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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Old and New Towns of Edinburgh]

  • 에든버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 제목 : 에든버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에든버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상세정보

  • 국가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위치 스코틀랜드(Scotland)|||로티안 주(Lothian Region)
  • 좌표 N55 57 0|||W3 13 0
  • 등재연도 1995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신 시가지는 지속적으로 계획·확장되었으며 수준 높은 건축물을 건축함으로써 스코틀랜드와 그밖에 지역의 도시 건축에 있어 기준이 되었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 전역에 도시 건축과 도시계획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준 (ⅳ) :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는 유럽에서 도시계획에 있어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며 이는 인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내적으로는 왕궁과 수도원의 중세도시를 방어하는 성벽과 구시가지의 작은 토지를 유기적으로 개발하였다. 18세기~19세기 동안 위대한 계몽주의적 계획에 따라 신도시 확장함으로써, 도시화된 환경에서 독특한 바로니얼 스타일의 건축물을 적용하면서 19세기에 구 시가지를 부흥시키고 재발견하게 되었다.

요약
에든버러는 15세기 이래로 스코틀랜드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뚜렷하게 두 지역으로 분리되는데, 중세의 요새가 있는 구(舊) 시가지 지역과 신고전주의의 신(新) 시가지 지역이다. 신시가지는 18세기부터 성장하여 유럽의 도시 계획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건축물도 많지만 두 역사 지역이 서로 대조와 조화를 이루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서, 독특하고 개성 있는 도시가 되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에든버러가 정착지가 된 기원은 에든버러의 캐슬 록이 요새화되어 있었던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 시대 초기에는 캐슬 록이 왕궁으로 쓰였다. 성장한 정착지를 1125년 경 데이비드 1세가 왕실 자치 도시로 만들었다. 이때 근처에 홀리루드 수도원도 건설했다. 1140년경 건설되었던 캐넌게이트 자치도시는 오랫동안 에든버러에 합병되어 있었다. 새로운 국가의 계획에 따라 정치적·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던 12세기에는 새롭게 공인된 도시들 중 하나였지만, 15세기 후반에는 스코틀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임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적 상징이었다.

구 시가지는 바위 위에 있는 성에서부터 홀리루드 중세 사원과 왕궁까지 뻗어 있는 넓은 주 도로를 따라 성장했다. 15세기부터 도시를 벽으로 둘러쌌다. 도시는 1544년에 영국의 침입으로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초기 건물 대부분은 이 사건 이후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교역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17세기 초 에든버러 상인들은 국가적인 많은 부를 집중하여 축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생겨났다. 귀족들도 이 시기 수준 높은 타운하우스를 지어 건축의 질을 높였다. 16세기 초부터 건물 건축 조건은 길드의 조합장(Dean of Guild)이 통제했다. 예를 들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모든 지붕은 1621년부터 타일이나 슬레이트를 써야 했는데 1674년에는 건물 파사드(facade)에 까지 확대했다. 그 이후에는 석재를 사용해야 했다.

19세기 말에는 신 시가지가 성장하면서 구 시가지는 점차 위축되었다. 1892년에 패트릭 게데스 경(Sir Patrick Geddes)은 하이스트리트를 ‘화려한 옥스퍼드의 하이스트리트 및 주변지역과 그 나름대로 비견할 만한 대학 거리와 도시’로 바꾸면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을 대학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며 이로서 도시를 다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 계획은 설비가 아직 남아 있는 옛날 건물을 재사용하는 것이었으며, 게데스는 이 계획에 따라 론마켓(Lawnmarket)에 있는 많은 건물을 복원하는 것을 지휘하였다.

게데스는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기 전에 에든버러를 떠났지만, 게데스가 복원한 건물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 비록 게데스가 계획했던 주거 목적으로 다시 거주하기 위한 하이스트리트에 대한 콘셉트는 파기되었으나, 패트릭 애버크롬비 경(Sir Patrick Abercrombie)은 1949년 계획의 일부로서 더 많은 건물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다.

신 시가지는 귀족들과 상인들을 위한 교외 거주 지역으로 발전했다. 이를 추진하였던 도시, 자선 트러스트(trust, 신탁)와 귀족 토지 소유자들은 이를 오래 지속될 기념물로 보았기 때문에 최고의 재료로 지을 것을 주장했다. 때문에 치장 회반죽 대신에 마름돌 외부 마감을 거의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신 시가지는 사실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7차례의 주요 개발로 완성되었다. 각각은 서로 다르지만 전체 계획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 1767년~1890년경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건설프로그램이었다.

