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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와 키시와니 유적과 송고 음나라 유적 [Ruins of Kilwa Kisiwani and Ruins of Songo Mnara]

  • 제목 : 킬와 키시와니 유적과 송고 음나라 유적
  • 설명 : © UNESCO / Author : Ron Van Oers
킬와 키시와니 유적과 송고 음나라 유적

상세정보

  • 국가 탄자니아(United Republic of Tanzania)
  • 위치 린디 현(Lindi Region)|||킬와 지구(District of Kilwa)
  • 좌표 S8 57 28.008|||E39 31 22.008
  • 등재연도 1981년(2004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 유산 등재)
  • 등재기준

    기준 (ⅲ) : 킬와 키시와니와 송고 음나라는 이 지역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역학 관계를 감안하는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동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스와힐리 문화와 상업이 성장하였음을 나타내는 우수한 건축적·고고학적·문헌적 증거를 보여 준다. 킬와 키시와니의 대모스크는 동아프리카 연안의 가장 오래되고 인상적인 모스크로, 16개의 둥근 지붕과 아치형 구획들이 있는 고유한 설계 형태를 띠고 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돔은 19세기까지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돔이었다.

요약
초기 유럽 탐험가들이 감탄한 동아프리카의 커다란 두 항구 유적으로, 해안 부근의 2개의 작은 섬에 있다. 13세기~16세기에 킬와(Kilwa)의 상인들은 금, 은, 진주, 향수, 아라비아 그릇, 페르시아 도기 및 중국 자기 등을 취급하였으며, 인도양 무역 대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에서 남쪽으로 300㎞쯤 떨어진 탄자니아 연안 근처에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섬 두 개가 있는데, 이곳에 킬와 키시와니(Kilwa Kisiwani)와 송고 음나라(Songo Mnara) 두 항구도시 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좀 더 큰 항구도시인 킬와 키시와니는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번성하였으며, 13세기와 14세기에 가장 번창하였다.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는 1331년~1332년에 이곳에 머무르면서 킬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한 곳으로 묘사한 바 있다.

킬와 키시와니와 송고 음나라는 스와힐리(Swahili) 족의 무역 도시였다. 이 두 도시는 특히 13세기~16세기에 아라비아, 인도, 중국 및 인도양 무역을 장악하면서 번영했다. 이때 내륙 지역의 금과 상아가 은, 홍옥수, 향수, 페르시아 파이앙스(Persian faience) 도자기 및 중국 자기와 거래되었다. 킬와 키시와니에서는 11세기~14세기에 자체 화폐가 주조되었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인들이 킬와 키시와니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이 두 섬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킬와 키시와니 유적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도시의 많은 부분과 많은 섬들을 포함한다.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산호와 석회 모르타르로 지어진 유적은 11세기에 건설되어 13세기에 상당히 확장된 것으로, 중국 자기를 박아 넣어 장식하기도 한 둥근 지붕과 아치형 구획들이 있는 대모스크가 포함된다.

커다란 팔각형 목욕 풀(bathing pool)이 있는 후수니 쿠브와(Husuni Kubwa) 궁전은 1310년~1333년에 지어졌다. 후수니 쿠브와보다 작은 규모의 후수니 은도고(Husuni Ndogo) 궁전과 수많은 모스크, 게레자(Gereza: 감옥)는 포르투갈의 요새 유적과 주택, 공공 광장, 묘지 등을 포함하는 전체 도시 단지에 지어졌다.

송고 섬 최북단에 있는 송고 음나라 유적은 5개의 모스크, 궁전 단지, 담장으로 둘러싸인 산호석과 목재로 지은 주택 33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킬와 키시와니와 송고 음나라에 있는 섬들은 스와힐리 연안 문화의 확장과 동아프리카의 이슬람화, 그리고 중세 시대부터 근대까지 특히 인도양 교역의 확대와 번영을 보여 주는 이례적인 증거이다.

