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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벤 섬 [Robben Island]

  • 로벤 섬
  • 제목 : 로벤 섬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로벤 섬

상세정보

  • 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
  • 위치 웨스턴 케이프 주(Western Cape Province)
  • 좌표 S33 47 60|||E18 22 0
  • 등재연도 1999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로벤 섬의 건물들은 이 섬의 어두운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기준 (ⅵ) : 로벤 섬과 감옥은 억압을 이겨낸 인간 정신,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상징한다.

요약
로벤(Robben) 섬은 17세기~20세기까지 감옥, 군사기지, 사회 부적격자를 수용하는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이 섬의 건물 중 감옥은 20세기 말에 정치범을 수용한 곳으로, 경비가 상당히 삼엄했다. 이 감옥은 억압과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민주주의·자유가 승리를 거둔 사실을 증언하는 곳이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로벤 섬은 17세기~20세기까지 감옥, 군사기지, 사회 부적격자를 수용하는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이 섬의 건물 중 감옥은 20세기 말에 정치범을 수용한 곳으로, 경비가 상당히 삼엄했다. 이 감옥은 억압과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민주주의·자유가 승리를 거둔 사실을 증언하는 곳이다.

17세기의 채석장, 1755년에 죽은 디제 크라마트(Hadije Kramat)의 무덤, 19세기의 마을 행정 건물과 예배당·목사관·작은 등대·나환자교회·나환자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때 세운 항구 주변의 군사 구조물을 비롯해 1960년에 시작된 인종격리정책 시절의 냉엄하고 극단적인 경비 시설을 갖춘 감옥이 섬의 역사의 한 단면으로서 남아 있다.

로벤 섬의 상징적 가치는 암울한 역사를 나타내는 감옥과 수용소에 있다. 수용소에는 사회부적격자로 분류되는 불행한 사람들을 격리했다. 이 암울한 역사는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이 비인간적인 인종격리정책을 거부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고, 그 섬에 갇혀있던 정치범들은 수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

완전성

유적은 이 섬의 경관으로서 17세기 이후의 섬의 역사와 가치를 전달하는 모든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교정 서비스 부서가 이 섬을 버리고 떠난 이후로 도로 정비가 거의 되지 않았고 많은 건축물은 수리와 정비가 필요하다. 확실한 관리와 시설,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아 해양과 육지에는 자연적 위협·인위적 위협이 존재한다. 섬에 관한 자료에는 700여 채의 건물과 유적이 목록에 올라 있는데,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은 훼손에 노출된 상태이다.

관광객의 증가는 이 섬의 자연과 건축물의 보존에 위험요소이다. 기반시설 공사 등의 사업비의 지원을 받기 쉬우므로 유산에 대한 예방 차원의 활동보다는 공사와 기반 시설 사업 확충에 집중되면서 다소 불균형적인 보존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유적의 완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진정성

정확하게 역사 궤적에 따라 몇 번의 용도 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보존을 목적으로 하여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섬의 진정성은 완전하다. 시대별로 누적되어 쌓인 증거가 17세기 초 이후의 역사와 관련된 사건들을 대변하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기념물보호법에 의거하여, 1996년에 이 지역을 국가기념물로 선포했다. 로벤 섬과 주변 1해리 완충지역을 국가유산유적으로 지정하여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관련 법률에는 국가유산자원관리법(1999년, No25), 세계유산협약법(1999년, No49), 문화재법(1998년, No 119), 국가환경관리법(1998년, No107), 국가환경관리 : 생물다양성법(2003, No10), 국가환경관리 : 보호구역법(2003, No57)이 있다. 보호법에 의하면 유산지역이나 완충지역 이내에서 채광이나 탐사를 모두 금지한다. 또한 유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부적절한 개발은 환경관광부에서 금지한다.

관리 업무는 로벤 섬 박물관 자문위원회가 대표기관으로 맡고 있으며, 고위 행정 관리와 함께 상주하며 일상적 관리와 보호를 맡고 있다. 보호관리 방안 계획을 통합하여 진행하는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물리적 관리와 예방 보존 사업, 통역과 관광객 관리 개선, 공공사업부와의 협력에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건축 유산의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유산의 제도적, 관리적 측면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사업부에서 착수한 2003년 6월의 현황보고서 권고 사항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는 장래의 유지 계획을 지도하고 예산 책정에 지원을 하며, 진행 사항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확립하는 사항이 들어 있다. 그 보고서에는 대부분의 기반 시설이 정리되어 있으며, 그 상태를 평가하고 수리할 것을 권고했다.

