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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트암호프와 레겐스부르크 옛 시가지 [Old town of Regensburg with Stadtamhof]

  • 슈타트암호프와 레겐스부르크 옛 시가지
  • 제목 : 슈타트암호프와 레겐스부르크 옛 시가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ia Alberth
슈타트암호프와 레겐스부르크 옛 시가지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바이에른 주(Bavaria)
  • 좌표 N49 1 14|||E12 5 57
  • 등재연도 2006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레겐스부르크 시는 남부 독일의 초기·후기 중세 건축물 중심지이다. 중세 초기에 무역 중심지로 번성한 레겐스부르크는 알프스 이북의 도시 발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중세의 종교적·세속적 건물 모두는 걸작이다.

    기준 (ⅲ) : 도시의 정치적·종교적 상징성
    • 정치적 상징성 : 레겐스부르크 시는 고대 로마 군단의 캠프, 중세 초기 동프랑크 제국의 중심지,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국 회의가 빈번히 개최된 장소, 1663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 1806년까지 제국의회(영구의회) 개최지로 유럽 역사상 중요한 장소이다.
    • 종교적 상징성 : 레겐스부르크는 최남단 프로테스탄트 제국 도시로, 16세기에 도나우 강을 따라 루터파의 교의가 남동쪽으로 전파되던 시기의 전초 기지였다.

    기준 (ⅳ) : 레겐스부르크 시에는 알프스 이북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 건물이 조화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덕택에 독특한 건물의 원래 모습 그대로 밀집되어 있다. 레겐스부르크 구시가지는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 있는 대규모의 중세 독일 도시이다.

요약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는 바이에른(Bavaria) 주의 도나우(Danube) 강변에 있는 중세 도시이다. 이곳의 훌륭한 건축물은 과거 무역 중심지였던 도시의 역사를 보여줄 뿐 아니라, 9세기부터 도시가 주변 지역에 미쳤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은 2,000여 년에 걸쳐 건축된 것들이다.

시장, 시청, 대성당을 비롯한 11세기~13세기 구조물이 있는 레겐스부르크는 높은 건물, 어둡고 좁은 골목, 견고한 요새 시설이라는 도시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중세 귀족 가문의 저택과 탑,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 건물, 12세기에 지어진 ‘옛 다리(Old Bridge)’ 등도 그러한 건축 구조물에 포함된다. 뒤에 프로테스탄트의 중심지가 된 레겐스부르크에는 한때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였던 풍요로운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목차
유산면적
183㏊
완충지역
776㏊
참고번호
1155
본문

레겐스부르크는 로마 제국부터 근대까지를 포함하는 복잡한 역사를 지닌다. 주요시기는 다음과 같다.

• 고대
레겐스부르크는 179년부터 돌로 만들어진 중요한 군사 기지로 기능하였다. ‘레겐 강의 요새’라는 뜻으로 이때는 카스트라레지나(Castra Regina)라고 불렸다. 안에 작업장과 커다란 사원이 있던 도시는 중요한 교역소로 발전하였으나, 230년부터 로마시대가 끝난 476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을 견디다가 요새는 튜턴족의 손에 넘어갔다.

• 중세 초기
로마 시대에 지은 건물은 철거되지 않고 계속 사용되면서 용도가 점차 변하였다. 레겐스부르크는 바이에른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6세기부터는 로마의 요새, 알터 코른마르크트(Alter Kornmarkt) 북동쪽 모퉁이에 저택을 소유한 아길로핑거(Agilulfinger) 대공들의 통치를 받았다. 739년에 레겐스부르크는 옛 바이에른의 영구 주교구 네 곳 중 하나가 되었다. 901년에는 카롤링거의 마지막 왕인 ‘어린이왕 루도비쿠스(Louis the Child)’가 이곳에서 마지막 제국의회를 개최하였다.

• 중세 후기
계속되는 권력 싸움에서도 레겐스부르크의 중요성은 점차 커졌다. 레겐스부르크는 10세기~13세기에 왕족의 체류가 빈번하였는데, 그중에는 폴란드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966년 미에스코 1세(Miesko I)의 세례가 있었다. 11세기에 바이에른은 왕족의 영토가 되었다가, 벨프 왕조 시대인 1096년에는 다시금 대공들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139년에 레오폴드 4세가 바이에른의 공작령을 인계 받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게 된 레겐스부르크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 자유 제국도시
12세기 내내 레겐스부르크는 외부인의 통치를 받았으며, 주교와 대공 간의 권력 싸움 또한 일어났다. 레겐스부르크 시민들은 슈바벤의 필립 왕(King Philip of Swabia, 1198~1208)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도시 공동체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245년에 프리드리히 2세 황제는 레겐스부르크 시 법령의 설치와 시의회, 의장, 관리의 선출을 위한 법적 기반을 다졌다. 주요 교역로들의 교차점에 위치한 레겐스부르크는 동부중앙유럽과 발칸 반도와의 교역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북부 이탈리아와 교류를 발전시켰다. 15세기에는 뉘른베르크(Nuremberg),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울름(Ulm) 등 성장하는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 15세기
1499년에는 긴 협상 과정 끝에 레겐스부르크를 통치할 왕족을 황제가 임명하였다. 최초 통치자는 모든 중요 행정 사안의 지침이 될 제국정부 규정을 마련하였다. 1514년에는 도시 헌법에 따라 내부·외부 시의회가 설립되었다. 이 헌법은 다소 개정되기는 하였지만 1802년까지 법적 강제력을 지녔다.

• 16세기~18세기
1542년 10월 14일~15일에는 도미니크회 교회의 설교를 시작으로 프로테스탄트가 레겐스부르크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시의회는 그러한 흐름을 저지하려 하였지만 시민들은 빠르게 이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였다. 30년 전쟁 동안 레겐스부르크는 요새 도시의 기능을 하였다. 레겐스부르크와 바이에른 주 사이에 격렬한 마찰이 있었고, 레겐스부르크는 약탈의 고초를 겪었다. 1633년에는 스웨덴의 포위 공격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전쟁이 끝나고 1663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 1806년까지 몇 번 예외를 제외하고 레겐스부르크에서 제국의회가 개최됐다.

• 19세기
레겐스부르크는 나폴레옹 전쟁 중에 폭격을 당하였다. 1809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평화 협정이 체결된 뒤, 바이에른이 레겐스부르크의 소유권을 요구하였고, 레겐스부르크는 1810년에 바이에른의 지방 도시가 되었다. 파괴된 건물은 현재 재건축되었다. 1842년 발할라(Walhalla) 신전 준공 후 내부가 바로크 양식이었던 대성당이 고딕 양식으로 개조되었고, 고딕 양식의 첨탑이 달린 서쪽 탑들이 완공되었다. 레겐스부르크의 범위는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1878년에는 도시를 둘러싼 중세 시대의 벽 대부분이 철거되었다.

• 20세기
1930대에는 레겐스부르크 시에 산업체가 들어섰지만, 중세 도시 지역의 바깥에 있었다. 구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도 무사하여, 현재 독일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역사 도시로 남아 있다. 도시의 인구는 1871년 29,000명에서 1914년 53,00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민의 물결로 147,000명으로 늘어났다. 1950년대에 레겐스부르크의 복구와 개선 작업이 실시되었다. 역사 지역의 보호는 1973년~1975년 도시계획법 안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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