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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Mines of Rammelsberg, Historic Town of Goslar and Upper Harz Water Management System]

  •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 제목 :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ia Alberth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 좌표 N51 49 12|||E10 20 24
  • 등재연도 1992년(2008년 부분 수정, 2010년 확장)
  • 등재기준

    기준 (ⅰ) : 람멜스베르크의 광산들, 고슬라 역사지구,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채광 네트워크는 비철금속 채광 및 야금과 관련된 유럽 최대 복합구조물 중 하나이다. 고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이 네트워크는 시토회 수도사들을 필두로 하여, 지역 영주들, 고슬라를 중심지로 삼았던 신성로마제국 등의 통제를 받으면서 중세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본 유적은 채광기술 및 산업적 물 관리 분야에서 인간의 창조성을 보여주는 우수 사례이다.

    기준 (ⅱ) : 람멜스베르크의 광산들, 고슬라 역사지구,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채광 네트워크는 유럽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채광과 물 관리 기술 분야에서 인류의 가치들이 오고간 흔적을 보여준다. 광물학자인 아그리콜라는 이 네트워크로부터 영감을 받아 르네상스 시대의 야금과 채광에 관한 권위 있는 저작인 『데 레 메탈리카』를 저술하였다.

    기준 (ⅳ) : 람멜스베르크의 광산들, 고슬라 역사지구,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채광 네트워크는 채광 기술, 비철금속의 야금, 하수처리와 수력을 위한 물 관리 등의 분야에 있어 포괄적이며 우수한 기술적 유적이다. 그 공간적 범위 및 운용 기간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네트워크에 속한 발켄리트의 수도원 유적이라든가 고슬라 역사지구의 경관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행정적·상업적 조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요약
람멜스베르크(Rammelsberg) 광산과 고슬라 시(Goslar town)의 남쪽에 위치한 ‘오베르하르츠(Upper Harz, Oberharz) 물 관리 시스템’은 비철금속 제작용 광석의 채굴에 활용할 목적으로 8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개발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중세에 시토회 수도사들에 의해 최초 건설된 후, 16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크게 발달하였다. 여기에는 매우 복잡하고도 완벽하게 조직된 인공연못, 작은 수로, 터널, 지하 하수시설 등이 포함된다. 채광 및 야금 작업을 위해 수력을 활용하는 이 시스템은 서구 세계의 혁신적 채광 기술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하르츠 지역 람멜스베르크 산의 구리, 납, 주석 광산에서는 11세기부터 1980년대까지 채굴 작업이 행해져 왔다. 광산의 지상, 지하 유적들은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채광 설비 및 작업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발켄리트(Walkenried)의 시토 수도원 유적과 오베르하르츠의 광산은 비철금속 광석(은·납·주석·구리 등)을 체계적으로 채굴한 유럽에서 최초의 지역이며 동시에 채굴을 위한 물 관리 시스템을 유럽에서 최초로 개발한 곳이기도 하다.

람멜스베르크의 광산 인근에 있는 고슬라 시는 람멜스베르크의 풍부한 광맥 덕분에 한자동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세기~12세기까지 고슬라 시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연원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슬라 시의 역사적 중심부에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만들어진 약 1,500개의 나무 골조 주택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다. 오베르하르츠 물 관리 시스템은 광활한 지역에 수많은 인공 연못 및 도랑, 하수시설, 지하 수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중세부터 20세기 말까지 물을 관리하고 적절히 사용하였으며, 특히 이 유산은 물 관리 시스템이 채광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배경

하르츠 산지와 람멜스베르크는 노천 금속 광맥으로 유명하며 이 광맥은 청동시대부터 개발되었다. 금속 광맥은 중세 초기에 다시 알려지면서 개발되었는데, 왕자들은 이 광산을 관리하면서 풍요를 누렸다. 하르츠의 금속 생산에 관한 역사는 1127년에 프랑스에서 온 시토 회 수도사들이 발켄리트 수도원을 건축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시토 회 수도사들은 광산 개발에 일찍이 관심을 갖고 중세 유럽의 금속 생산과 발전에 기여하여 그 명성이 높았다. 광석을 뽑아내는 용광로의 생산을 개량화하기 위해 13세기 초에 하르츠에 있는 수도사들은 수차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부에 위치한 판델바크(Pandelbach) 계곡에 있는 4곳의 작은 연못 단지를 보면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물 관리 시스템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지하 수력에 대한 기본 시스템이 있었는데 아헤투크트(Aghetucht)의 지하 배수로의 경우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클로스탈(Clausthal)에 있는 바네디크(Banedik) 연못 또한 13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배수펌프를 설치하기 위해 갱도에 설치된 배수장치를 만들고 수차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말 수도원은 절정기를 맞이하여 이곳에는 수도사 80명과 보조수사가 180명이나 살았다. 14세기 중엽, 중세의 위기가 오기까지 그들은 지역의 광산 개발을 관리하고 지휘했다. 중세의 위기는 시토회 수도사들을 결정적으로 파멸에 이르게 하면서 하르츠의 광산 활동도 장기적으로 정지되었다. 16세기 은전이 필요함에 따라 하르츠에서는 광산 채굴이 다시 가동되었다. 1521년부터는 그루브 삼손(Grube Samson)에서, 1544년에는 클로스탈에서 새로운 광산이 발굴되면서 수력 시스템도 새롭게 개선하였다.

