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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킬레 대성당 [Roskilde Cathedral]

  • 로스킬레 대성당
  • 제목 : 로스킬레 대성당
  • 설명 : © UNESCO / Author : E. Esquivel
로스킬레 대성당

상세정보

  • 국가 덴마크(Denmark)
  • 위치 셸란 섬(Island of Sjaelland), 로스킬레 시(Roskilde), 시랜드 현(Sealand Region)
  • 좌표 N55 38 32|||E12 4 47
  • 등재연도 1995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로스킬레 대성당은 북유럽에서 벽돌을 사용한 초창기의 교회 건물의 훌륭한 사례이다. 이 지역의 성당 건축에서 벽돌 사용이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기준 (ⅳ) : 그 형식과 주변 경관에서 로스킬레 대성당은 북유럽 성당 건축물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특히 수 세기 동안 덴마크 왕실의 묘당으로 이용되고, 부속 예배당과 현관이 추가되면서 나타난 일련의 건축양식에 주목할 만하다.

요약
로스킬레 대성당은 12~13세기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지방의 초기 고딕양식 건축물이다. 벽돌을 주재료로 건설한 이 성당은 15세기부터는 덴마크 왕실의 묘당으로 사용되었으며, 현관과 측면의 예배당은 19세기 말에 증축하였다. 로스킬레 대성당은 고딕 양식이 북유럽으로 확산되는 데 공헌하였으며, 유럽의 종교 건축이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보여준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덴마크 동부 셸란 섬의 로스킬레 대성당은 로스킬드 피오르드를 굽어보는 작은 언덕 마루에 있다. 이곳에 가면 매우 장엄한 경관을 마주하게 된다. 성당 주위와 그 주변 경관에서 중세 도시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도시에는 약간의 중세 건축물과 다수의 17~18세기 가옥이 남아 있다.

성당은 1170년 착공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고딕양식이 도래한 뒤 건축계획이 변경되었다. 이후 몇백 년을 거치며 예배당과 현관, 다른 구조들이 추가되었다. 구조들은 각각 당대 건축 양식의 조류를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성당은 단일 건축물 안에서 유럽의 건축 역사를 집약하고 있다.

성당 외벽의 벽돌은 그 크기와 색깔이 다양하다. 내벽은 회반죽을 칠한 아치 천장과 아치 아래쪽 면을 제외하고,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 전체는 회색을 띤 노란색의 부드러운 치장벽토가 덧칠되어 귀중한 초기 벽화는 대부분 사라졌다. 성당의 왕실 기념물은 10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왕실 무덤들을 기념하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한 번을 제외하고, 많은 덴마크 왕과 여왕이 이곳에 매장되어 있다. 각 묘들은 매장 장식 예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보여준다.

완전성

로스킬레 대성당과 후대에 증축된 모든 예배당이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었다. 앞으로 성당 건물과 그 주변 경관의 연관성을 강조하여 보호 구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해당 지역의 전체적인 본래 모습을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을 보장하면 주변 경관과 성당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게 된다.

진정성

다른 주요 종교 건축물처럼 로스킬레 대성당도 처음 건축을 시작한 이후 수차례 개보수를 해왔다. 초기에 지었던 예배당들은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왕실 장례용 예배당이 들어섰다. 몇 차례의 화재를 겪으며 주기적인 재건을 하는 동안 건축 양식에도 변화가 뒤따랐다. 17세기 초 국왕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Ⅳ, 1577~1648)가 건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착수한 복원 작업은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세기 들어 전체 건물이 복원되었다.

복원 작업은 명망 있는 건축가와 예술가의 협력 하에 유능한 교구위원들이 주도하였다. 한편, 지붕과 첨탑에 대한 추가 복원 작업은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진행하였다. 오랜 복원 작업을 하면서 원래의 디자인과 재료들은 엄격하게 존중되고 지켜졌다. 대규모 복원 작업과 관련한 기록문서들은 성당과 국립박물관 문서보관소에 보존하였다. 16세기 이래로 성당은 덴마크 왕실의 묘당으로 사용되었는데, 가장 최근의 장례식은 2000년에 치러졌다.

