 캐트린 지구는 신성한 시나이 산의 중심에 있고, 예루살렘의 옛 시가와 마찬가지로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이슬람·유대교에 의해 신성시된다.

요약
성 캐트린 지구는 호렙(Horeb) 산자락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과 그 주변지역을 이른다. 호렙 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기 때문에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로 여겨진다. 이 산은 이슬람교도에게는 ‘제벨 무사(Jebel Musa, 모세의 산)’라고 불리며 숭배되고 있다. 6세기경 건축된 캐트린 수도원은 오늘날까지 이전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기독교 수도원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수도원의 벽과 건물은 비잔틴 건축 양식 연구에 매우 중요하며 수도원은 또한 초기 기독교 필사본과 아이콘(icon, 성상)을 보유하고 있다. 호렙 산의 험준한 산지 풍경과 수많은 유적·기념물들이 어울려 완벽한 경관을 조성하고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시나이 반도 남부는 결코 풍요로운 환경이 아니었지만 수천 년 동안 인간의 거주지로 이용되었다. 선사시대에 이곳에 살던 아말레키트인(Amalekites)의 거주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것은 초기 청동기시대(기원전 3000년~기원전 2800년)의 것으로 알려졌다. 중석기시대 후기와 신석기시대 초기의 거주지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사라비트 알 카뎀(Sarabit Al-Khadem)에서는 제1왕조에서 제20왕조에 이르는(기원전 3000년~기원전 700년) 시대의 터키옥(玉)이 채굴되었고, 터키옥의 여신인 하토르(Hathor)를 모시는 신전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셈족 노동자가 이집트 주인을 도우며 ‘원시 시나이 문자(Proto-Sinaitic)’라고 알려진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와디 마그하라(Wadi Maghara)는 이집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터키옥의 보고(寶庫)였다.

기원전 4세기 이후로는 페트라(Petra) 인근 지역 출신의 나바테아인(Nabataeans)이 이곳을 지배하였다. 이들은 팔레스티나에 존재했던 고대 아라비아 왕국의 백성으로, 산악 도시인 페트라를 건설하였다. 나바테아인은 아프리카·인도·중국산 사치품이 지중해 세계로 들어오는 부유한 육로를 포함해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는 교역로를 장악했는데, 이들이 남긴 흔적은 상인단의 자취와 탄광 유적, 나와위스(nawawis) 거주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서기 106년에 로마가 페트라를 파괴하자 나바테아인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자발리야족(Jabaliya)인 유목민이 되었다.

로마인들에게 ‘팔레스티나 테르티아(Palestina Tertia)’로 알려진 시나이 지역은 야생의 황무지가 되었는데, 이 땅은 초기 기독교 은둔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4세기 중·후반에 로마인들이 철수한 뒤 완전히 무법 상태가 되자, 결국 수도원 공동체들은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비잔틴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건축가와 석공들로 이뤄진 팀을 파견하고, 수도사들에게 시나이 산으로 알려진 바위 언덕 밑에 요새를 건설하도록 하였다. 이 요새 건물은 기독교 공동체를 보호하고, 동시에 아카바에서 수에즈에 이르는 길을 보호하려는 이중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이 건설되었으며, 군사적 요새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변용 성당의 본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사망할 즈음인 560년 무렵에 건설되었다. 이 성당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지만, 이후 3세기에 순교자인 성녀 캐트린에게 다시 봉헌되면서 머리와 손이 성물로서 보관되었다. 10세기에 수도원은 이 성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두었다. 시나이 산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모세의 산(Mount Moses, Jebel Musa/Gabbal Moussa)’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에게도 이곳은 신이 모세에게 십계명(Law to Moses)을 내려주고 백성에게 약속한 성지이다.

이로 인해 성 캐트린 수도원의 기독교 공동체는 항상 이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 예로 623년에 예언자 무함마드가 서명한 악티네임(Actiname, 신성한 문서)이라는 문서는 성 캐트린 수도사의 병역과 세금을 면제하며,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에게 모든 도움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였다. 답례로 수도원의 기독교 공동체는 파티마 왕조(909~1171) 시기에 벽이 있는 구내의 예배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이 사원은 13세기 말에 이집트의 맘루크가 통치할 때까지 정례적으로 이용되었다. 이슬람 사원은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절에 황폐해져 20세기 초까지 복원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특별한 경우에 여전히 이 사원을 이용하고 있다.

유산면적
60,100㏊
참고번호
954
본문

성 캐트린 지구에 있는 성 캐트린 수도원은 6세기에 세워졌으며, 초기의 수도원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기독교 수도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 수도원은 초기 기독교 필사본과 아이콘을 보유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오지(奧地)의 수도원에서 금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로 인해 여러 기독교 수도원 공동체들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성 캐트린 수도원은 초기 기독교 문화가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영적 헌신이 결합한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수도원 건물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지만, 상단부는 나폴레옹의 지시에 의해 더 작은 돌덩어리로 복원되었다. 성벽의 여기저기는 십자가, 결합 문자 등 기독교를 상징하는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주요 건물로는 비잔틴 건축가인 스테파노스(Stephanos)가 만든 ‘그리스도의 변용(變容, the Transfiguration) 성당’이 있는데,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성당은 주요 네이브(nave, 교회당 중앙의 회중석 부분)가 넓게 건축되었다. 성당의 양쪽 측랑(側廊)은 기독교를 상징하는 기둥머리, 애프스(apse), 나르텍스(narthex)가 있는 거대한 화강암 원주로 되어 있다. 각각의 측랑에는 3개의 예배당이 있고, 애프스의 반대편에 예배당이 하나 있다.

애프스 뒤에는 수도원에서 가장 신성한 건물인 ‘불타는 떨기나무 예배당(Chapel of the Burning Bush)’이 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4세기의 예배당을 포함한다. 이 예배당은 신성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1871년에 건설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종탑은 그레고리우스 수도사의 작품이며, 사각형 모양의 옛 수도원 식당 벽에는 16세기 벽화가 있다. 수도원의 도서관은 기독교 세계에서 바티칸의 도서관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곳에 소장된 희귀한 책들의 종수와 가치 역시 바티칸 다음으로 손꼽을 만하다.

‘작은 십자군 예배당’ 자리에 있는 파티마 이슬람 사원은 1101년~1106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사원은 계획상으로 사각형 모양이고, 북쪽 끝에 2채의 작은 미너렛(첨탑)이 있으며, 정면에 작은 안마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잘 복원된 지붕 아래 고대 올리브 압착기가 있다. ‘모세의 분수’에는 지하의 샘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물을 계속 제공하며, 벽의 안쪽 면에 수도사의 독방이 있다. 벽의 외부에는 오랫동안 수도사들이 만든 삼각형 모양의 수도원 정원이 있다. 수도사들이 이곳에 흙을 가져왔고, 관개를 위해 물을 저장하는 통을 만들었다. 정원 옆에는 공동묘지와 납골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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