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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사우이라의 메디나(옛 모가도르) [Medina of Essaouira(formerly Mogador)]

  • 에사우이라의 메디나(옛 모가도르)
  • 제목 : 에사우이라의 메디나(옛 모가도르)
  • 설명 : © UNESCO / Author : Leila Maziz
에사우이라의 메디나(옛 모가도르)

상세정보

  • 국가 모로코(Morocco)
  • 위치 에사우이라 주(Province of Essaouira), 텐시프트 지방(Tensift Region)
  • 좌표 N31 31 0.012|||W9 46 9.984
  • 등재연도 2001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에사우이라는 18세기 중엽의 항구 도시로,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북아프리카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어 요새화된, 탁월하고도 잘 보존된 사례이다.

    기준 (ⅳ) : 17세기 말에 모로코가 세계의 다른 지역에 개방되면서 생말로에 있는 군사공학자 보방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건축가 코르뉘가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를 세밀하게 계획하였다. 이 메디나는 대체로 유럽 도시풍을 유지해 왔다.

요약
에사우이라(Essaouira)는 북아프리카의 환경에 당대 유럽의 축성 원리에 따라 건설된 요새 도시의 뛰어난 사례이다. 이곳은 건설된 이후 지금까지 모로코와 사하라 내륙 지역을 유럽과 세계의 각 지역으로 연결시켰던 국제적으로 주요한 무역항이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에사우이라의 메디나(Medina)는 이전에 모가도르(Mogador)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작은 요새’라는 뜻의 페니키아어 ‘미골(Migol)’에서 유래하였다. 보방 형식(Vauban model)에 영향을 받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18세기 중반 요새 도시의 탁월한 사례이다. 북아프리카의 환경에 당대 유럽의 축성 원리에 따라 건축되었고, 아랍-이슬람 건축과 도시 계획 원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이 도시는 모로코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유럽 및 세계의 다른 지역과 연결하면서 수 세기 동안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도시는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 등 여러 종교를 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베르베르인(Amazigh)·아랍인·아프리카인·유럽인과 같은 다양한 민족 집단이 함께 공존한 것이 입증됨으로써 다문화적 중심지의 전형이기도 하다.

에사우이라의 메디나와 불가분의 관계인 모가도르 군도에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있다. 북아프리카의 다른 메디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만들어진 이 도시는 알라위트 왕조의 왕 시디 모하마드 벤 압달라(Sidi Mohamed Ben Abdallah, 1757~1790)의 작품으로, 그는 자그마한 대서양 연안의 이 도시를 외부 세계에 개방된 왕실 항구이자 모로코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팀북투(Timbuktu) 항으로 알려져 왔던 에사우이라는 18세기 말과 19세기에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의 중요한 대서양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완전성

19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성벽으로 윤곽이 명확해진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유산의 완전성을 위한 모든 필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자연적인 요소(모가도르 군도)와 수준 높은 문화적 요소가 조화로운 유적군을 이룬 이 도시는 현재에도 그 완전성과 독창적이고 특이한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유대인 지구인 멜라(Mellah) 지구의 건물들이 낡아서 완전성에 조금 변화가 있을지라도 그 손상이 유산 전체의 중요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유산의 보호, 보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방 당국과 공공기관들이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보존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진정성

18세기 중엽에 건설된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수리와 재건축 공사에서 현대 재료를 일부 부적절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만주르(manjour)라는 이 지역의 돌을 재료로 사용한 건축 방법과 도시의 구상, 전체적인 개요에 있어서 대체로 진정성을 보존해 왔다. 주변의 바다 너울과 습기에도 불구하고 요새와 도시 구조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에사우이라 유적은 원래 페니키아인들의 무역을 위한 정착지였으며, 뒤이어 크레타인·그리스인·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가도르’라는 초기 이름이 ‘작은 요새’라는 뜻에서 유래했듯이, 1506년에 이 도시는 포르투갈의 요새가 되었지만 곧 버려졌다.

1765년에 건설된 현재의 도시는 모하마드 벤 압달라가 외부 세계에 모로코를 개방하고 유럽과의 상업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항구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생말로에 있는 보방의 방어 시설에 크게 영향을 받은 아비뇽 출신의 축성 측량 전문가 니콜라 테어도르 코르뉘(Nicholas Théodore Cornut)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 결과 그는 스콸라(Sqala, 성채)로 알려진 대포가 설치된 둔치를 만들기 위해 포르투갈 요새의 일부를 해체했으며, 유럽 전통(루시옹 스타일)의 요새가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이곳의 도로를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하였다. 또한 보방을 본떠서 도시 전체에 방어벽을 둘러쳤다.

모하마드 벤 압달라가 이곳을 통치하는 동안 모가도르는 주요한 상업적·재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해상 교역을 통제하기 위해 남쪽 해안을 폐쇄하고, 유럽 무역상들이 남쪽 해안으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사피(Safi)·아가디르(Agadir)·라바트(Rabat)에 있던 유럽 영사들을 강제로 모가도르에 옮겨오도록 함으로써 남쪽의 모든 무역 활동을 이곳으로 집중시켰다.