역사적 배경

유적의 초기 종교시설은 980년 무렵 헤럴드 블루투스 왕이 세운 목조 성당이었다. 성당은 1030년과 1080년에 만들어진 두 개의 트래버틴 구조물로 대체되었다. 12세기 중반, 롬바르디아 장인들이 벽돌 제조법을 보급한 뒤, 압살론 주교가 1170년에 새로운 재료인 벽돌을 이용하여 성당을 재건하기로 결정하였다. 건축 작업은 그의 후계자, 페데르 수네손 주교에 의해 계속되었다.

초기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이는 목조 측랑이 있는 당대의 유럽 순례교회의 건축 방식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성당의 동쪽 면 절반만 완성된 상태에서 프랑스에서 도입된 고딕 양식의 영향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트랜셉트는 더 후방에 배치되고, 탑들은 서쪽 끝으로 이전되었다. 초기 고딕 계획에 영감을 준 것은 느왕(Noyn), 상스(Sens), 라옹(Laon), 아름(Arms), 투르네(Tournai), 그리고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같은 피카르시브(Picarciv)와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의 성당이다. 작업은 사실상 1275년 무렵에 완료되었고, 북쪽 탑을 제외하고는 14세기 말에 끝났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예배당과 현관을 비롯한 다른 구조물이 성당 주위에 건설되었다. 처음에는 주교와 귀족이, 다음에는 왕가가 작업을 주도하였다. 작업을 거듭하면서 부분적으로 원래 구조가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건물 중에는 참사회 회의장(13세기~15세기), 성 안드레 예배당(1387), 성 브리짓 예배당(15세기 말)이 있다.

왕실이 추가한 건물로는 마지 예배당(1460), 크리스티안 4세 예배당(17세기 초), 프레데리크 5세 예배당(1772)을 꼽을 수 있다. 20세기에도 2개의 왕실 예배당을 새로 지었는데, 크리스티안 9세 예배당(1924)과 부속 뉴 로열 그라운드(1985)이다. 종교개혁 이후 성당이 파손되자 1630년에 크리스티안 9세가 복원 작업을 시작하였다. 첨탑을 추가하는 작업과 지붕을 완전히 재설계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성당은 그 이후 계속 유지 관리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주요 복원작업이 있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로스킬레 대성당은 ‘교회 및 교회부속 묘지 통합법’(1992)의 보호를 받는다. 이 법은 교회에 관한 모든 보수공사가 덴마크 국립박물관과 왕립조사원의 자문을 받은 이후, 교구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성당 주위의 보호구역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건물보존법’의 보호를 받는다. 이 역시 어떠한 보수공사도 덴마크 문화유산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도시계획은 성당 주위환경을 규제하며, 신규 건축・교통・조명・간판・도로포장 같은 사안에 대해 공적으로 통제한다. 로스킬드 시위원회는 문화유산 주변 경관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보호 구역 확대를 놓고 덴마크 문화유산위원회와 협력하고 있다.

유산면적
0.40㏊
완충지역
1.50㏊
참고번호
695rev
본문

로스킬레 대성당은 벽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초창기 성당 건축물의 훌륭한 사례이다. 특히 북유럽 지역의 성당 건축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친 건축물이다. 성당은 수 세기에 걸쳐 덴마크 왕실의 묘당으로 사용되었고, 부속 예배당과 현관이 추가로 지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달라진 건축양식들을 주목할 만하다.

로스킬레 대성당 유적의 초창기 종교 건축물은 980년 무렵 헤럴드 블루투스(HaraId Bluetooth, 910∼985) 왕이 세운 목조 성당이다. 이 목조 성당은 1030년과 1080년 두 번에 걸쳐 두 개의 트래버틴(travertine, 石灰巖) 구조물로 대체되었다. 12세기 중반 롬바르디아(Lombardy) 장인들이 덴마크에 벽돌 제조법을 보급하면서, 1170년에 압살론(Absalon) 주교가 새로운 재료로 성당을 재건하기로 결정하였다. 압살론 주교가 1191년 사망한 뒤에는 그의 후계자인 페데르 수네손(Peder Suneson) 주교가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성당의 초기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그러나 성당의 동쪽 면 절반이 완성된 상태에서 고딕의 영향을 받아 계획이 변경되었다. 트랜셉트(transept)는 더 후방에 배치되고, 성가대석을 위해 계획했던 탑들은 서쪽 끝으로 옮겨졌다. 건축 작업의 대부분은 1275년 무렵에 완료하였고, 북쪽 탑을 제외하고는 14세기 말에 완공하였다.

