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 [Sacred City of Anuradhapura]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

상세정보

  • 국가 스리랑카(Sri Lanka)
  • 위치 아누라다푸라 지구(Anuradhapura District)|||노스센트럴 주(North Central Province)
  • 좌표 N8 19 60|||E80 22 60
  • 등재연도 1982년
  • 등재기준
요약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깨달음의 나무(tree of enlightenment)’인 보리수 주변에 건설되었다. 이 보리수의 가지는 아소카(Asoka) 왕의 딸이며 비군지의 계율을 만든 상가미타(Sanghamitta)가 기원전 3세기에 가져왔다고 한다.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1,300년 간 실론(Ceylon, 지금의 스리랑카)의 정치적·종교적 수도였으나, 993년 타밀족(Tamil)의 침략을 받아 쇠퇴했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이 유적은 궁전, 수도원, 그리고 다른 유적들과 함께 한동안 정글 숲에 묻혀 있었으나 지금은 다시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목차
참고번호
200
본문

아누라다푸라를 보면 신할리즈(Sinhalese) 문명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아누라다푸라 지방은 인도 남부의 타밀, 판디아 왕국(Pandyas), 촐라 제국(Cholas) 등의 침략을 받았으나, 스리랑카 문명이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신성 도시는 수세기 동안 주변의 건축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가바(Dagaba, 사리탑)는 눈에 띄는 탁월한 유산으로, 이것은 원형 기단 위에 하나의 암석으로 된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신할리즈족 다가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불교의 주요 성지 중 한 곳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에서 기원전 3세기에 가져온 보리수 가지가 자라서, 지금은 브라젠 궁(Brazen Palace) 근처의 성소에서부터 유적 중심지까지 펼쳐져 있다. 싯다르타(Siddharta)의 유물은 아누라다푸라에 특별한 종교적인 지형을 그려 놓았다. 아누라다푸라에는 아소카 왕에게서 받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기원전 3세기경 티사(Tissa) 왕이 세운 투파라마(Thuparama) 다가바가 있다.

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4세기에 건설되자마자 실론의 수도이며 불교의 신성 도시가 되었다. 서기 1000년 후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마하남의 연대기(The Chronicles of Mahanam)’에 따르면, 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380년 판두카바야(Pandukabhaya) 왕자가 세웠다고 한다.

기원전 250년 무렵, 아소카 왕은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를 보내 판두카바야의 손자인 티사를 불교로 개종시키고자 했다. 티사는 불교를 믿는 실론의 첫 번째 왕 ‘데바남피야(Devanampiya, 티사 왕의 다른 이름)’가 되었다. 또한 아소카 왕은 싯다르타가 영적인 깨달음과 진리를 깨우쳤다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가지(아슈바타, Ashvattha)를 딸이자 비구니인 상가미타로 하여금 티사 왕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기원전 2세기 초 타밀의 침략 기간을 제외하면, 아누라다푸라 신성 도시는 10세기 동안 항상 실론의 정치적·종교적 수도였다. 타밀의 침략을 무찌르고 브라만교 대신 불교를 중흥시킨 두타가마니(Dutthagamani) 왕(기원전 161~기원전 137)의 치세 때 아누라다푸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두타가마니는 미니사웨티 다가바(Dagaba Minisaweti), 루완웰리사야 다가바(Dagaba Rubanwelisaya), 브라젠 궁 등의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아누라다푸라는 9세기에 판디야 왕족에게 정복당했지만, 상당한 보상금을 지불하고 돌려받았다. 대부분의 유산들은 복원되었지만, 기원후 993년 촐라의 라자라자 왕에 의해 파괴된 후에는 복원되지 못했다. 그 후 수도를 폴로나루와로 옮기면서 아누라다푸라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