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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신성 도시 [Sacred city of Kandy]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캔디 신성 도시

상세정보

  • 국가 스리랑카(Sri Lanka)
  • 위치 센트럴 주(Central Province)
  • 좌표 N7 17 37|||E80 38 25
  • 등재연도 1988년
  • 등재기준

    기준 (ⅳ) : 거대한 복합 단지인 캔디 신성 도시는 키르티 스리 라자시마 왕조에서 재건축하였으며, 궁정과 불치사를 나란히 배치한 건축 공학의 한 형태를 뚜렷이 보여 준다. 4세기부터 사원과 궁정을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629년 당나라의 고승 현장(玄裝)이 묘사하기로는, 아누라다푸라의 불치사는 왕궁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다. 싱할라 왕조의 진정한 수호신인 유물이 수도가 바뀔 때마다 운반되었던 모든 곳에 세워진 사원들도 이처럼 궁정 가까이에 있었다.

    기준 (ⅵ) : 불치사, 궁정, 캔디 신성 도시는 인류가 창조한 위대한 종교 중 하나인 불교가 전파되는 역사와 밀접하고도 명백한 연관이 있다. 캔디의 불치사는 칼링가에서 스리랑카로 오는 석가 치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으며, 종교 제례를 풍성하게 보여 주는 증거 자료이다. 석가 치아 사리는 스리 메가바나의 치세 동안에 마지막으로 이전되었다.

요약
캔디는 ‘센카다가라푸라(Senkadagalapura)’ 시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성지이다. 캔디 신성 도시(Sacred city of Kandy)는 싱할라(Sinhala)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서, 1815년에 영국이 스리랑카를 점령할 때까지 싱할라 왕조의 후원을 받아 2,500년 이상 디나할라(Dinahala) 문명을 꽃피웠다. 유명한 성지 순례 유적인 불치사(佛齒寺, Temple of the Tooth Relic, 석가모니의 진신 치아가 보관된 사원)가 이곳에 있다.
목차
참고번호
450
본문

거대한 복합 단지인 캔디 신성 도시는 키르티 스리 라자시마(Keerti Sri Rajasimha) 시기에 재건축하였으며, 궁정과 불치사를 나란히 배치한 건축 공학 형태를 뚜렷이 보여 준다. 불치사, 궁정, 캔디 신성 도시는 인류가 창조한 위대한 종교 중 하나인 불교 전도 역사와 밀접하고도 명백한 연관이 있다. 캔디의 불치사는 칼링가(Kalinga, 인도의 오리사(Orissa) 주)에서 스리랑카로 건너온 석가 치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으며, 불교의 종교 제례를 풍부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다. 석가 치아 사리는 스리 메가바나(Sri Meghavanna, 310~328) 치세 동안에 마지막으로 이전되었다.

14세기에 건설한 캔디 시는 스리랑카의 ‘문화 삼각지(Cultural Triangle)’ 최남단에 있다. 캔디는 1592년에 왕국의 수도가 되었는데, 이 기간은 수많은 섬 사람이 유럽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투에 밀리면서 해안 지역에서 점차 내륙으로 후퇴하던 어려운 시기였다. 캔디 시는 영국 군대가 1815년 2월 14일에 상륙할 때까지 오랜 시간 싱할라의 독립 요새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캔디 시는 비말라 다르마 수리야 1세(Vimala Dharma Suriya, 재위 1591~1604)부터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헤(Sri Wiekrama Rajasinghe, 재위 1798~1815) 시절까지 왕권의 마지막 도읍이었다.

캔디 시는 현재 불교의 정신적 수도로서, 수백만 불교 신도에게 신성 도시로 남아 있다. 달라다 말리가바(Dalada Maligawa, 불치사의 스리랑카 이름)에는 석가의 치아 유물이 봉안되어 오래도록 경배되어 왔다. 매년 열리는 의례에서 최고 절정은 에살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 축제에서 벌이는 화려한 행렬 의식이다.

캔디 시는 1803년~1807년에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헤가 조성한 인공 호수 근처 언덕 사이 작은 숲이 우거진 깊은 계곡에 건설되었다. 호수의 북쪽 기슭에 있는 유적지에는 커다란 알현실, 불치사, 스리 위크라마 궁, 왕비의 저택과 목욕탕, 팔레 와할라(Palle Wahala), 란 아유다 마두와(Ran Ayuda Maduwa) 등을 포함하는 왕궁 유적이 있다. 드왈라(Dewala), 말와테 승원(Malwatte Vihara), 아스기리야 승원(Asgiriya Vihara)도 이곳에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궁정과 불치사에 한 가장 최근의 보수 작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키르티 스리 라자시마(Keerti Sri Rajasimha, 1747~1782) 치세 때에 있었다. 불치사는 1603년에 처음 세웠으나 1637년에 포르투갈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가 1697년에 복원하였다.

역사의 첫 수도인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의 거대한 건축을 모델로 삼아, 오늘날의 웅장한 건축물 하부 구조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아주 멋진 건물을 축조하기 위해 화강암과 함께 석회석, 대리석, 조각한 나무, 테라코타, 금속, 상아 등의 다양한 자재를 사용하였다.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하고, 대들보와 천장은 댄서, 곡예사, 동물 등 여러 문양을 넣었을 뿐 아니라 순수한 장식용 주제의 그림도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