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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세이르 암라 [Quseir Amra]

  • 쿠세이르 암라
  • 제목 : 쿠세이르 암라
  • 설명 : © UNESCO / Author : Yvon Fruneau
쿠세이르 암라

상세정보

  • 국가 요르단(Jordan)
  • 위치 아즈자르카 시(Az Zarqa' Governorate)의 동부 사막
  • 좌표 N31 48 6.984|||E36 35 8.988
  • 등재연도 1985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쿠세이르 암라의 회화는 우마이야 왕조의 독특한 업적이다.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려는 왕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써 건설된 접견실과 목욕장 건물의 넓은 프레스코화는 초기 이슬람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새로운 영감과 고전적 비잔틴의 영향을 보여 준다. 황도 12궁이 있는 돔 천장, 인류의 묘사와 사냥터의 동물과 새의 묘사는 초기 이슬람의 예술에서만 발견된다.

    기준 (ⅲ) : 쿠세이르 암라는 초기 이슬람의 세속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우마이야 문명을 잘 증언하고 있다. 이슬람의 엄격한 종교 분위기는 시각 예술에 있어서 매우 사소한 자취만을 남겼을 뿐이다.

    기준 (ⅳ) : 수백 미터 북쪽의 요새이자 주둔지 건물의 유적, 농업용수 저수 작업의 흔적, 접견실과 함께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욕장 건물, 인근의 우물, 물탱크와 물을 끌어올리는 급수 체계, 배수관, 저수지는 우마이야 왕조 사막 시설의 뛰어난 본보기이다.

요약
쿠세이르 암라는 8세기 초에 우마이야(Umayyad) 왕조 칼리프들의 거처인 동시에 수비대가 주둔하던 요새이다. 사막에 건축된 이 아담한 궁전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위락을 위한 접견실(hall)과 함맘(hammam, 목욕탕)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벽화는 당대의 세속적인 예술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8세기 초에 계절성 물길인 와디 바툼(Wadi Butum) 옆에 건설된 이 사막 시설물은 주둔군이 있는 요새이자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의 위락을 위한 궁전이었다. 매우 잘 보존된 이 아담한 궁전에는 접견실과 함맘(탈의실, 온열 욕실 같은 목욕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당대의 세속 예술을 풍부하게 반영한 구상(具象) 벽화가 있다. 함맘과 접견실의 넓은 프레스코 화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 건축물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다. 벽화에서는 고전적인 이교도적 주제의 영향, 비잔틴 양식의 묘사와 사냥 장면, 동물과 새의 묘사, 그리스어와 아랍어 비문이 발견되었다. 온열 욕실 돔 지붕의 황도 12궁 그림은 돔에 그린 천궁도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에 속한다.

위락 궁전 및 다른 사막 시설물은 와디 바툼의 부족(tribal)의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 위한 목적으로 암만(Amman) 동쪽의 준(準) 건조 지대(semi-arid area)에 건설된 몇몇 시설 중 하나이다. 이처럼 쿠세이르 암라(Quseir Amra)는 독특한 건축 앙상블의 탁월한 본보기이자 최초 이슬람 칼리프의 행정 전략과 구체적인 관련이 있다.

카스르 엘 무샤타(Qasr el Mushatta) 기념물의 파사드(façade)에는 돋을새김 장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식은 베를린 박물관으로 보내졌고, 카스르 알카이르 알-샤르키(Qasr al Khayr al-Sharqui)와 카스르 알카이르 알가르비(Qasr al-Khayr al-Gharbi) 유적에는 겨우 몇몇 장식적 요소들만 남아 있다. 이에 비하면 카스르 이샴(Qasr Hisham)과 모자이크 장식을 보존하고 있는 쿠세이르 암라 유적은 요르단과 시리아에 남은 우마이야 궁전과 성의 장식물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완전성

쿠세이르 암라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스코화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목욕탕 건물과 접견실이다. 이 기념물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인한 침식과 그것이 자리한 물길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보존이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여 유산의 동쪽과 북쪽 지역에서 식목 사업을 추진하여 건조한 사막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유산의 서쪽에 우회 도랑을 건설하여 홍수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거대한 현대식 저수지를 건설하여 물을 저장하고, 저장한 물을 삼림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건축물의 위치와 여러 가지 여건을 살펴보면 수분이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건물 밑바닥에 소금이 퇴적되고 회반죽이 분리되는 등 벽화의 완전성에 타격을 주었다. 또 벽화는 계절성 습기와 방문객 증가에 따른 응축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1970년대의 복원 작업 때 사용한 몇 가지 약품의 약효 저하에 따른 문제들, 새로운 쓰레기와 낙서, 새와 곤충이 만드는 퇴적물 때문에 완전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산의 주위 환경은 한때 영양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평화로운 서식지였다. 이런 동물들은 물길의 이름의 기원이 된 부투트(Butut, 테레빈(terebinth) 나무)가 만들어낸 와디 호수 바닥의 물웅덩이로 피해 왔지만, 현재 동쪽 150m 지점에 건설된 고속도로에서 나는 소음과 공해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노출되어 있다.

