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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왕립 식물원 [Royal Botanic Gardens, Kew]

  • 제목 : 큐 왕립 식물원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큐 왕립 식물원

상세정보

  • 국가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위치 그레이터 런던 주 남서부(southwest Greater London)|||리치먼드 어폰 템스 런던자치구(London Borough of Richmond upon Thames)
  • 좌표 N51 28 55|||E0 17 38.5
  • 등재연도 2003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18세기 이래 큐 식물원은 세계 식물학 분야에 확립되어 있는 과학적·경제적 교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것이 식물원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소장품에 반영되어 있다. 유럽 대륙을 비롯하여 더 먼 지역의 예술적 영향도 받았다는 점이 큐 식물원의 조경적·건축적 특징이다.

    기준 (ⅲ) : 큐 식물원은 여러 과학 분야, 특히 식물학과 생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준 (ⅳ) : 찰스 브리지먼, 윌리엄 켄트, 랜슬럿 브라운, 윌리엄 체임버스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풍경식 정원과 건물들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갖게 한 운동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약
큐 왕립 식물원, 즉 이 역사적인 ‘풍경식 정원(風景式庭園, landscape garden)’은 18세기~20세기 정원 예술의 중요한 시기들을 보여 주는 특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이 정원은 수세기에 걸쳐 수집된 식물과 관련한 광범위한 자료들(보존 식물, 살아 있는 식물 및 관련 문서)을 보유하고 있다. 1759년 개원한 이래 식물 다양성과 실용 식물학 연구에 공헌해왔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역사적인 풍경식 정원은 템스 강 남서쪽의 직선 유역을 따라 공원과 건물들 사이에 있다. 이 정원에는 찰스 브리지먼(Charles Bridgeman, 1690~1738),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1685~1748), 윌리엄 체임버스(William Chambers, 1723~1796), 랜슬럿 ‘케이퍼빌리티’ 브라운(Lancelot ‘Capability’ Brown, 1716~1783), 윌리엄 A. 네스필드(William A. Nesfield, 1793~1881)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조경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18세기~20세기 정원 디자인의 중요한 시기들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정원은 수세기에 걸쳐 수집된 식물과 관련한 광범위한 자료들(보존 식물, 살아 있는 식물 및 관련 문서)을 보유하고 있다. 1759년 개원한 이래 식물 다양성과 실용 식물학 연구에 기여해 왔다.

큐 식물원의 조경 디자인과 건물 그리고 소장 식물들은 정원 예술과 식물학의 발전 과정을 잘 보여 주며 식물원은 그 발전 결과를 전 세계에 보급해 왔다. 유럽과 큐 식물원에 채택된 18세기 영국 풍경식 정원 개념은 조지프 뱅크스(Joseph Banks, 1743~1820)가 식물원을 이끌던 17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원예학, 식물 분류학, 실용 식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큐 식물원은 발전하고 있는 식물학 연구의 중심 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19세기 중반 옛 왕궁의 풍경식 정원 위에 조성되었다. 철골로 지은 중심 건물인 2개의 유리 온실, 즉 야자나무 온실(Palm House)과 온대 식물 온실(Temperate House)은 세계적인 온실의 모델이 되었다.

18, 19세기에 이루어진 것들, 즉 오렌지나무 온실(Orangery), 샬럿 여왕의 오두막(Queen Charlotte’s Cottage), 장식용 사원(folly temples), 진달래 골짜기(Rhododendron Dell), 은장(隱墻, 정원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경계 도랑을 파서 만든 울타리), 윌리엄 체임버스의 탑(pagoda)과 숀 공원 하우스(Syon Park House) 쪽 정원의 전망, 철골 유리 온실, 장식 호수 및 연못, 그리고 식물 표본관과 수집된 식물들의 요소는 큐 왕립 식물원이 20세기의 생태계 보존을 위한 현대적인 기관이 되기 전의 역사를 보여 준다. 즉 식물원은 왕족들의 휴식처이자 유람지에서 전 국민을 위한 식물원이자 원예를 위한 정원으로 발전했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완전성

이 유산에는 풍경식 정원의 발전사와 국민적인 식물원이자 식물 연구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으로 보여 주었던 큐 식물원의 역할을 의미하는 요소들이 있다.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 요소들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알 수 있게 한다. 완충 지역에서는 맞은편 템스 강 강둑에 있는 숀 파크 하우스와 주변의 문화 경관, 큐 식물원의 왕실 재산인 올드 디어 공원(Old Deer Park), 아일워스 페리 게이트(Isleworth Ferry Gate)에서 큐브리지(Kew Bridge)까지 흐르는 강, 역사적인 큐그린(Kew Green) 및 주변 건물과 교회를 볼 수 있으며 동쪽으로는 19세기와 20세기의 가옥 밀집 지역 등 인접한 다른 문화 경관을 살펴볼 수 있다. 완충지역 외부에서 이뤄지는 개발은 유산의 환경에 위협적인 요소이다.

