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카미노 프란세스와 스페인 북부 순례길 [Route of Santiago de Compostela]

  • 제목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e Thébault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카미노 프란세스와 스페인 북부 순례길

상세정보

  • 국가 스페인(Spain)
  • 위치 아라곤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ies of Aragon)|||나베레(Navarre)|||라 리요야(la Rioja)|||카스티야-레온(Castile-Leon)과 갈리시아(Galicia)
  • 좌표 N43 20 6 W6 24 53
  • 등재연도 1993년 (2015년 확장)
  • 등재기준

    (ii)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중세시대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베리아 반도와 나머지 유럽 간의 문화발전 교류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미노와 연관되어 등장했던 문화유산은 실로 방대하며, 결과적으로 로마네스크 예술을 낳았고,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예술을 대표하는 훌륭한 사례들을 탄생시켰다. 아울러, 중세시대 동안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도시 생활이 축소되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환대와 상업적 활동은 이베리아 반도 북부 여러 도시들의 성장을 이끌었고 덕분에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iv)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는 교회 건물과 세속 건축물, 크고 작은 마을, 토목공학 구조물 등이 특징인 기독교 순례길에서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해왔다.

    (vi)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중세 유럽부터 후대까지 신분 계층이나 출신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녔던 신앙심의 힘과 영향력에 관한 탁월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

요약
스페인 북부에 있는 4개의 기독교 순례길의 연결로인 이 유산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연속유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Route of Santiago de Compostela)’의 확장 유산이다. 2015년에 확장된 구역은 총 길이 1,500㎞로, 바스크 지방(Basque Country) - 라 리오하(La Rioja), 리에바나(Liébana)를 잇는 해안 도로와 내륙 도로, 천연 가도 등을 이은 길이다. 아울러, 성당과 교회, 병원 등과 다리를 포함하여 순례를 하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건설된 구조물들 중 역사적 중요성을 띤 건축 유산도 포함되었다. 이번에 확장된 유산으로는 9세기에 대(大) 성 야고보의 것이라 여겨지는 무덤의 발견 이후에 시작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를 위해 최초로 개발된 일부 순례길도 포함되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Route of Santiago de Compostela, 일명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이베리아 반도 북쪽을 통과하여 스페인-프랑스의 국경지대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까지 800km가 넘는 좁은 길로서 5개의 자치 단체와 100개가 넘는 마을을 지나는 순례를 위한 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본래 사도(使徒) 성야고보(St James)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갈리시아(Galicia))에 방문하는 것을 정점으로 막을 내리는 순례길이었다. 스페인으로 떠난 사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6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스파니아(Hispania, 로마 사람들이 사용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옛 이름)에 복음을 전파한 것은 성야고보였다. 이러한 정보는 훗날 세비아의 이시도로(Isidoro de Sevilla, 7세기)가 쓴 『신앙의 선조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서(De ortu et obitu Patrum)』와 리에바나(Liébana)의 성 베아투스(St Beatus, 8세기)가 쓴 『계시록 주해서(Commentarium In Apocalypsin)』에서 확인된다. 사도의 무덤이 갈리시아에서 발견된 것은 9세기, 정결왕 알폰소 2세(Alfonso II)의 치세 아래에서였다. 12사도는 자신들이 복음을 전파한 지방에서 안식을 취해야 한다는 성 제롬(St Jerome)의 가르침에 따라 성야고보의 유해는 예루살렘에서 스페인으로 옮겨졌다.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지가 되었다.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 시기는 9세기 무슬림 치하의 스페인(Muslim Spain) 시대였고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 사건은 기독교적으로 중요했고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덕분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식간에 예루살렘이나 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요한 순례지로 떠올랐다.

11세기의 시간에 걸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길과 길을 통과하는 마을을 여행하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문화적 논의를 촉진하는 진정한 의미의 교차로가 되었다. 순례길은 중요한 교역의 축이자 지식이 전파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카미노에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산 유적, 훌륭한 자연 경관, 그리고 무형 유산이 하나의 세트처럼 모여 있는데 이러한 무형 유산 중 가장 훌륭한 사례는 이곳을 여행하는 순례자들을 즐겁게 했던,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는 구전 문화들이다. 순례 여행은 중세시대 유럽의 문화·정신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순례 동안 순례자들은 육체적·정신적 안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 길에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순례길에는 교회, 병원, 호스텔, 수도원, 여행자 숙소, 교차로, 다리나 기타 건축물 등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관련된 유산이 넘쳐나게 되었고, 이러한 건축물 및 구조물들은 오늘날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부터 바로크 양식으로 변화하는 예술적·건축적 변화상 전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예술적 유산은 카미노의 형태와 문화를 정의하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수많은 방문객들과 순례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생긴 서비스 덕분에 생겨난 경제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순례길 마을의 사회경제적 발전 또한 ‘야고보의 길’이 지닌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완전성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고 순례길 자체는 물론 길을 따라 건축된 건축물과 유적 또한 매우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기에 중세시대 순례길로는 유일하게 오늘까지 이용되고 있는 사례이다. 순례길은 또한 환경과의 조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미노를 구성하는 각 구역, 유적, 건축물 등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보수를 거쳐 매우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순례자들의 수가 감소했던 18세기부터 19세기에는 보존 상태도 순례자 수가 감소했던 만큼 나빠졌지만 20세기에 그 역사적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카미노가 살아났고 1962년 역사-예술 복합단지(Conjunto histórico-artístico)로서 법적인 보호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유산을 보호하고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고 가능한 모든 차원에서 보존을 위한 중요한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이로써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살아있는 문화 통로로서 남아 있게 되었다.