이 새로운 항구는 모로코의 주요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포함한 다양한 상품을 가져오는 대상(caravans)의 목적지가 되면서 ‘팀북투 항’으로 불렸다. 도시는 별도로 구별된 3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졌고, 성채는 옛 행정 구역이 되었다.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18세기와 20세기 초 사이에 건설되었다. 메디나에는 축을 이루는 2개의 주요 도로가 가로질러 있는데, 하나는 바브 두칼라(Bab Doukalla) 문에서 항구로 뻗어 있고, 다른 하나는 바브 마라케시(Bab Marrakesh) 문에서 바다로 뻗어 있었다. 수크 즈디드(Souk Jdid)라고 알려진 두 도로의 교차로에는 생선, 향신료, 곡물, 잡화를 파는 4개의 시장이 있었다. 도시의 구역들은 각각의 건물과 관련된 부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편 멜라(Mellah)는 유대인 지구였으며, 이 도시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술탄)이 유럽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무역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서 이곳의 유대인 사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경제적·정치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왕실 상인’(Toujjar Es-Sultan)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보호 조치는 기본적으로 역사 기념물과 유적의 목록 작성에 관한 법률, 특히 모로코 유산에 대한 법률 ‘22-80’과 관련된다. 에사우이라 유적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 시당국, 부동산 관련 정부기구인 하부스(Habous), 이스라엘 연맹, 협력 단체와 사적 개인들 사이에 분할되어 있다. 1988년에 도시계획 4001조에 따라 건축이 금지된 유적 도시 주변에 완충지역이 설치되었다. 두 가지의 중요한 보존 및 관리체계가 현재 적용될 최종 단계에 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에사우이라 유적 도시 개발 마스터플랜과 메디나 보호 계획이다.

지역 주민과 공공기관, 관련 분야에서도 메디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인식해 가고 있으며, 에사우이라 도시 기구(The Essaouira Urban Agency)가 신설되어 전반적인 도시 개발, 특히 메디나 개발에 대해 보다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구는 장관급 부서와 동등하게 여러 활동들을 계획하고 조정하며, 기존의 작업장이나 계획한 작업장에서의 집행 상황 및 이행 상황을 감독한다. 건축 유산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지역 주민의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메디나 관리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유산 보호 관련 당국은 메디나 및 에사우이라 도시 전체에 대한 개발 계획의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감독해야 한다.

유산면적
30㏊
완충지역
15㏊
참고번호
753rev
본문

에사우이라는 북아프리카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면서 18세기 말에 유럽식으로 요새화된 항구도시의 탁월하고도 잘 보존된 사례이다. 17세기 말에 모로코가 세계의 다른 지역에 개방되면서 생말로(Saint Malo)에 있는 보방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건축가 코르뉘가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를 세밀하게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 설계에 따라 메디나는 상당한 정도로 유럽 도시의 외양을 유지해 왔다.

18세기에 건설된 이후 20세기 초까지 에사우이라는 모로코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여러 나라의 수많은 영사관과 무역상이 이곳에 생겨났다. 에사우이라는 코르뉘 계획(Cornut plan, 프랑스 건축 기술자 테어도르 코르뉘의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도시로, 유럽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도시 설계의 우수한 사례이다.

초기부터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유럽과 모로코 자체의 건축 및 도시 계획 모델을 무리 없이 종합한 중요한 장소였다. 이렇게 모로코의 건축 기법과 다른 지역의 건축 기법의 공생이 이루어짐으로써 메디나와 항구의 요새(Sqalas)·바브 마라케시 성(Bab Marrakesh bastion)·수문·모스크·유대교 예배당·교회 등 독특한 건축 명작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도시의 주요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현재 북쪽 구역 대부분이 남아 있는 성곽, 관문들―특히 장식용 해상 관문(Sea Gate, 1170~1171)―이 있다.

또한 성채와 요새(Borjs)―항구 성채(Sqala of the Port), 메디나 성채(Sqala of the Medina), 바브 마라케시 성채(Bastion of Bab Marrakesh), 원래 왕과 수비대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도시에 적절하게 통합된 성채(kasbah) 등―가 있고, 처음의 고유한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멜라와 연안의 섬에 있는 감옥(지금은 매와 같은 희귀한 새의 피난처임), 독특한 형태의 이슬람 사원들―특히 카스바(Casbah)와 벤 요세프(Ben Yossef) 모스크―도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유대인들의 활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유대교 예배당 시너고그(synagogue)―특히 19세기의 시몬 아티아스(Simon Attias) 시너고그―와 18세기 말의 포르투갈 교회, 다르 술탄(Dar-Sultan, 옛 왕궁), 매우 매력적인 개인 주택 등이 도시의 주요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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