완전성

킬와 키시와니와 송고 음나라의 섬들에는 두드러진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핵심적 특성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이 있는 19세기의 주요 교역 도시였던 킬와 키빈예(Kilwa Kivinje)와 10세기 또는 그 이전의 주택 및 모스크를 포함하여 400에이커에 달하는 유적이 있는 킬와 남쪽의 산예야카티(Sanje Ya Kati) 섬은 이 유산의 경계 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유산은 식물과 바닷물에 쉽게 침해당하며, 새로운 건물과 매장된 고고학적 자원을 위협하는 농업 활동에 잠식되어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역사적·고고학적 구조물의 붕괴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악화와 쇠퇴로 이 유산은 2004년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진정성

지속적으로 진정한 가치를 표현해 온 이 섬들은 산호석 및 다른 적절한 자재를 사용하여 구조물을 부분적으로 보강함으로써 디자인 및 자재 면에서는 그 모습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특히 킬와 키시와니에서는 도시가 침해되고 연안의 손상이 심각하다. 이러한 침해 및 손상은 중세 항구도시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는 데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이 유적이 진정성을 보존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보존 프로그램의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 보존 프로그램에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되는 데 필요한 모든 교정 조치가 언급되어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을 구성하는 유적들은 기존의 문화 자원 정책(2008), 유물 법률(1964년의 유물법과 1979년의 수정 법률) 및 수립된 규칙과 규정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보호된다. 유물 법률 및 규정은 모두 현재 재검토 중이다. 이 유산은 유물 분과(Antiquities Division)의 감독 아래 관리되고 있다. 유물 관리자 및 보조 관리위원 등이 이 유적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관리 계획은 2004년에 수립되었으며, 현재 수정 중이다. 핵심 관리 문제에는 증가된 바다의 파 활동(波活動, wave action)과 해변 침식으로 인한 기후 변화 영향, 사람 및 동물(소와 염소)에 의한 유적 침해, 모든 기념물에 대한 부적절한 보존 프로그램, 지역사회의 부적절한 참여와 관련 혜택에 대한 관심 등이 포함된다.

참고번호
144
본문

킬와 키시와니와 송고 음나라는 스와힐리 문화, 아프리카 동부 연안의 이슬람화 및 중세 시대와 근대의 확대된 교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 두 곳이다. 이 유적지들은 탄자니아 연안 근처에 서로 가까이 있는 두 섬에 있다. 두 섬 모두에 유적 복합 단지가 보존되어 있지만, 킬와 키시와니의 유적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 지역은 9세기부터 19세기에 번성하였으며 13세기와 14세기에 가장 번창하였다. 많은 기념물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12세기에 건축된 대모스크 유적은 중심에 산호 타일을 붙인 진흙 반죽으로 지어졌으며, 무하마드 이븐 술레이만 ‘알말릭 알아딜’(Muhammad ibn Suleiman ‘al-Malik al-Adil’) 술탄의 통치 기간(1412~1420)에 상당히 확장되었다.

• 알하산 이븐 술라이만(al-Hasan ibn Sulaiman)이 통치하던 1310년~1333년에 건설된 후수니 쿠브와 궁전의 유적.

• 수많은 모스크.

• 포르투갈 인들의 요새 유적에 건설된 게라자.

• 주택, 공공 광장, 묘지 등이 있는 전체 도시 단지.

• 송고 섬 최북단에 위치한 송고 음나라 유적은 5개의 모스크, 진흙과 나무로 지은 주거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가 더 크고 확인하기 힘든 건축물은 ‘궁전’으로 규정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수집된 도자기와 작은 물건들은 교역을 통해 킬와의 문화적 변화를 가져왔음을 입증하는 이례적인 증거품이며,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송고 역시 무대(극장)였음을 증거한다. 개오지 조개, 유리구슬, 홍옥수, 석영 등은 12세기부터 교류의 매개체였던 중국 송(宋)나라의 자기들과 혼합되었다. 중국의 자기와 이슬람의 단색 파이앙스 도자기는 킬와에서 통화 아틀리에(monetary atelier)가 출현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물물교환의 매개체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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