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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네의 옛 시가지 [Old Towns of Djenné]

  • 젠네의 옛 시가지
  • 제목 : 젠네의 옛 시가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젠네의 옛 시가지

상세정보

  • 국가 말리(Mali)
  • 위치 몹티 지역(Region of Mopti)|||젠네 지역(Djenné Circle)
  • 좌표 N13 54 23.004|||W4 33 18
  • 등재연도 1988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젠네제노는 함바르케토로·카니아나·토놈바와 더불어 니제르 강 내륙 삼각주에 있었던 이슬람 이전 문명에 대한 특별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금속·테라코타 유물의 발견뿐 아니라 젠네제노의 전통 벽돌 구조 유물인 젠네 페레이(djénné ferey), 매장된 토기 등이 발굴된 젠네제노 주거지들은 주거·산업·공예기술의 발전 연구에 있어 중요한 건축학적 고고 유적이다.

    기준 (ⅳ) : 1591년 모로코 건축의 영향, 그 후 1862년 투쿨뢰르 제국의 표현 등 젠네의 건축물은 수직성이 특징이다. 젠네의 고대 도시 배치는 중대한 역사 기간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 모여 있는 건축단지이다. 이 건축물들은 정면이 뚜렷하게 구분된 버팀벽이 있는 2층 집이다. 출입구는 특별히 주목을 끌도록 되어 있다. 1906~1907년까지 재건된 모스크는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건축 기념물을 창조하는 결과를 얻었다.

요약
젠네는 사하라 사막의 황금 무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기원전 25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젠네는 15세기와 16세기에 이슬람교 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의 2,000개 정도가 남아 있는 전통 가옥들은 작은 언덕(toguere) 위에 건축되어 있어서 계절 홍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젠네 지역의 자치 마을인 젠네는 몹티(지역 수도)에서 130㎞, 남서쪽으로 136㎞ 지점, 그리고 수도인 바마코에서 북동쪽으로 대략 570㎞ 지점에 있으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문화유산인 ‘젠네의 옛 시가지’는 10개로 나뉜 지역 가운데 젠네제노(Djenné-Djeno), 함바르케토로(Hambarkétolo), 카니아나(Kaniana)와 토놈바(Tonomba)로 총 면적 48.5㏊인 4개의 고고 지역의 연속유산이다. 젠네 마을의 옛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몇 년 동안 전형적인 아프리카 도시를 상징했던 유적군이다. 또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물이 많이 있다. 유산의 특징은 흙을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종교적 가치를 지닌 위대한 모스크 사원은 눈에 띄게 탁월한 사례이다. 도시는 건물 전면을 복잡하게 만든 대단히 우아한 주택일 뿐 아니라 수직성과 버팀벽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지닌 건축물로 유명하다. 1977년, 1981년, 1996년, 1997년에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의 특별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발굴 작업 결과 이슬람 이전 도시 건축물인 젠네 페레이(djenné ferey)와 장례의 항아리, 도자기, 맷돌, 그라인더, 금속성 화산암재 등 수많은 고고 유물 속에 원형이나 직사각형 형상이 있었다는 증거를 지닌 고고 유물군이 나왔다.

‘젠네의 옛 시가지’ 유산은 놀라운 건축물과 도시 구조로는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구한 이슬람 이전 문명에 대한 증거를 지닌 고고 유적 지역 4군데 있다. ‘젠네의 옛 시가지’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고고·역사·종교·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완전성

4개의 고고 유적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는 도자기 파편, 장례용 단지, 벽과 전통적인 둥근 진흙 벽돌(젠네 페레이) 유물, 조각상과 금속 화산암재, 맷돌, 그라인더와 이슬람 매장 부지가 해당된다. 작은 섬들이 있는 늪지는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완전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지정된 고고 유적 지역은 악천후와 통제할 수 없는 도시화 때문에 침출, 침식, 도랑 형성 같은 매우 심각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유명한 모스크뿐만 아니라, 젠네에는 드물게 장식된 현관이 있는 건물이 엄격한 구조를 지닌 항상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정문의 위치를 나타내는 장식 문양인 ‘포티주(potige)’가 중앙에 표시된 지지 벽체로 구성된 매우 우아한 주택이 있다. 세계유산 목록에 유산 지정 등재기준인 흙으로 만든 이런 건축물이 수십 년 동안 그 미적 가치가 수정되면서 변하는 과정을 겪어 왔다.