진정성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목욕탕 건물과 접견실, 벽화와 꽃 모자이크 흔적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또한 인근의 우물, 물탱크를 비롯한 물을 끌어올리는 급수 체계, 북쪽의 요새이자 주둔지, 농업용수 취수 구조의 흔적, 계절적 물길이 있는 사막에 있는 건축물의 전후 사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속성들 때문에 관광객 증가에 따른 주의 깊은 관리와 지속적인 보존 대책이 요청된다. 벽화는 1970년대와 1990년대에 복원되었고, 추가 복원 계획이 수립되었다. 주변 경관에는 이제 보호 구역의 북쪽 끝에 있는 방문자 센터와 400m 북동쪽에 있는 태양열 물 펌프장이 포함된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문화유산은 1935년에 공표된 문화재법 제8조와 1976년에 공표된 임시법의 보호를 받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관리 계획은 없지만, 관리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자라(Zara)의 지역 사무소를 통해 유적을 관리하고 있다. 암만의 문화재국 직원 중에는 고고학자와 건축가, 현장 조장, 4명의 비숙련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규칙적인 감시 활동 및 사소한 유지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유산은 전 구역에 걸쳐 담을 쌓아 놓았고 4명의 경비원이 보안을 담당하고 있다. 문화재국은 현재 대략 2,000,000㎡에 이르는 유산 둘레의 확장된 보호 구역을 설치하기 위해 관련 토지 심사 당국과 협의 중이다. 미래의 발전과 식목을 조정하기 위한 규칙들이 지방 당국과 농업부의 협조 아래 만들어질 것이다.

참고번호
327
본문

쿠세이르 암라는 우마이야 왕조가 향유했던 초기 이슬람의 세속문화를 보여주는 우마이야 문명의 이례적인 증거이다. 나중에 이슬람의 엄격한 종교 분위기는 시각 예술에 있어 매우 사소한 정도의 자취만 남겼다. 요르단과 시리아에 있는 우마이야 궁전과 요새들은 대부분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궁전과 요새에 비하여 잘 보존된 건축물이다. 8세기 초에 건설되어 지금까지 훌륭하게 보존된 이 사막의 성은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들의 거처인 동시에 수비대가 주둔하던 요새였다. 이 아담한 위락을 위한 궁전은 접견실과 목욕탕이 가장 특징적이다. 접견실과 목욕탕에 그려진 벽화는 당대의 세속적인 예술을 반영한다.

쿠세이르 암라는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 동쪽 약 85㎞ 지점, 그리고 아즈라크와 카라네, 투바를 통과하는 대상로(隊商路)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들이 오늘날의 시리아와 요르단의 사막에 건설한 많은 거주지 중 하나이다. 이 사막의 성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먼저 이 성은 임시 기지로, 주둔군이 머무를 수 있는 요새였다. 그리고 칼리프가 유목민인 베두인족 본래의 생활양식으로 돌아갈 수 있는 휴식 공간이었다. 본래 정사각형 모양이었던 쿠세이르 암라 요새는 토대만이 남아 있는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3개의 네이브(nave)가 있는 접견실, 목욕탕이 있는 작은 귀족 저택은 독특한 벽화 장식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1898년 오스트리아인 알로이스 무실(Alois Musil)이 발견하고 1907년에 공개한 이 벽화들은 고고학자 마르틴 알마그로(Martin Almagro)가 지휘하는 에스파냐의 전문가 팀이 복원했다.

쿠세이르 암라는 최근의 연구에서 왈리드 2세(Walled II, 743~744) 치하에서 건설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왈리드 1세(Walled I, 705~715) 치하에서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접견실의 탁월한 건축 구조와 매우 넓은 욕장 시설이 주목할만하다. 양동이가 달린 물방아와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하는 욕장은 로마의 목욕탕과 유사하며, 3개의 공간, 곧 서비스룸과 탈의실과 온열 욕실이 있다.

쿠세이르 암라에 독특함을 부여하는 것은 접견실과 욕장의 둥근 천장과 화려한 벽화이다. 벽화에는 역사적 주제(우마이야 왕조 칼리프들에게 패배한 왕들)와 신화적 재현(그리스 이름을 가진 시와 철학과 역사의 여신), 상상의 주제(동물 음악가와 사자에게 쫓기는 사냥꾼)뿐 아니라 황도 12궁, 사냥 장면, 목욕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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