진정성

18세기에 만들어진 이래 큐 식물원은 본래의 목적대로 식물학자들이 표본을 수집하고 국제적으로 전문 지식을 교환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이 식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생물 자료 및 보존 자료들은 전 세계 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법에 따라 등록된 44개의 건물들은 과거의 기념물들로서 기간별로 다양한 양식적 표현을 보여 준다. 이 건물들은 디자인, 재료, 기능면에서 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몇몇 건물만 본래 의도와는 다른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오렌지나무 온실은 현재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시기별로 조경 디자인이 다르다는 관점에서 보면 건축물과 달리 각각의 풍경식 정원에는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밀접하게 섞여 있기 때문에, 중요 예술가들이 만들었지만 흔적만 남은 정원의 경우는 제외하고, 과거의 예술적 성취들을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 야자나무 온실 뒤편에 있는 네스필드 화단의 재정리 같은 최근의 프로젝트는 ‘케이퍼빌리티’ 브라운과 네스필드에 의해 이루어진 초기 조경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자금 조달 조건에 달린 것이지만, 전반적인 조경 관리 계획 가운데 다른 프로젝트들도 거론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

큐 식물원의 역사는 꽤 복잡하다. 1772년에 인접한 2개의 왕실 소유지 리치먼드(현재 식물원의 서쪽 절반)와 큐(동쪽 절반)가 합쳐졌다. 3개의 다른 땅들(개인 주택과 정원)도 포함되었다. 16세기에 헨리 7세가 리치먼드에 지은 왕궁은 런던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여름에 왕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이었다. 큐는 채플 가의 소유였는데 이 가문이 이곳에 있던 정원을 16세기 중반에 매우 찬탄할 만한 명소로 만들었다. 채플 가는 1731년에 웨일스의 프레더릭 왕자에게 이곳의 임차권을 팔았다.

리치먼드와 큐에 있던 정원들은 18세기 말에 근본적으로 개조되었다. 캐럴라인 여왕은 왕실 정원사 찰스 브리지먼(1738년 사망)과 건축가이자 풍경식 정원사였던 윌리엄 켄트에게 리치먼드 개조 작업을 맡겼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정원 예술 새로운 접근 방법인 조원술(造園術)의 초창기 인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웨일스 왕자가 죽은(1751년) 후 아우구스타 공주가 뷰트 경과 식물· 건축·정원에 대한 조언을 해 준 윌리엄 체임버스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매우 활력 있게 만들었다. 체임버스는 영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다가 대륙 전체로 퍼진 영국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정원 양식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s, 중국풍이라는 뜻)’ 양식을 되살렸다.

아우구스타 공주와 뷰트 경이 1759년에 최초로 큐에 식물원을 만들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약용 식물용으로 만든 이 아담한 4㏊ 넓이의 정원은 윌리엄 에이턴(William Aiton)의 노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773년 조지프 뱅크스 경이 큐 식물원의 수장으로 왔을 때 이 기관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뱅크스는 조지 3세와 함께 경제적 목적으로 외국 식물과 토착 식물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식물원의 미래 발전 방향도 결정하였다. 그 뒤 수십 년간 식물학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인도·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중국·호주 등에서 새로운 표본을 가져왔고 큐 식물원은 대영 제국과 그 식민지에서 실용 식물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1764년에 랜슬럿 ‘케이퍼빌리티’ 브라운이 커다란 전망을 가지고 갖가지 식물을 심음으로써 리치먼드 정원에 기억할만한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윌리엄 체임버스는 큐 근처의 정원들에서 작업하였다. 식물원은 확대되어 수목원이 만들어지고 작은 유리 온실의 수가 늘어났다. 1802년에 리치먼드와 큐 지역을 가르고 있던 벽이 철거되었다.

1820년 조지프 뱅크스 경과 조지 3세의 주검이 식물원에 묻히면서 이후 20년간 쇠퇴기가 지속되었다. 의회의 요청과 강한 지지 운동이 있은 후 식물원은 돌이킬 수 없는 폐쇄의 운명에서 살아남았다. 윌리엄 후커 경은 이곳에 최초의 공식적인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식물원은 재활성화의 시기(1841~1885)로 접어들었다.

