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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더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Mountain Resort and its Outlying Temples, Chengde]

  • 청더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 제목 : 청더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 설명 : © UNESCO / Author : WEN Jia
청더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허베이성(河北省, Hebei Province)|||청더시(承徳市, Chengde City)
  • 좌표 N40 59 12.984|||E117 56 17.988
  • 등재연도 1994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피서 산장과 주변 사원의 경치는 자연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로, 지금까지도 경관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준 (ⅳ) : 피서 산장과 주변 사원은 중국 봉건사회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 준다.

요약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 있는 피서산장(避暑山莊)은 청나라 황제의 여름궁전으로 1703년~1792년에 조성되었다. 이곳은 행정 업무 및 의전용 건물이자 거대한 규모의 별궁이다. 다양한 건축 양식의 사원과 황제의 정원은 주변 호수와 목초지, 숲의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미학적 관심 외에도 피서산장은 중국 봉건 사회의 마지막 발전상을 보여 주는 진기한 역사적 자취이기도 하다.
목차
역사적 배경

청나라는 몽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그 지역의 국경 방어를 굳건히 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중 하나가 베이징에서 350㎞ 북쪽에 있는 몽골 초원에 사냥터인 목난위장(木蘭圍場)을 만드는 것이었다. 황제는 매년 사냥할 때마다 가족과 후궁은 물론, 관료들과 왕의 친위부대인 팔기병(八旗兵)까지 대동했다. 이 수천 명의 수행단을 수용하기 위해서 황제의 여름궁전[熱河行宮]이라고 알려진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 사이에 21개의 임시 별궁을 세워야 했다.

세 명의 황제(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재위하는 동안 진행된 건축은 1703년에 착공하여 1792년에 끝났다. 이 작업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1703년~1714년의 호수 구역 개발 단계에서는 별궁과 정자, 궁전의 담을 짓기 위해 작은 인공섬과 제방을 건설했다. 이어 1741년~1754년에는 나머지 궁전과 전망 좋은 정원을 추가로 조성했고, 1713년~1780년에는 사원들도 지었다. 하지만 1911년 청나라가 붕괴됨에 따라 이 휴양지도 방치되었고, 복원 사업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에 진행되었다.

참고번호
703
본문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의 경치는 자연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로, 지금까지도 경관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피서산장은 청(1636∼1912) 황제가 머물던 정원 형태의 궁전이며, 사회·정치·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더욱이 이곳은 중국 봉건사회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 준다. 피서산장은 궁전 구역과 자연경관 구역(호수, 평원, 산악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00,200㎡에 달하는 궁전 구역은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청 황제가 기거하면서 행정 사무를 보고 의식을 치르는 장소였다.

이 구역은 정궁(正宮), 송학재(松鶴齋)·만예송풍(萬叡松風)·동궁(東宮)을 포함한 네 그룹의 건물들로 구성되는데, 건물들은 중국 전통의 간결한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황제의 근엄함도 갖추고 있다. 남동쪽에 위치한 496,000㎡의 호수 구역은 중국의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중국 정원 양식에 맞게끔 설계되었다. 이 구역에는 양쯔강(揚子江) 남부 지역과 비슷한 경치를 만들어내는 8개의 호수와 여러 건물이 있다.

북쪽으로 펼쳐진 평원 구역은 607,000㎡ 규모이며, 서쪽의 초원과 동쪽의 산림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초원 구역에서는 말의 경주가 열렸고, 나머지는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정치적 접대소 역할을 했다. 이곳의 이름은 ‘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의 만수원(萬樹園)이다. 이 산림의 서쪽 구역에는 황제의 가장 큰 장서각 중 하나인 문진각(文津閣)이 있고, 또 다른 여러 건물들은 풍경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산악 구역에는 400,000㎡가 넘는 광대한 부지와 4개의 큰 협곡(정자, 송림, 예서, 송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역에 세워졌던 전당과 정자, 사원, 수도원 가운데 지금은 40여 채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피서산장 주변의 사원은 몽골인과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과 국경지역 통치를 강화하려는 방안으로 세워졌다. 12개의 라마교 사원들은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그 가운데 보녕사(普寧寺), 보우사(普佑寺), 안원묘(安遠廟), 보락사(普樂寺)는 건축학적으로 한족 양식과 티베트 양식의 조합이라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사원의 앞면은 한족 양식이지만 뒷면은 티베트 양식으로 되어 있다. 보락사의 상락왕불(上樂王佛)과 보녕사의 관음상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의 기교와 예술성은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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