첫 번째 신 시가지는 드러먼드(Drummond) 시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제안서는 1752년에 발표하고 그 다음 해에 의회 법률로 구체화했다. 도시 고가교, 노스브리지로 연결된 구 시가지 북쪽으로 시 토지 개발을 구상했다. 존 애덤과 협의한 후에 다시 그린 직사각형의 배치 계획은 제임스 크레이그의 작품이다. 두 번째 신 시가지는 1801년~1802년에 왕실 건축가인 로버트 리드(Robert Reid)·윌리엄 시발드(William Sibbald)가 계획했고, 첫 번째 신 시가지의 북쪽에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구부러진 테라스 계획을 약간 적용하여 엄격한 직사각형 평면도에서 벗어났다. 1813년 이후 로버트 브라운의 작품인 세 번째 신 시가지는 본질적으로 전단계의 도시 계획과 비슷한 접근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유형은 네 번째 신 시가지부터 바뀌었으며,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가 계획했다. 경관 상 인상적인 그리드 아이언(grid-iron) 대신 건물의 윤곽선, 전망 그리고 나무를 낭만적으로 이용했다. 1882년부터 얼 오브 머리(Earl of Moray)의 토지에 건설한 다섯 번째 신 시가지는 길레스피 그레이엄(Gillespie Graham)이 설계했는데, 마치 통일된 설계처럼 처음 세 신 시가지와 연결되었다. 이 계획은 귀족과 전문직 상류층을 위한 자족적 도시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여섯 번째 신 시가지는 1850년에 리어먼스(Learmonth) 시장의 사유지인 딘(Dean)에 건설되었다. 딘은 1831년~1832년에 토머스 텔퍼드(Thomas Telford)가 설계한 다리로 하구의 다른 쪽 퀸스페리(queensferry)와 연결한 레이스(Leith) 강의 북쪽에 있었다. 마지막 단계의 신 시가지는 그밖에 것들과 함께 지금까지 따로 떨어져 있던 레이번(Raeburn)의 토지에 지었다.

비록 원래 아이디어는 신 시가지를 순수한 교외 주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으나, 사업적인 면에서나 정부로부터나 신 시가지가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이 판명되면서 구 시가지로부터 도시의 이런 요소들을 빠르게 끌어들였다. 그 결과 최고의 공공기념물과 유럽에서 부흥을 보여주는 신고전주의 상업기념물이 있는 지역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과거를 상징하는 기념물들은 칼턴 힐(Calton Hill)에 무리지어 있으며, 이것은 ‘북쪽의 아테네(Athens of the North)’를 짓겠다는 열망을 보여준다.

특징

두 지역의 나란한 배치는 분명하게 두 지역의 유기적 도시 계획을 표현하고 있다. 중세의 구 시가지와 조지 왕조에 설계한 신 시가지는 유럽에서 그 어떤 것도 견줄 수 없는 명료한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풍경의 분수령인 월터 스콧 경(Sir Walter Scott)의 웨이벌리 계곡(Waverley Valley)의 ‘위대한 지역(great area)’을 도시 구름다리인 노스브리지(North Bridge)와 마운드(Mound)가 가로질러서 연결하고 있다. 두 지역으로 나누어지는 병렬 배치는 탁월한 도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각 지역은 역사적·건축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구 시가지는 홀리루드 궁전(Palace of Holyrood)으로 내려가는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성에서부터 높은 산마루를 따라서 뻗어 있다. 구 시가지의 형성은 캐넌게이트(Canongate)의 도시 토지 보유권(burgage, 화폐 지대를 물고 봉건 영주에게서 얻은 토지 보유권) 지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캐넌게이트는 홀리루드 사원(Abbey of Holyrood)에 종속된 ‘대수도원 자치구(abbatial burgh)’로 설립된 지역이다.

그리고 좁은 ‘토프(toft)’ 위에 전통적인 건축물 높이의 건물이 있다. 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면서 극적이고 튼튼하며 인상적인 아파트들이 골목길이나 클로즈(한쪽 끝이 막힌 거리)로 나누어진 지역에 건축되어 있다. 16~17세기에 지은 상인과 귀족의 집도 많이 있다. 그중에는 17세기 초에 6층 높이의 복원된 글래드스톤스 랜드(Gladstone’s Land) 같은 맨션하우스와 캐넌게이트 톨부스(Canongate Tolbooth)와 세인트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과 같은 중요한 초기 공공건물도 있다.

구 시가지는 약간 개조된 중세의 ‘생선뼈’ 같은 거리 모양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 시가지에서 가장 넓고 가장 긴 거리인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가 등뼈를 형성하고 여기서 갈라져 나온 좁은 클로즈, 골목길, 막다른 길이 생선 가시 같은 모양으로 있다. 이 중세도시는 하이스트리트의 폭, 거기에 줄지어 선 건물들의 높이, 그리고 건물 사이의 작은 틈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신 시가지는 1767년~1890년 사이에 구 시가지 북쪽으로 빙하 평원에 새롭게 7개의 새로운 도시로 건설한 것이다. 신 시가지에는 존과 로버트 애덤(John and Robert Adam), 윌리엄 체임버스 경(Sir William Chambers),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를 포함한 유명 건축가들이 연합하여 건축한 건축물들이 보기 드물게 집중되어 있다.