윌리엄 네스필드는 데시무스 버턴의 도움을 받아 리치먼드와 큐의 정원들을 개조하여 단일 경관을 가진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유리 온실인 야자나무 온실과 온대 식물 온실이 건축되었고, 식물 표본관과 국립 수목원이 만들어졌다. 큐 식물원은 대영 제국을 위한 과학 연구에 새로운 원동력을 제공하여 말레이시아·인도·스리랑카 같은 식민지에 씨앗과 식물을 보내고 원예에 대해 자문을 해 주었다.

정원 양식의 변화와 식물원의 발전으로 윌리엄 네스필드가 설계한 복잡한 경관 요소들이 점차 보존의 편의를 위해 조정되었고, 수목원을 재구성하고 고산 식물원과 일본식 수로를 신설하는 등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방문객 수가 증가함에 따라 과학과 관련된 수집물이 풍부해져서 온실과 빈터가 살아 있는 식물 수집을 위해 사용되었다. 많은 수집품으로 1903년과 1932년에 표본관이 확장되었다. 1887년에 첫 번째 고산 식물 온실(Alpine House)이, 1925년에 진달래 온실(Rhododendron House)이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식물원의 일부가 물질적 피해를 입었고 대영 제국의 쇠락이 분명해지면서 큐 식물원의 활동은 둔화되었다. 창립 200주년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야자나무 온실을 복구하고 재개관하였으며 암석 정원(Rock Garden)과 철쭉 정원(Azalea Garden) 및 식물 분류관(Order Beds)을 개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늘어나는 수집품을 수용하기에 충분치 않자 일부 표본들은 200㏊ 규모의 웨이크허스트(Wakehurst)에 있는 정원으로 옮겨졌다(1965년).

고산 식물 온실(1981년)과 특히 웨일스 공주의 보존관(Princess of Wales Conservatory, 1986년) 같은 새 유리 온실들이 더욱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졌다. 1963년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연구원들을 수용하기 위해 더 큰 규모의 조드렐 연구소를 개축되었다. 현재 큐 식물원의 주된 활동은 유산 자체의 보존과 세계적인 생태계 보존이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에 포함된 큐 왕실 식물원과 큐 왕궁 및 샬럿 여왕의 오두막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세습 재산이며 큐 왕실 식물원 및 역사적 왕궁 보존법(Royal Botanic Gardens of Kew and Historic Royal Palaces)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유산은 리치먼드 어폰 템스 런던 자치구가 지정한 보존 구역에 포함돼 있다. 완충지역의 일부는 하운슬로(Hounslow) 런던 자치구가 지정한 보존 구역에 포함돼 있다. 이 구역에 있는 44개의 건물들은 특별한 건축적·역사적 관심 대상 건물을 대상으로 한 등록건물 및 보존지역법(Listed Buildings and Conservation Areas Act, 1990년)에 따라 등록되어 있다.

전체 유산이 역사적 관심 대상 공원 및 정원에 대한 영국 유산 등록청(English Heritage Register)의 잉글랜드 인가 규정(England Permission)의 등급 1이기 때문에 등록 건물과 보존 구역인 경우, 공사 수행이나 기능 변경을 할 때 영국 유산 등록청의 자문을 받은 지역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유산과 완충 지역의 보존 체계는 리치먼드 어폰 템스 런던자치구 및 하운슬로 런던 자치구의 기획 시스템 내의 도시개발계획과 런던 플랜(London Plan)의 광역공간전략(Regional Spatial Strategy), 그리고 별도 지정에 의해 작동된다.

큐 식물원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특히 표본 카탈로그 제작, 전 세계 보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 1975년)과 생물다양성협약(CBD, 1992년)의 이행을 위해 보존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 유산과 관련하여 세계유산현장 관리계획(World Heritage Site Management Plan), 유산보존계획(Property Conservation Plan), 마스터플랜 등이 있다.

관리 계획은 큐 왕립 식물원과의 조정을 통해 시행된다. 세계유산현장 관리계획은 현재 구체적인 조경 마스터플랜에 따라 개정 중이다. 유산 등재 시 세계유산위원회는 건축에 대한 보존 활동이 현장에서 조정될 수 있도록 당사국이 예술사와 역사 전반에 조예가 있는 조경사나 다른 전문가들을 큐 왕립 식물원 직원으로 두도록 권고했다. 이런 조언을 하도록 역사적인 조경물에 대한 작업 경험이 있는 조경사가 임명되었다.