광산 발굴에 따른 이익을 가지고 광산 지역을 지배하던 왕자들은 그 개발 특권을 베르그프레이하이튼(Bergfreiheiten)에 사는 광산 거주자들에게 주었다. 17세기에는 왕자들의 뒤를 이어 이곳을 지배한 후계자들 역시 이 체제를 유지하였다. 지역의 광산 개발의 규모는 확대되었다. 물 관리 시스템과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은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1524년~1561년 사이에는 17개의 배수장치를 갖춘 지하통로가 건설되었다. 하르츠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비철금속 개발 지역이 되었다. 특히 금융 상업 재벌가인 푸거(Fugger) 가(家)는 유럽 시장에서 구리 상업을 발전시키고 관리하였는데 하르츠 지역이 그 주요한 기지였다.

이 지역의 광산채굴과 물 관리 시스템의 예들은 광산학자 G.아그리콜라(Agricola, 1494~1555)의 광산학 저서 『데 레 메탈리카(De re metallica, 금속에 관하여)』에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광산과 야금술에 대한 지식 참고서이다. 이후에도 광산 단지와 물관리 시스템은 체계적으로 개선되었다. 예를 들어 17세기부터는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래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더 이상 말(馬)을 이용하지 않았다. 기술적 혁신과 풍부한 경험으로 광석 생산 기술은 향상되었으며, 새로운 광산들을 발굴함으로써 생산량은 상당히 증가하였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독일 니더작센 주는 1977년에 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을 기술적 기념물로 분류하였다. 1978년 기념물 보호법(Niedersächsischen Denkmalschutzgesetz)은 본 시스템의 건축적 요소와 산업적 구조를 보호하고 있다. 개별적 수준에서 보자면, 본 유적을 구성하는 부분들은 각기 적합한 관리 구조와 능력 있는 스태프들을 통해 만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 고슬라 역사 지구에서는 건축적 복구·보존 프로그램이 실시되었으며, 람멜스베르크에서는 홍보센터가 세워져다. 마찬가지로 유적의 확장 영역에 해당되는 하르츠 역시 전반적으로 효과적인 개별 관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 관리 시스템은 ‘하르츠바서베르케(Harzwasserwerke)’라는 기술회사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수도원을 관리하는 재단도 설립되었다. 재단이나 협회, 또는 지역 행정부와 연계된 기관들이 여러 광산, 박물관, 관광지 등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본 연속 유산을 위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라든가 공동 과학 위원회, 또는 그 보존·관리의 이해 관계자들을 한데 모을 상부기관은 없다. 이러한 결점들은 조속히 해소되어야 하며, 특히 관광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본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보존에 대한 미래 전망 등 전반적 비전을 염두에 둔 전체적 관리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유산면적
1,010㏊
완충지역
5,655㏊
참고번호
623ter
본문

람멜스베르크-고슬라(Rammelsberg-Goslar)에는 중앙유럽의 금속생산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유지된 채광·야금용 복합구조물이 있다. 이곳은 수세기 동안 유럽 경제에서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람멜스베르크-고슬라는 유럽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도시-산업 복합구조물로서 전형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르츠 지역의 람멜스베르크는 고슬라에서 남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있으며,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광석 채굴과 은·구리·납·아연·황금 등의 금속을 생산한 곳이다. 문헌에 최초로 람멜스베르크가 언급된 것은 11세기 초였다. 이곳의 풍부한 은 광석 매장량 때문에 헨리 2세 황제는 람멜스베르크 산기슭에 황제 관저를 두었다. 그는 1009년에 이곳에서 첫 번째 제국의회를 개최하였으며, 고슬라 시는 황제 관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고슬라는 한자동맹 지역 중 중요한 역할을 하며 크게 번영을 이루었는데, 이는 1450년에 그 정점에 달했다. 채광, 금속생산, 무역으로 얻은 수입은 특유의 중세 후기의 도시경관 조성에 사용되었는데 이로써 요새, 성당, 공공건물, 광산 사업주의 화려한 저택 등을 건축했으며, 이 건축물들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람멜스베르크 광산 지역의 관리는 1552년에 고슬라에서 브란덴부르크 공작령으로 옮겨졌다가 1866년에 프러시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1988년 광산이 문을 닫게 될 때까지 채광과 야금 작업은 계속되었다.

광산의 유적에는 10세기부터 쌓여온 폐기물과 그 생산 설비들이 남아 있다. 성 요하니스 교회(St Johanniskirche, 970년경), 12세기의 광석 운송로, 라트스티프스터(Rathstiefster) 터널-횡갱(橫坑)도(1150년경), 13세기의 채광 구조물들, 티퍼-율리우스-포르투나투스(Tiefer-Julius-Fortunatus) 터널(1585년), 감독관의 거처(1700년경), 공동 채석장(1768년), 잘 보존되어 있는 지하의 물레바퀴 2개를 포함한 뢰더(Roeder) 터널 시스템(1805년), 오래된 사무용 건물(1902년), 견인로와 수직 갱도 및 기술 장비(1905년), 기른비커 터널 (Gelenbeeker, 1927년), 빈클러(Winkler) 환기용 갱도(1936년), 1935년~1942년까지의 지상 공장 시설, 1878년~1950년까지의 광부들의 거처 등이 있다.

황궁 및 성 울리히(St Ulrich) 왕궁 예배당(1100년경), 프랑켄부르크(Frankenburger) 성당(1130년), 11세기의 황제의 옥좌가 있는 옛 슈티프츠카펠(Stiftskapelle)의 교회 전실(antechurch, 1160년), 시장의 분수대(1200년경), 프랑켄부르크의 광부 마을(1500년경),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광업 사업주용 주택들, 광부 진료소(1537년) 등이 있다. 이 같은 고슬라 시의 다양한 유적을 통해, 고슬라 시의 성장과 20세기까지 유지된 이 지역 광업의 발달을 확인할 수 있다. 고슬라 시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큰 손상을 입지 않은 덕에 역사적 중심부가 온전히 남아 있어, 중세 도시계획으로 건축된 지역 및 산업 건물뿐 아니라 수준 높은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다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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