이들 건축물들은 마름돌로 치장한 건물 외관의 건축물로 세계 수준의 신고전주의 건축물로서 도시 안에서 명확하게 그 윤곽을 구분할 수 있다. 사적 공간과 개방된 공공 공간이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설계한 정원을 조성하여, 넓은 녹지와 통합된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녹지의 면적은 상당히 넓으며 훌륭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사실상 거의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유럽 신고전주의 부흥을 상징하는 최고의 공공 기념물과 상업 기념물들 중 일부는 1437년 이후부터 오랫동안 스코틀랜드의 수도로서의 도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 기념물들은 유럽 본토와 문화적·정치적으로 긴밀한 관련이 있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학문·사상의 중심지였음을 보여 준다. 맨 처음에 만든 신 시가지에서 계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계획과 수준 높은 건축물들은 스코틀랜드와 그 밖의 지역에 있어 건축학적 기준이 되었으며, 전 유럽의 도시 건축·도시 설계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 양 쪽에 있는 주요 건물들은 계획적으로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고, 신 시가지와 결합한 구 시가지의 극적인 지형 덕분에 전망과 파노라마가 볼 만하다. 이로서 상징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구 시가지를 재개발하고 복원하였으며 독특한 바로니얼 양식(Baronial style, 스코틀랜드 귀족 양식 건축) 건물을 적용하여 도시 보존 정책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건물·공간의 중요성을 지닌 에든버러는 비슷한 가치를 지닌 여러 역사 도시들보다 훼손되지 않고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참고번호
728
본문

에든버러의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는 중세 시대의 유기적 발전과 18세기, 19세기의 도시 계획이 놀랍도록 조화를 이룬 곳이다. 신 시가지의 지속적인 확장과 수준 높은 건축물은 스코틀랜드와 그밖에 지역의 기준이 되었다. 에든버러는 15세기 이후로 스코틀랜드의 수도였고,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두 지역으로 구분한다. 12세기에 데이비드 1세가 지은 중세 요새가 두드러진 구 시가지와 18세기부터 유럽 도시계획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신고전주의 신 시가지로 나뉜다.

구 시가지에는 중세의 건물들이 있다. 14세기에 영국인들에게 대항하는 동안 중세 군사 요새는 파괴되었지만 안에 있던 맬컴 3세가 지은 세인트 마거릿 예배당만은 파괴되지 않고 남았다. 캐슬 록(Castle Rock)은 톨부스의 성요한 교회의 신고딕 양식 탑과 세인트자일스 대성당의 탑과 함께 도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1556년, 궁전에서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와 매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제임스 1세가 태어났다.

신 시가지 건설은 1752년에 건축가 존 애덤과 제임스 크레이그(James Craig)의 계획으로 시작되었는데, 프린스 스트리트(Prince’Street)에 거주 기능과 상업 지역이 있는 직사각형 평면 계획이었다. 1789년에 로버트 애덤은 에든버러 대학교의 건물인 올드 칼리지(Old College)를 계획했다. 에든버러 대학은 윌리엄 플레이페어가 완성했다. 그리고 로완드 앤더슨 경(Sir Rowand Anderson)이 1879년에 윤곽을 넓혀 확장했다. 도시는 그 후에 북쪽으로 계속 확대되었다. 1822년에 길레스피 그레이엄(Gillespie Graham)은 중요한 건물이 많이 있는 각각의 두 대조적인 역사 지역을 화합시켰고, 이로써 도시는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많은 주요 사건들의 무대가 된 홀리루드 하우스는 본래 홀리루드 수도원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제임스 4세가 이곳을 왕실 저택으로 바꾸었고, 현재는 스코틀랜드에서 여왕이 공식적으로 머무는 장소이다. 캐넌게이트 톨부스는 아주 흥미로운 16세기 건물인데, 이전 캐넌게이트 자치 도시의 사법부가 있었다. 인상적인 뾰족탑과 시계가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에든버러에는 박물관과 화랑이 많이 있다. 왕립 박물관은 인상 깊은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공공건물(palazzo)과 같은 외관이며 수정궁(Crystal Palace) 원리로 설계된 나무로 된 골이 있는 구조인 큰 홀이 있다. 수정궁에는 비슷한 설계의 더 작은 홀이 같이 있다. 또 에든버러 한가운데 있는 스코틀랜드의 주요 박물관 두 곳은 국제적 소장품이 풍부하다. 신고전주의 미술관(neoclassical Art Gallery)·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of Scotland)은 이오니아식 주랑 현관이 강조되어 있으며 얕은 벽기둥이 붙은 블라인드 벽이 있다. 이 두 건물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건물로 쓰려고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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