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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Palaces and Parks of Potsdam and Berlin]

  •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 제목 :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 설명 : © UNESCO / Author : Lodovico Folin-Calabi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브란덴부르크 주와 베를린 주(States of Brandenburg and Berlin)
  • 좌표 N52 23 60|||E13 1 60
  • 등재연도 1990년(1992년, 1999년 확장)
  • 등재기준

    기준 (ⅰ) : 포츠담의 성과 공원의 조화는 뛰어난 예술적 업적으로, 절충적이며 진화적인 특성을 지녔다. 크노벨스도르프에서 싱켈, 아이저베크에서 레네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조경 전문가들이 만든 걸작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이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추가로 설계되었는데, 일반적 구성의 조화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상반되고 일반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양식들도 나타난다.

    기준 (ⅱ) : 포츠담 상수시 궁전은 이탈리아·영국·플랑드르·파리·드레스덴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다. 18세기 유럽의 도시와 왕궁의 예술 동향을 통합한 성과 공원은 오데르 강 동부의 기념물 건축과 공간 조직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친 새로운 모델을 제공한다.

    기준 (ⅳ) : 베르사유 궁전(1979년에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과 마찬가지로, 포츠담 상수시 궁전은 유럽 내에 권력을 쥔 군주적 이상과 관련된 건축 작품과 조경 개발의 뛰어난 사례이다. 이들 왕실 건물은 광대한 넓이 때문에 뷔르츠부르크와 브렌하임(각각 1981년과 1987년에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과 같이 매우 독특한 범주의 왕궁에 속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이 건물을 1단계에서 2단계로 발전시켰는데 1단계는 1721년~1725년까지 만들어진 ‘첫 번째 새로운 도시’이고, 2단계는 1733년에 시작된 ‘두 번째 새로운 도시’이다. 그러나 1945년 4월 14일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이 도시적 유적들은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될 수 없었다.

요약
1730년~1916년에 포츠담에는 공원 500㏊와 건물 150동이 모인 복합지구가 건립되었으며, 이곳의 건축물과 정원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 단지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복합 예술적 통일체를 이루었으며, 이런 절충적인 성격은 이들만의 독특한 특성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건축물과 공원은 베를린·첼렌도르프(Berlin-Zehlendorf) 지역까지 이어져 하벨(Havel) 강의 제방과 글렌니케(Glienicke) 호숫가에 늘어서 있다.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은 프리드리히 2세가 1745년〜1747년에 건축했으며, 볼테르(Voltaire)가 머물기도 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사크로(Sacrow)에 위치한 대지에는 1841년〜1844년에 건축가 루트비히 페르시우스(Ludwig Persius)가 설계하여 건축한 18세기 영주의 거주지(14세기의 성에서 전환됨), 성 그리스도 교회, 페르시우스(Persius)와 조경사 페터 요제프 레네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위해 만든 정원이 있다. 이곳은 포츠담과 바벨스베르크의 성과 정원 전체 경관에 통합되며, 대부분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다.

이 대지는 최근까지 이전의 독일민주공화국과 서베를린 영토의 경계에 있었기에 심각하게 방치되었다. 교회 접근이 금지되었고, 건물은 버려졌다. 이후 언론에서 강하게 지원하고 나서는 한편 서베를린 당국이 복원 작업 진행과 그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개입함에 따라 1981년~1982년에 교회 지붕 수리에서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베를린 포츠담 성과 공원 행정의 관리 아래 교회와 성, 정원 내부의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유산면적
2,064㏊
참고번호
532ter
본문

10세기에 처음 언급된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Frederick William, 1620〜1688)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포츠담에는 1640년 이후 소규모의 수비대가 주둔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기능은 프러시아 군주제로 강화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 1712〜1786) 치하에서 포츠담은 크게 변하였다. 새로 왕이 된 그는 ‘군 지휘관 왕(Sergeant King)’의 요새 도시와 정착 식민지 옆에 ‘프러시아의 베르사유(Prussian Versailles)’를 세우려고 하였다. 1744년에 프리드리히 2세는 발트(Bald) 산의 언덕 남쪽 부분에 계단식 밭 6개로 포도원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상수시 궁전의 이름은 친밀감과 소박함에 대한 프리드리히 2세의 욕구가 반영되었는데, 소박한 별장을 대리석, 거울과 황금 등으로 바꾸어 로코로 양식의 궁전으로 만들었다. 단층으로 된 궁전은 돌출된 축이 있는 원형 홀이 있고, 각 면에 방이 5개씩 있다. 동쪽에는 왕실의 개인용 방들이 있고, 서쪽에는 객실이 있다. 건축가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Georg Wenzeslaus von Knobelsdorff)는 프리드리히 2세의 친구로 왕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왕의 도움으로 로마·베니스·피렌체·드레스덴·파리에서 훈련을 받았다. 도상학적 설계에 따라 포도 재배자의 주택이 지어졌는데, 남쪽 정면부에 조각가 크리스티안 글루메(Christian Glume)가 만든 바커스 신의 여사제상이 36개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상은 부속 건물의 지붕 하부와 축을 이루는 원형 홀의 둥근 지붕 하부의 처마 돌림띠를 지지하는 여인상 기둥으로 배치되어 있다.

290㏊에 달하는 공원은 건물 몇 동을 두르고 있다. 성을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대칭적으로 구분 짓는 회화 갤러리와 오래된 오렌지 온실은 1771년〜1774년에 영빈관으로 재설계하였다. 첫 번째 건축 단계에서 많은 건물을 지었는데, 그중 가장 훌륭한 것은 크노벨스도르프의 마지막 작품인 넵튠 그로토(Neptune Grotto)이다. 이 건물은 크노벨스도르프 생전에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뒤 완공되었다. 중국풍 다실은 건축가 뷰링(Bering)의 감독 아래 만들어졌다.

7년 전쟁(1756〜1763) 이후 프리드리히 대제의 명령으로 신 궁전을 건축하였다. 이 거대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에는 유명한 ‘조개의 방(Shell Room)’을 포함해 200개 이상의 방을 만들었다. 고대 사원, 우정의 사원, 벨베데레(Belvedere), 용 전시관을 포함한 여러 건물은 공원에 건설하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1861)는 상수시 공원 확대에 전념하였는데, 황태자 자격으로 남쪽 영역을 구입하였다.

그는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Friedrich Schinkel)에게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성인 샤를로텐호프 성을 소규모로 건설할 것을 지시하고, 페터 요제프 레네(Peter Josef Lenné)에게는 낭만적인 공원을 설계할 것을 지시하였다. 레네는 또한 시칠리아 정원, 북유럽 식 정원, 하우프탈레(Hauptallee) 북쪽을 설계하였다. 1860년까지 새로운 건물이 계속하여 건설되었다. 오렌지 온실은 로마의 메디치(Medici)가와 산 클레멘테 바실리카의 프리덴스키르헤(Friedenskirche, 평화의 교회)의 입면도를 적용하여 만들어졌다.

세계 유산 유적에는 서로 다른 집합체가 2개 포함되는데 공원, 성과 그 밖의 건물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대리석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왕의 여름 별장으로 콘타르트(C. von Gontard)가 건축하고 랑하우스(K. G. Langhaus)가 설비하였다. 공원 북쪽 끝에는 영국식 별장을 모방하여 만든 체칠리엔호프(Cecilienhof) 궁이 있는데, 1945년 8월의 포츠담 조약 체결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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