유산면적
132㏊
완충지역
350㏊
참고번호
1084
본문

18세기 이래 큐 식물원은 세계 식물학 분야에서 확립되어 있는 과학적·경제적 교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것은 이 식물원이 가지고 있는 수집 식물들의 풍부함에 반영되어 있다. 유럽 대륙을 비롯하여 더 먼 지역의 예술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큐 식물원의 조경적·건축적 특징이다.

찰스 브리지먼, 윌리엄 켄트, 랜슬럿 브라운, 윌리엄 체임버스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풍경식 정원과 건물들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갖게 한 운동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큐 식물원의 건축 앙상블에는 수많은 최고의 건물이 포함돼 있다. 이 건물들이 포함돼 있는 이 역사적인 조경은 18세기, 19세기, 20세기의 특징들이 다층적으로 집적된 놀라운 곳이다.

큐 왕립 식물원은 템스 강변의 문화 경관을 따라 배치돼 있다. 17세기 이래 이곳은 왕실의 휴양지였다. 18세기에는 윌리엄 체임버스와 ‘케이퍼빌리티’ 브라운과 같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많은 건물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옛날 바로크 양식의 정원을 영국 풍경식 정원 경관으로 개조하였으며 이 양식이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가 특별한 정원 양식으로서 정립되었다. 최초의 큐 식물원은 1759년에 아우구스타 공주(Princess Augusta)와 뷰트 경(Lord Bute)이 약용 식물용으로 만들었다.

큐 왕궁은 이 유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1631년).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식 쌓기 방식(Flemish bond style)으로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이 저택은 템스 강 강둑에 지어졌다. 유산에서 가장 큰 조지 왕조 시대 건물인 오렌지온실은 1761년 체임버스가 지었는데 원래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1959년까지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 중이다. 샬럿 여왕의 오두막은 원래 동물원 원장의 숙소였다가 샬럿 여왕에게 주어진 것 같다.

1802년에 리치먼드와 큐에 있는 두 왕실 소유지 사이의 벽이 헐렸다. 헨리 7세가 16세기에 리치먼드에 지은 왕궁은 런던에서 배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여름에 왕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이었다. 큐 왕실 사유지는 채플 가(Capel family)의 소유였으나 1731년 웨일스(Wales)의 프레더릭(Frederick) 왕자에게 이 땅의 임차권을 팔았다.

윌리엄 네스필드가 디자인한 이 풍경식 정원의 핵심 요소들은 큐 식물원의 탁월한 특징들 중 하나다. 이 정원의 중심은 건축가 리처드 터너(Richard Turner)와 데시무스 버턴(Decimus Burton)이 설계한 유리와 철로 만들어진 야자나무 온실(1844~1848)이다. 야자나무 온실에는 파고다 비스타(Pagoda vista), 템스 강 쪽으로 향한 숀 비스타(Syon vista), 마이너 비스타(minor vista)의 3개 전망이 펼쳐져 있다.

원래 18세기에 사냥꾼 숙소였던 식물 표본관에는 수집 표본들과 도서관이 있다. 이곳은 전에 실용 식물학 박물관(museum of botanic economics, 1847년)이었다가 원예 학교로 바뀌었으며(1990년), 여기 새로 생긴 조드렐 연구소(Jodrell Laboratory, 1965년)는 식물 해부, 생리학, 세포 유전학, 생화학 연구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방문객 수가 증가함에 따라 과학과 관련된 수집물이 풍부해졌고 온실과 공터가 살아 있는 식물 수집을 위해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큐 식물원의 일부가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나 창립 200주년 때 새로운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현재 큐 식물원은 유산 자체의 보존과 전 세계 생태계의 보존을 주된 활동으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건물과 구조물은 보존 상태가 좋다.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 식물학을 현대화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유명한 정원사 조지프 뱅크스와 윌리엄 후커(William Hooker)가 큐 식물원의 감독이었다. 큐 식물원이 수집한 뛰어나고 다양한 식생들은 미학적·과학적·경제적 목적으로 이국적인 식물들을 수집하여 재배하는 유럽의 적극적인 문화전통을 보여 준다. 또한 이런 전통으로 인해 일부는 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으로 입증된 것들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조류·곤충류·이끼류·균류를 포함한 이 지역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120년 이상 기록하고 관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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