진정성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중세시대부터 세월의 시련을 견뎌내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순례길의 존재에 관한 기록은 12세기부터 상세하게 기록되어 왔다. 1109년 갈리스토 2세(Calixtus II 1119~1124 재위) 교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 여행에 동행했던 클뤼니(Cluny)의 에메릭 피코(Aymeric Picaud)가 쓴 『칼릭스티누스 고사본(Codex Calixtinus)』 제5권은 이 길을 따라 떠나는 순례 여행에 관한 최초의 안내서라 여겨지고 있다. 이 책에는 순례길에 관한 묘사, 카미노를 따라 발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에 대한 설명,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 주민들의 풍습,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 등이 담겨 있다.

기독교 순례길 가운데 다른 것들과 달리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의심할 여지없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최고의 상태로 보존되었다.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용되고 있는 순례길의 상당 부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시대에 작성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에는 주요한 장소, 주민들은 물론 현재에도 보존된 병원, 국경선, 다리, 교회, 그리고 건축물의 건축학적 요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현형 법규에 따라 역사-예술 복합단지로서 순례길이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유산의 진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은 여러 법적 단계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스페인 역사유산법(Spanish Historical Heritage Act, 1985년 6월 25일 법 제16/1985호)) 추가 규정 제1조에 따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문화유산 보호 제도에서는 최고 수준인 역사복합단지의 범주에 속하는 문화적 관심 유산(BIC, Bien de Interés Cultural)으로 등록되었다.

순례길이 지나는 각 자치단체는 그 관할권을 행사하는 범위 내에서 각각의 경계 내에서의 유산 보호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갈리시아는 ‘2011년 12월 2일 조례 제227호’를 통해 페드라피타 도 세브레이로(Pedrafita do Cebreiro)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오 피노(O Pino)시의 경계까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된 여정의 경계를 설정하여 유산의 해당 부분을 보호하는데, 다만 오 아메날(O Amenal)과 오 피노(O Pino)시의 라바코야 공항(Aeropuerto de Lavacolla) 경계 사이의 구간은 예외로 한다. ‘2012년 6월 29일 조례 제 144호’는 오 아메날과 오 피노 시의 라바코야 공항 경계 사이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된 여정의 한정된 범위를 설정한다. ‘2012년 11월 22일 조례 제247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내에서 프랑스 카미노와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된 여정의 경계를 설정했다. 라 리오하(La Rioja)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라 리오하의 문화적 관심 유산(BIC)으로 선언한 ‘2001년 3월 16일 조례 제14호’를 통해서 유산의 일부분을 보호하고 주변 지역을 설정했다. 아라곤(Aragon)은 아라곤지방정부의 ‘1988년 5월 24일 조례 제96호’를 적용하여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회복 및 재생을 위한 기술조정위원회를 조직했다. 나바라(Navarra)는 ‘1988년 12월 14일 특별조례 제290/1988호’를 적용하여 나바라 내에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경계선을 설정했고, 보호제도를 수립했다. 카스티야이레온(Castile-Leon)은 ‘1999년 12월 23일 조례 제324호’를 적용하여 카미노 데 산티아고(프랑스 카미노) 역사 단지(Conjunto Histórico) 선언에 포함될 지역의 범위를 명시하였다.

유산을 관할 관리하는 행정기관들에게는 기관 간 원활한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요구되었고, 1991년 순례길의 보호 및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과 각종 조치, 홍보와 문화 전파, 역사-예술 유산의 보존 및 복원, 관광 규제 및 홍보, 순례자 지원에 협조한다는 목표 아래 ‘야고보 회의(Consejo Jacobeo)’를 설립했다.

