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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모가오 굴 [Mogao Caves]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둔황 모가오 굴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간쑤성(甘肅省)|||둔황현(敦煌縣) 남동쪽 25㎞ 지점의 밍사산(鳴沙山) 동쪽 끝단(Dunhuang County, Gansu Province. At the eastern foot of Mount Mingsha, 25 kilometres southeast of the County seat)
  • 좌표 N40 7 59.988|||E94 49 0.012
  • 등재연도 1987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실크로드의 전략적 지점에 위치한 모가오 굴 492개 동굴과 석굴 사원은 불교 미술의 1,000년 역사를 보여 주는 입상과 벽화로 유명하다.

    기준 (ⅱ) : 모가오 굴은 북위(北魏, 386~534)에서부터 원(元, 1276~1368)의 몽골 왕조에 이르는 1,000년 동안 중 와국,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예술적인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준 (ⅲ) : 모가오 굴의 벽화는 수(隋)·당(唐)·송(宋)나라에 이르는 고대 중국 문명의 이례적인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 492개의 굴 가운데 가장 오래된 302굴은 수레를 끄는 낙타를 묘사하는 벽화 등 실크로드 예술의 주제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61굴 안의 우타이산(五臺山) 축제 모습은 지역 기병들의 위치를 보여 주는 지도 제작 간행본의 예로서 산· 강·도시·사원·도로·대상 등 모든 것이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기준 (ⅳ) : 천불상 동굴은 불교 석굴 사원의 탁월한 예이다.

    기준 (ⅴ) :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불교 승려가 사용했던 모가오의 바위 동굴에 있는 예술은 전통적인 수도원 정착지의 사례로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유적은 둔황 문화유물협회에서 관리하였다.

    기준 (ⅵ) : 수세기 동안 실크로드의 두 갈래가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는 둔황 오아시스는 중계무역 지점으로서의 특권을 누렸다. 모가 오굴은 동서 문물 교류의 역사 뿐 아니라 불교의 아시아 전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에서는 한자·티베트어·산스크리트어·고대 터키어·위구르어와 심지어 히브리어로도 쓰인 필사본도 나왔다.

요약
둔황 모가오 굴(莫高窟)은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의 밍사산(鳴沙山) 동쪽 끝단에 있는 불교 유적이다. 무역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모가오 굴은 종교·문화·사상 면에서 큰 영향력을 지녔으며, 이곳의 492개 방과 석굴 사원은 불교 미술의 1,0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입상과 벽화로 유명하다.
목차
참고번호
440
본문

모가오의 동굴군에는 5층으로 세워진 암자와 사원으로 구성된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암벽에 새긴 뒤 진흙으로 덮고 채색한 2,000점 이상의 조각, 그리고 약 45,000㎢의 벽화 등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볼 수 있다. 특히 벽화 중 다수는 중국 미술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간쑤성 북서쪽 끝의 사막 지대에 모가오의 절벽이 있으며, 이는 밍사산의 동쪽 모서리가 된다. 이들 절벽은 둔황 오아시스로부터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다촨허(大泉河) 위로 우뚝 솟아 있다. 절벽 안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492개의 작은 굴과 바위로 만들어진 성역이 1,600m 이상 계속되면서 유명한 천불동(千佛洞, 1,000부처의 동굴)을 이룬다. 이들 동굴의 역사는 중국 원정대가 몽골 초원 및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과 싸운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기원전 139년~기원전 126년, 장건(張騫)의 고대국가 박트리아(Bactria) 원정이 완벽하게 실패한 후, 북방 경계지역의 방어를 위해 만리장성이 건설되었다. 기원전 117년경에는 둔황 지역과 유사한 초소를 세웠는데, 그 수는 2년 후 2배로 증가했다. 지중해와 중국을 연결한 실크로드의 중심부에 있는 허시(河西) 길목의 통로와 오아시스 길의 통제는 중국 통치자들과 유목민들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였다.

둔황은 한때이긴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중 왕국(Middle Empire)과 단정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모든 아시아인들이 한께 섞이는 국제적인 장소이기도 하였다. 카라반 오아시스 지역에서는 많은 외국 종교들이 나타났으며, 불교·네스토리우스교·이슬람교 신자들을 볼 수 있었다. 비문에 따르면, 366년경 처음으로 불교 승려들이 모가오 굴에서 수도를 시작했으며, 기원후 444년 불교는 유일한 국교로 공식 인정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석굴과 사원은 지역이 쇠퇴하기 시작한 5세기~14세기에 건설되었다. 동굴 벽화와 프레스코화에는 중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당나라가 실크로드의 통제를 강화했을 때인 7세기경에 있었던 몇몇 중요한 순간들을 반영하면서 종교적 테마를 표현한 것이다.

첫 번째 탄트라(Tantric)의 주제는 티베트 사람들이 둔황 지역을 점령했던 690년~851년의 시점을 나타낸다. 당구트(Tanguts)족이 간쑤 지역을 정복한 뒤 서하(西夏, 1036~1227)의 통치 아래 라마교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주제는 더욱 늘어났다. 1036년 유사한 침략이 일어나자 당구트족의 접근을 막기 위해 45,000권의 필사본을 동굴 속에 감추어졌는데, 1900년 모가오 굴을 지키던 도사 왕위안루(王圓籙)가 이를 발견했다. 비록 이 필사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지만, 이런 이례적인 수집품은 아시아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중국의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가오 굴은 동서 문물 교류의 역사 뿐 아니라 불교의 아시아 전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동굴 속에 입상과 벽화는 불교 미술의 1,0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 굴은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여전히 불교 승려들이 사용한 장소였다. 모가오의 바위 예술은 둔황 문화유물협회에서 관리하면서 전통적인 수도원 정착지의 예로서 잘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