로스킬레 대성당은 고딕양식의 측랑(側廊)이 있는 교회 건물로, 반원형의 성단소(聖壇所) 회랑(回廊)을 포함하고 있다. 구조는 주로 벽돌이며, 내부에 부분적으로 바위가 이용되었다. 외부에서 바라본 벽은 2층 높이의 화강암으로 된 마름돌 토대 위에 서 있다. 내부에도 같은 재질의 오목하고 둥근 홈을 판 토대가 있다. 초기의 건축 구조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보강을 위해 오크(oak)로 된 사각형 빔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다. 이는 당시의 건축가들이 새로운 재료인 벽돌의 특성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벽은 나중에 회반죽을 칠한 아치 천장과 아래쪽 면을 제외하면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 제작된 귀중한 벽화의 대부분은 소실되었다.

‘올루프 모르텐센(Oluf Mortensen)의 현관’은 15세기 중반에 건축을 위탁한 주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현관은 벽돌로 된 덴마크 고딕 건축물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꼽힌다. 건축양식은 북부 독일의 고딕 벽돌 건축과 관련이 있다. 박공(牔栱)지붕과 비대칭이지만 뛰어난 균형미를 갖춘 박공 전면의 낮은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벽에 쓰인 벽돌은 풍부한 음영을 보여 주며 벽돌 제조 과정의 뛰어난 기술을 입증한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예배당과 현관, 그리고 다른 구조물이 성당 주위에 건설되었다. 초기에는 교회의 주교와 귀족이 주도하던 것이 차츰 덴마크 왕실의 주도로 넘어갔다. 개조와 증축 작업이 거듭되면서 원래 구조가 가려지기도 하였다. 새로 지어진 건축물에는 13세기 초부터 15세기 말에 걸쳐 점차 확장된 ‘참사회 회의장’, ‘성 안드레(St Andrew) 예배당’(1387), ‘성 브리짓(St Bridget) 예배당’(15세기 말)이 있다.

왕실이 추가한 건축물로는 마지(Magi) 예배당(크리스티안 1세(Christian Ⅰ), 1460), 크리스티안 4세 예배당(17세기 초, 두 개의 이전 예배당들을 대체함), 프레데리크 5세(Frederik Ⅴ) 예배당(1772, 신고전주의 양식)이 있다. 이 외에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Ⅸ) 예배당(1924)과 부속 뉴 로열 그라운드(New Royal Ground, 1985)는 20세기에 지은 왕실 예배당이다. 2층의 마지 예배당은 1463년에 완공하였다. 본디 광택이 있는 벽돌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지 않았다.

‘기사의 방(Knights’ Hall)’이라고 알려진 2층에 몇몇 주목할 만한 석조(石彫)가 남아 있는 정도이다. 무엇보다 마지 예배당의 주요 특징은 중세 후반의 뛰어난 벽장식이다. 이 장식들은 벽과 아치 지붕을 전체적으로 덮고 있다. 크리스티안 4세 예배당은 왕의 장례용 성당으로 고안된 공간이다. 이곳은 로스킬레 대성당 유적 최초로 탈(脫) 중세적 건축물이 추가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네덜란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고, 가파른 뼈대의 아치 지붕은 덴마크 최대 규모이다. 프레데리크 5세 예배당은 십자 모양의 중앙 내실이 있다. 이 내실은 성당의 남쪽 측랑을 가로지르는 건물과 연결된다.

성당의 중세 비품(備品)은 종교개혁 시기(宗敎改革, 16세기~17세기)에 대부분 사라졌다. 또한 남아 있던 비품 가운데 다수가 1806년 경매시장에서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보존된 문화재로는 교회의 제단 배후 장식 벽이 유명하다. 이 장식 벽은 1560년에 제작되었는데 네덜란드 종교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예수의 일생을 담은 총 3부작으로 안트베르펜(Antwerp)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420년에 지은 성당 참사회원 성가대석도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곳에 그려진 독특한 회화 연작물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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