• 현대적인 재료, 즉 시멘트, 구운 벽돌, 금속 문과 창문의 도입
• 젠네의 흙 건축물의 특징인 건물 정면 장식의 소실

진정성

특별히 지정된 고대 유적 지역에 관한 진정성은 약간 변형된 건축 자재로 증명된다. 즉 흙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이다. 건설 기술 전수는 몇 세대에 걸쳐 석조 저택을 지어 온 바리 사(Barey Corporation)에 위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영혼, 지혜, 환영, 그리고 대모스크 건물을 통하여 젠네가 존재하며, ‘경건한 도시’로 남아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젠네 도시는 국가 문화유산 목록을 통한 법적 보호와 보존을 위한 문화적 사명 의식 고취로 혜택을 받고 있다. 대모스크, 코란 학교, 성자들의 무덤은 촌장, 위원회와 지역 족장으로 구성된 코란 학교와 감독 협회인 모스크 관리위원회 설립으로 풍습 보호라는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지역은 2008년~2012년에 ‘보존 및 관리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참여 방법에 따라 지역 사회와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다. 인구와 건물 투기의 증가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보호 구역의 경계는 모호한 상태이다. 준비 중인 도시 규제는 공표된 경계 정의에 도움이 되고, 지속적인 도시 발전과 문화유산 가치 존중에 기여할 수 있다. 문화 사절단이 인적·물적 자원을 준비하여 문화유산 약탈과 기타 위협에 대비한 유산 통제를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참고번호
116rev
본문

젠네제노는 함바르케토로, 카니아나와 토놈바와 더불어 니제르 강 내륙 삼각주에 있던 이슬람 이전 문명에 대한 특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젠네는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들 가운데 놀라운 전형이 남아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전형적인 아프리카의 도시’로 정의되어 왔다.

해마다 니제르 강과 지류 때문에 생기는 홍수는 젠네 지역과 전체 내륙 삼각주 지역에 꼭 필요한 자연 현상이었다. 홍수는 몇 개의 작은 언덕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을 덮어 버린다. 이런 곳을 토구에르(toguère)라 한다. 1977년~1981년 수행된 발굴 작업은 젠네에서 남동쪽 3㎞ 지점인 바니(Bani)의 홍수 분지에 있는 젠네제노의 토구에르에서 이루어졌다. 이 발굴을 통해 이 지역에 기원전 250년부터 14세기까지 계속해서 인간이 정착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또 정착은 여러 단계로 이어졌음이 밝혀졌다.

도시 이전 단계였을 때 보조(Bozo) 사람들은 낚시와 벼농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도시화는 아마도 노노(Nono) 사람들 때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노노 상인들이 있을 때 도시가 빠른 속도로 시장 중심지가 되었고, 사하라 사막 횡단 황금 무역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슬람교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서부 아프리카에서 9세기~10세기에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가정용 구조물들인 벽, 가옥, 오븐의 유물과 같은 것들과 금속·테라코타 공예품들이 풍부하게 발굴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젠네제노를 특별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인정받게 하였으며, 주거의 발전, 산업과 공예기술의 발전, 이슬람교의 확산에 대한 연구를 위한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다량의 아프리카산 쌀 낟알 같은 유기물의 발견은 어떻게 쌀이 재배되고 개발되었는지 밝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함바르케토로, 토놈바, 카니아나와 같은 여러 토구에르에서도 중요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천연 피난처였던 이 모든 텔(tell)은 잠재적인 고고 유적지이며 이를 근거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14세기, 사람들은 11세기부터 거주하던 젠네 지역을 선호하면서 젠네제노를 버렸다. 소녀를 속죄 희생 제물로 바치는 ‘테파마(Tepama)’는 마을의 번영을 위해 소녀를 산 채로 벽에 감금하는 것으로, 애니미즘 신앙과 주물 숭배(呪物崇拜) 사상과 관계가 있었다. 이것은 종교적 맥락에서 볼 때 아직 이슬람교가 전파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마르카(Marka) 상인들이 소개한 이슬람교는 코움보로(Koumboro) 술탄이 개종한 13세기 말이 되어서야 받아들여졌다. 그는 궁전을 버리고 그곳을 젠네 최초의 모스크로 바꾸었으나, 1830년에 파괴되었다.

팀북투(Timbuktu)와 마찬가지로, 젠네는 15세기~16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다. 당시 그곳은 이슬람 확산의 중심지였다. 1591년 처음에는 모로코 인, 그리고 1810년 플(Peulh) 족, 1862년에는 투쿨뢰르(Toucouleur) 족이 차지하였고 마지막으로 1893년에 프랑스의 식민지 군대가 점령하여 일정기간 동안 젠네의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 후 비로소 말리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식민지 기간, 특히 1906년~1907년에 대모스크 재건을 통해 도시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3,000명의 숭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유적은 지역 종교 건축을 매우 성공적으로 섞어서 모방한 작품이다.

여러 토구에르가 흩어져 있는 젠네 도시는 대로로 양분되었다. 남쪽에는 대모스크가 차지하고 있는 마켓 플레이스가 있다. 도로 양쪽에서 밖으로 확장되어, 약 20㏊에 이르는 옛 토지 위에 1,850채에 이르는 전통 가옥이 있다. 모로코의 영향을 받은 가정용 건축물의 특징은 수직성(verticality)에 있다. 출입구가 늘 특별한 관심을 끄는 2층 주택의 전면을 지지벽이 구분하고 있다. 역사의 중심을 지나면서, 현대식 건물이 도시 경계를 계속적으로 확장해 나아가고 있다. 특별히 17개의 항구가 있는 젠네는 팀북투를 오가는 통나무배가 정박하는 밤바나(Bambana)에 있는 항구임을 언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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