‘2009년 9월 11일 왕령 제1432호’가 제정되어 관리기관으로서 그 의무를 강화하도록 ‘야고보 회의’가 재조직되었다. 이를 위해 ‘야고보 회의’라는 기본틀 내에서 순례길이 통과하는 자치단체(갈리시아, 라 리오하, 아라곤, 나바라, 카스틸-레온)와 교육·문화·스포츠부가 참여하는 ‘세계유산 관리를 위한 협력위원회(Cooperation Committee for the Management of the World Heritage Site)’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협의는 물론 의미가 있지만 고속도로와 고속열차 선로, 도시와 마을의 자연적인 성장, 관광업의 발전 및 증가하는 순례자 등으로 인한 잠재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법적 조치와 법률의 이행, 건물을 신축하기 전에 유산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평가의 사전 조사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순례길이 통과하는 자치단체가 도시개발 계획을 할 때에는 유산의 특성 보호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유산면적
15㏊
완충지역
9,282㏊
참고번호
669bis
본문

중세 서유럽의 정신과 문화생활에서 순례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 또 이 길을 따라서 순례자들의 정신적인 안정과 육체적 휴식을 위한 시설들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는 교회와 민간 건물, 크고 작은 집, 토목 건축물 등의 형태로 중요한 기록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중세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와 그 외 유럽 지역들이 양방향에서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유럽 어디에도 이 정도의 규모와 지속성을 갖는 기독교 순례길은 없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다른 두 곳의 순례길은 파편처럼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위대한 역사적 · 정신적 가치 외에도 이 순례길은 유럽의 예술과 건축이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단면을 뚜렷하고 완벽하게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다른 순례길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사도의 무덤(Apostle’s tomb)’ 아래에서 만나게 되며, 마찬가지로 여러 예술품과 건축물이 이 순례길과 연결되어 있다. 이 순례길의 곳곳에는 아주 많은 문화유산들이 풍부하게 흩어져 있는데, 이들은 로마네스크 예술의 탄생을 대표한다. 또한 이후의 고딕 양식의 성당들과 여러 수도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위대한 사도 성 야고보(St. James)가 스페인에 복음을 전파한 장소를 찾는 순례의 전통은 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기경 성 제롬(St. Jerome)은 사도의 라틴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일을 다룬 전례서)』에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했던 장소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Acts of the Apostles)』에 의하면, 유대 왕인 헤롯 아그리파(Herod Agrippa)에 의해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순교한 야고보는 그의 명령으로 스페인으로 옮겨져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콤포스텔라에서 사도의 무덤이 발견된 시기는 9세기 이후였다. 8세기 말에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의 지원으로 스페인 북부의 기독교 왕국인 갈리시아(Galicia) 왕국과 아스투리아스(Asturias) 왕국이 합병했는데, 이슬람 세력에 들어 있던 이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세계로 재정복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 세계로 재정복하는 과정은 1492년까지 계속되었다. 기독교 왕국은 이슬람의 위협에 대항해 성 야고보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떠받들었다. 알폰소 2세(Alfonso II)의 통치 아래 있던 9세기 초,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교구에 은둔해 있던 페라요(Pelayo)와 토데미로(Todemiro) 주교가 한 작은 성지에서 사도의 무덤을 발견했다.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서유럽 전체로 빠르게 퍼져 갔으며, 무덤이 발견된 이곳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잇는 순례길과 비교될 만한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10세기 초까지 투르(Tours), 리모주(Limoges), 르퓌(Le Puy)에서 프랑스의 길을 따라 스페인을 향해 순례가 이어졌다. 또 공식적인 순례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안정을 위한 시설들이 점차 들어섰다. 콤포스텔라에서도 사도의 유적을 보관하기 위한 새 바실리카와 교회, 예배당,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 병원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12세기에 순례길은 서유럽 전역에서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사용하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139년에는 최초의 순례길 안내서가 칼릭스틴(Calixtine) 필사본 제5권에 등장했다. 칼릭스틴 본이므로 칼릭스투스 2세(Calixtus II) 교황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순례자인 아이메릭 피카우드(Aymeric Picaud)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스페인 북부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정확한 여정과 순례에 도움을 주는 시설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박한 예배당과 숙박 시설부터 웅장한 성당까지, 이곳의 유적들은 로마네스크에서 바로크 시대 이후까지의 예술과 건축의 발전상을 반영하고 있다. 또 중세 시대의 신앙과 문화 사이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설명해 준다. 순례길은 상업 목적의 경로로도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이 길을 따라 형성된 많은 도시들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순례길은 두 곳을 통해 들어가는데, 각각 론세스바예스(발카를로스(Valcarlos) 길)와 칸프랑크(Canfranc, 솜포트(Somport) 길)이다. 두 길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바로 앞의 팜플로나(Pamplona) 서쪽에서 합쳐진다. 5개의 자치주와 166개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가는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 1,800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 현대적인 길과 고대의 길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주춤하기는 했지만, ‘산티아고로의 순례’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87년에 유럽회의는 이곳을 ‘유럽의 첫 번째 문화여행로’로 선포했으며, 그 후 이곳은 중세의 영적 역할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매년 수천 명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이 순례길을 따라가고 있다.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