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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히망가 왕실 언덕 [Royal Hill of Ambohimanga]

  •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
  • 제목 :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
  • 설명 : © UNESCO / Author : A. Rafolo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

상세정보

  • 국가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 위치 안타나나리보 아바라드라노 주(Province of Antananarivo Avaradrano)|||암보히망가로바 시(Municipality of Ambohimanga Rova)
  • 좌표 S18 45 33.012|||E47 33 46.008
  • 등재연도 2001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은 마다가스카르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다.

    기준 (ⅳ) :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의 전통적 설계·재료·시설 배치에서 볼 때, 최소한 16세기부터 사회적·정치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준 (ⅵ) :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은 수세기에 걸쳐 전통, 종교 의식 그리고 기도에 중점을 두었던 특별한 장소의 표본이다.

요약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Royal Hill of Ambohimanga)은 왕실 도시와 무덤, 성지, 종교적 의식을 함께 행했던 장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한 신념과 결부되어 있으며, 지난 500년 동안 종교 의식과 사람들의 정신 속에 내재된 성스러운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이곳은 마다가스카르 및 여러 지역의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암보히망가는 최소한 15세기에 시작되었고, 18세기경에 특히 안드리안시미토비아미난드리아나(Andriantsimitoviaminandriana, 1740~1945) 왕의 강력한 통치 아래 방호벽과 7개의 문을 지닌 수도로 발전했다. 외부 방어벽과 7개 이상의 문들이, 아마도 왕궁이 안타나나리보로 이전된 1794년 이전이었을 때 추가되면서, 암보히망가는 왕의 매장지이면서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남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은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화 상징이다.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의 전통적 설계·재료·시설 배치로 볼 때, 최소한 16세기부터 말라가시(Malagasy, 지금의 마다가스카르) 사회에도 사회적·정치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 영주를 기반으로 세분화된 정치 구조를 가진 마다가스카르가 발전하면서 15세기 이후 방어를 위한 언덕인 로바(rova, 요새화된 왕궁 울타리)를 건설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상부에는 실용적이면서 영적인 이유로 삼림을 유지했고, 저지대 숲은 그러한 장소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근거지로서 개간되었다. 계단식 농업은 저지대 언덕 경사지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문화경관이 16세기경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이후로 유일한 주요 변화로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 기간 중에 암보히망가에 인접한 고지 위의 삼림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방어벽은 1830년 경 여왕 라나바로날 1세(Ranavalona I, 1828~1861)가 만들었으며, 북쪽과 남서 방향에 새로 난 문이 있는 성곽이었다. 판드리암파하레마나(Fandriampahalemana) 궁전과 유리 건물 트라노피타라트라(Tranofitaratra)는 1871년에 추가되었다. 1897년 3월, 프랑스 당국은 이 지역의 신성함과 연결된 국가주의적 정당성을 없애는 데 실패하자 왕족 유물들을 안타나라리보(Antananarivo)로 이전했다. 무덤들은 훼손되었고, 그 지역에 주둔한 수비대를 위한 군사적 용도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1904년부터는 프랑스인들의 그러한 흔적이 순차적으로 제거되었다. 20세기를 통틀어 이 지역은 종교적 목적을 가진 순례의 대상이며 활기 넘치는 성지로 남아 있다.

유산면적
59㏊
완충지역
425㏊
참고번호
950
본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은 왕궁·매장 지역(왕의 무덤), 그리고 나무·샘물·호수·공공회의 장소 등의 성스러운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스러운 특징을 강조하면서, 국가의 정체성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는 이곳은 마다가스카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순례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뛰어난 건축물과 수많은 토착 식물종이 자연 그대로 서식하고 있어서 생태학적 가치도 높다. 언덕의 숲은 고고 유물을 숨겨 주는 동시에 왕실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 지역의 요새는 일련의 제방과 수로, 그리고 14개의 석문을 갖추고 있으며 왕실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외곽의 7개의 문은 1787년에 지어졌고, 안쪽에 있는 7개의 문은 18세기 초에 건축되었다.

요새화된 왕궁 도시에는 일관된 형태의 방이 있는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도 있다. 도시의 공간은 의례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다. 동쪽 지역은 조상에 대한 제사 장소와 왕의 무덤이 있는 신성한 지역이었다. 어린 처녀들이 물을 채워 넣었던 두 개 거룩한 바위 수반(水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의 시신은 나무로 건축된 안치소에 안장되었다. 왕족은 자신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무덤으로 가기 전에, 왕족을 상징하는 신성한 색인 흰색과 빨간색으로 칠한 나무 울타리로 둘러싼 신성한 장소인 안치소에 시신을 머물게 함으로써 이곳에서 나오는 보호와 형벌의 힘을 후손들에게 계속 행사하였다. 왕실 나무는 왕궁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피쿠스(Ficus, 고무나무 종류)와 드라세나(Draceana, 천년초) 종들을 심었다. 북쪽 지역의 둥글고 거대한 화강암 위에는 벽돌 난간으로 둘러싸인 재판정이 있다. 난간에는 돌계단이 있고, 왕실 무화과나무의 줄기가 돌계단을 감싸고 있다.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다른 신성한 장소는 왕궁 인클로저 안에 있다. 천연 그대로의 신성한 샘에서는 항상 물이 샘솟는데, 돌 덮개 아래에 있는 2개의 구멍을 통해 흘러나와 외부로 빠져나간다. 물은 ‘정화’를 의미한다. 신성한 암파리(Amparihy) 호는 인공 호수로 왕족을 위한 행사와 제례 의식에만 쓰였다. 매년 행해지는 왕의 목욕, 왕자의 할례 등에만 사용되었다. 왕국의 모든 죄를 짊어져야 했던 시대에 왕의 목욕은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신성한 숲은 고유종 식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오테르(Hautes Terres) 지역에 있는 식물은 특별히 희귀한 것들로, 예전에 이곳과 언덕을 뒤덮었던 자연 삼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지역은 왕궁 소유지인데다 엄격한 법규로 관리되고 있다. 계단식 농경지는 17세기~18세기에 언덕의 북부와 남부지역에서 발전되었다. 농업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산업이었고 이는 왕권을 확장시켜 주었다. 신성한 언덕의 농업 생산물이면서 지역민들의 주식인 쌀을 저지대 경사면에서도 경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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