유산면적
475㏊
참고번호
916
본문

로벤 섬의 건물들은 이 섬의 어두운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며 동시에, 압제에 대항한 인간정신과 자유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상징하고 있다. 로벤 섬은 낮은 바위섬으로, 본토에서 북쪽으로 9.3㎞ 떨어진 곳에 있다. 지중해성 기후이며, 겨울에는 사나운 강풍과 파도 때문에 북부와 서부는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주거지는 주로 섬의 남쪽과 동쪽 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단섬에서 인간 거주의 흔적이 불연속적인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식수의 부족이었다. 인간 정주의 최초 증거는 버려져 방치된 점판암 채석장(섬의 남부)과 석회암 채석장(중부)에서 발견되는데, 모두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벤 섬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곳은 대륙붕에 해당하여 안장 모양의 해저지형에 의해 테이블 만(Table Bay) 연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로벤 섬과 함께 케이프 반도는 유럽과 동양을 오가는 항해로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이곳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들은 아마 바스쿠 다가마 함대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1498년에 쉴 곳과 식량을 찾아 이곳에 들렀다. 그 뒤를 이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배들이 들어와, 이곳에서 식량과 식수를 얻었으며, 케이프의 원주민들의 공격에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희망봉의 잠재력을 처음으로 알아차렸고, 1657년에 얀 반 리벡(Jan van Riebeeck)이 이곳에 식민지를 세웠고 동인도회사 직원들과 자유 시민들이 모였다. 1688년에 루이 14세가 낭트칙령을 철회하면서 프랑스의 위그노 교도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원주민들을 상대로 노예화 정책을 활발히 시작하여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 노예들을 들여왔으며 동인도와 동양의 여러 곳에서 추방된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리벡은 이 섬을 감옥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먼저 노예와 전쟁 포로들을 보내어 케이프타운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돌을 자르고 조개껍데기를 태워 석회를 만들게 했다. 나중에 유죄 선고를 받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군인들과 선원들, 본토에 불만을 품고 온 코이산 원주민, 그리고 동인도에서 온 정치 지도자들과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합류했다. 케이프 반도를 네덜란드인이 차지했다가 1795년과 1806년에 영국인이 차지했을 때, 계속해서 이 섬을 대부분이 백인인 군인 포로, 정치범과 대부분이 흑인인 범죄자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했다. 죄수들의 십분의 일이 여성이었지만, 이들은 1835년에 케이프타운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케이프타운은 기존의 행정 중심지로서 별칭이 ‘더 빌리지(the village)’였다. 1840년의 클럽회관(이전에는 병원관리자 숙소)과 이전의 영국성공회 목사관 등의 건물들이 내부와 외부 모두 그 당시의 장식이 잘 남아 있다. 1841년에 유죄선고를 받은 노동자들과 함께 지은 영국성공회 교회는 케이프의 고딕양식의 초기 모습으로 회반죽을 바르고 겉에 흰색을 칠하였다. 1846년에 섬의 감옥을 폐쇄하고 종합 진료소를 세워서 만성질환자·정신병자·나환자들을 수용하여 본토의 병원에 부담을 덜어 주었다.

그러나 섬은 여전히 중요한 정치범들의 유배 장소로 영국인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종합 진료소의 경영과 환자(1860년대부터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아온)의 치료는 질이 낮았고 본토에 정신질환자와 만성질환자들을 위한 전문병원이 생겼지만 그 병원은 중산층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섬 남쪽에 있는 민토스(Minto) 언덕 위의 작은 등대는 1864년에 지었다. 마을과 머레이(Murray) 만으로 알려진 약간 북쪽에 있는 항구 사이에는 선한목자 교회(일반적으로 나환자 교회로 알려져 있다)가 있다. 이곳은 1895년에 유명한 건축가 허버트 베이커(Herbert Baker) 경이 설계하고 나환자들이 스스로 건축하였다. 그 주변으로 나환자 무덤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풀로 반쯤 덮여 있다. 로벤 섬은 케이프에서 나환자 수용소가 되었고, 수용자가 1,000명이 넘었다. 이곳도 1931년에 결국 폐쇄되었다.

섬을 휴양지로 만들려는 계획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했고, 1936년에는 군사 목적으로 보유하기로 선언했다. 테이블 만의 첫 번째 방어지점이 되어 부두시설을 만들고 연안에 포병대를 갖추었다. 전쟁 후에도 훈련지로 계속 이용되었고, 195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해병대, 그 다음은 남아프리카공화국해군에 인계되었다. 1959년에 교도부가 이 섬을 인종격리정책으로 형을 받은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만들었으며 감옥의 경비는 상당히 삼엄했다. 정치범 외에 보통 범죄자들도 수감했는데, 모두 흑인이었다. 지금 머레이 만에 있는 부두는 대규모 요새와 다른 군사 시설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건설했다. 인종격리정책 시기에 경비가 가장 삼엄한 1960년대에 건설되었다.

1961년에 처음으로 죄인들이 이곳에 들어왔고, 그 다음해에 첫 번째 정치범들이 들어왔다.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보내졌는데, 대부분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범아프리카회의 지도자들이었다. 로벤 섬에 수용되었던 사람 중 가장 저명한 사람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이다. 만델라는 그곳에 약 20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1991년에 마지막 정치범이 떠났고 마침내 1996년에 폐쇄되어 이후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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