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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이산 [Mount Wutai]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우타이산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 좌표 N39 1 50|||E113 33 48
  • 등재연도 2009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전체적으로 불교 사찰 경관을 지닌 우타이 산에 있는 불교 건축물, 조각상, 탑들은 이 산이 불교 성지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심오한 사상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 성지에는 네팔이나 몽골에서 온 사상들을 반영하는 사원이 생겼으며, 이는 중국 전역의 불교 사원에 영향을 주었다.

    기준 (ⅲ) : 우타이 산은 사원과 함께 발전한 종교 성지의 문화적 전통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이다. 아시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성지순례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런 문화적 전통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기준 (ⅳ) : 우타이 산에 있는 건축물과 자연경관은 불교의 신성함을 기원하는 건축물, 석상, 그림, 비문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는 1,000년에 걸친 황실 후원의 특별한 효과를 잘 보여 준다.

    기준(ⅵ) : 우타이 산은 자연과 불교문화의 융합, 자연에 대한 종교적 믿음,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중국 철학 사상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우타이산의 지대한 영향력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간쑤성(甘肅省), 산시성, 허베이성(河北省), 광둥성(廣東省)에도 우타이산과 비슷한 이름의 산이 있다.

요약
우타이산(五臺山)은 불교 명산으로, 평평한 평지 형태의 봉우리가 5개 있다. 우타이 산에는 포광사(佛光寺)의 동쪽 본전을 비롯한 41개의 사원이 있다. 포광사 본전은 당나라 때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경내에는 실물 크기의 점토 조각이 있다. 명나라 때 다시 지어진 수상사(殊像寺)에는 500개나 되는 대규모 조각상이 있는데, 마치 3차원의 산수화처럼 불교사를 펼쳐 보인다.

전체적으로 유적의 건물들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에서 불교 사원 건축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사원 건축이 궁궐 건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중국 북부에서 가장 높은 우타이 산은 글자 그대로 ‘넓은 대(臺)가 5개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나무 한 그루 없는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우타이 산의 사원은 1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건축된 것이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우타이 산은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하나이며, 문수보살 신앙의 세계적 중심지이다. 당나라 때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포광사의 동쪽 본전이 있으며, 경내에는 실물 크기의 점토 조각이 있다. 수상사에는 500개나 되는 대규모 조각상이 있는데, 마치 3차원의 산수화처럼 불교 역사를 펼쳐 보여 준다.

사원들은 산의 풍경과 일체를 이룬다. 높은 산봉우리, 만년설, 쭉쭉 뻗은 소나무, 전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들과 무성한 초원으로 덮인 숲이 이루는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당나라 이래로 여러 예술가들은 둔황(敦煌)의 석굴과 함께 칭송해 왔다. 2,000년을 이어 온 사원 건물들은 사원들의 군집을 만들었고, 중국과 일부 아시아 지역의 궁전 건설에 불교 건축 방법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북위(北魏, 471~499) 시대부터 1,000년 동안 황제 9명이 보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18번의 성지 순례를 했으며, 석비와 비문을 남겨 기념했다. 황제로 즉위하면 우타이산의 5개 봉우리를 성지 순례하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황제와 학자들이 모은 대규모 장서와 더불어 우타이 산에 있는 사원들은 불교문화의 중요한 보고이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온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우타이산 유적 보호를 위해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2005~2025)’과 ‘우타이산 국립공원 종합계획(1987년 제정, 2005년 개정)’의 두 관리 지침은 우타이 지방 행정부의 일부인 세계유산 보호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보호와 관리 지침 시행을 책임지고 있다.

유산면적
18,415㏊
완충지역
42,312㏊
참고번호
1279
본문

명나라 시대에 불교의 고승인 진성(真诚)이 쓴 『청량산의 기록(the Records of Mount Qingliang)』에 따르면, 서기 68년에 한나라 황제의 명으로 우타이 산에 첫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인도의 고승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인도의 승려들은 우타이 산의 형태가 석가모니가 법화경(法華經)을 강의했던 영취산(靈鷲山, 인도의 라즈기르)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남북조 시대에 황제들이 우타이산 5개 봉우리로 성지 순례를 했고 산 곳곳에 200개 이상의 절과 사원들이 세워지며 번성했다.

초기에 우타이 산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418년에 만들어진 경전인 『보살의 삶(the Residence of Bodhisattva)』 45장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청량산(淸凉山)에 살았는데 이 산이 우타이 산이라고 추측된다 우타이 산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였다. 당의 황제들은 황실의 칙령으로 건물을 짓고,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또 지도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우타이 산에 있는 사원을 관리하고자 나라에서 승려과 여승들을 모아 주었다. 절의 숫자는 360개까지 늘어났으며, 인도,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 한국, 일본에서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동남아시아로 문수보살 신앙이 퍼져 나갔다.

송나라와 원나라 때에는 절의 수가 70개 정도로 줄어들었으나 포광사의 문수보살 법전을 포함한 새 법전이 지어졌다. 티베트 불교가 우타이 산에 퍼져 중국 불교와 조화롭게 공존하기도 했다. 명나라 시대에는 다시 한 번 불교가 번성했으며, 타위안사 사리탑(大白塔)과 정토 사원 등 많은 사원들이 재건축되었고, 사원의 숫자는 다시 104개까지 늘어났다. 청의 황제들은 이웃해 있는 몽골과 인종적 결속을 표하고, 국경을 강화하고, 사회의 안정을 극대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우타이 산으로 여러 번 성지 순례를 갔다. 이때 티베트 라마 사원 25개가 생겨 중국 불교 사원 97개와 함께 협력했다.

청 왕조 후기부터 중화민국 초기에는 사회가 불안정하여 우타이 산에 있는 사원의 수가 줄어들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건물들을 되살리고 보호하는 노력을 했다. 지금은 5개의 산봉우리 반경 바깥에 21개, 안쪽에 47개로 모두 68개의 사원이 있다. 그리고 7개의 티베트 불교 사원, 40개의 중국 불교 사원, 5개의 이사(여승이 사는 곳), 1개의 공공 사찰이 있다. 1950년대까지 사원들 뒤에 있는 북서쪽 경사 지대에 작은 우타이 미루나무, 중국 소나무, 가문비나무, 작은 야생 관목들로 조림 사업을 했다.

동쪽에는 칭수이 강(淸水河), 남쪽에는 승려들과 지역 주민들이 곡물을 재배하는 밭이 있다. 1950년대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북서쪽에 있던 많은 숲이 경작지로 변했지만, 고도가 너무 높아서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농사를 지었고, 대부분 경작지는 버려져 있어서 땅이 침식되었다. 1990년대 말에 생태계를 보호하고 농토를 다시 산림으로 바꾸는 국가 정책에 따라 정부는 소나무를 심는 조림 사업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중국 토종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지역의 소규모 토종 관목도 포함된다. 지난 5년 동안, 타이화이전(臺懷鎭)에 사는 많은 지역민들이 새로 만든 진강구(金剛窟) 마을로 이전했는데, 16㎞ 떨어진 이 마을에는 새로운 주거 시설과 관광 시설이 들어섰다. 2020년에 이 계획이 끝나면 동좡(冬裝)을 비롯한 다른 마을에서 395가구가 이주해 올 것이며, 호텔 36개와 상점 108개가 들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