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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중세 유적지 [Medieval Monuments in Kosovo]

  • 코소보 중세 유적지
  • 제목 : 코소보 중세 유적지
  • 설명 : © UNESCO / Author : Horst Gödicke
코소보 중세 유적지

상세정보

  • 국가 세르비아(Serbia)
  • 위치 코소보 자치주(Autonomous province of Kosovo)
  • 좌표 N42 39 40|||E20 15 56
  • 등재연도 2004년(2006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6년 확장)
  • 등재기준

    기준 (ⅱ) : 데카니 벽화는 400년 동안 중세 세르비아의 수많은 교회의 벽화 장식 화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특히 1557년에 이전 국가의 영토에 펙 수도원이 복원된 뒤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데카니 프레스코화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시기에 발칸 반도의 동방정교회의 예술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후기 비잔틴 기념물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다.

    기준 (ⅲ) : 데카니의 벽화는 비잔틴 세계 전체에서 가장 넓게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로, 14세기 중반 비잔틴 예술의 다양한 경향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예술성이 뛰어난 벽화는 거의 15년 동안 4,000㎡에 이르는 여러 지역(그리스, 세르비아, 아드리아 해 연안)에서 온 수많은 화가가 그렸다.

    기준 (ⅳ) : 데카니 지역은 비잔틴의 정신이 살아 있는 지역의 중세 건축과 조각을 보여 준다. 즉 비잔틴 교회의 전통과 당시 서양의 로마 고딕 건축 양식이 결합하고 있으며, 세르비아와 남부 슬라브의 유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데카니의 수도원은 발칸 반도에 있는 동방정교회 수도원 가운데 특이하게도 달마티안 해안 지역에서 온 가톨릭 장인들이 건축하고 장식까지 한 동양의 기독교 사원이다.

    기준 (ⅵ) : 데카니 수도원은 발칸 반도의 중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특히 14세기 비잔티움,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과 같이 발칸 반도 국가들에서 일어난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요약
코소보 중세 유적지는 13세기~17세기에 발칸 반도에서 발전한 독특한 양식의 벽화와 비잔틴-로마네스크 종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 준다. 데카니(Dečani) 수도원은 14세기 중엽에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데칸스키(Stefan Dečansk)를 위해 지었으며, 이곳은 그의 묘지이기도 하다. 총대주교 관할 교구인 펙(Peć) 수도원은 돔 지붕이 있는 교회 4개가 모여 있으며, 벽화가 특징이다. 성 사도 교회(the Church of Holy Apostles)의 13세기 프레스코화는 독특하고 웅장하다. 레예비사 성녀 교회(church of the Holy Virgin of Ljevisa)의 14세기 초 프레스코화는 동방정교회의 비잔틴의 영향과 서양의 로마네스크 전통이 결합한 것으로, 이른바 ‘팔라이올로구스(Palaiologian)’ 왕조의 르네상스 양식 외관을 보여 준다. 이 양식은 이후 발칸 제국의 예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목차
유산면적
2.88㏊
완충지역
115㏊
참고번호
724bis
본문

• 데카니
데카니 수도원 교회는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데칸스키를 위해 지었으며, 그의 묘지이기도 하다. 13세기의 설립 선언문 원본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건축하는 데 8년(1327~1335)이 걸렸고 프란체스코회 회원으로 코토르(Kotor)에서 온 건축가 프라 비타(Fra Vita)가 건축했다. 스테판 데칸스키는 완공되기 전에 죽어 이곳에 묻혔다. 그가 죽자 아들 두샨(Dušan)이 건축 공사를 감독했다. 동시에 주 성화벽에 성화를 그리고 교회의 가구로 교회 내부를 장식했다. 나무로 된 지도자(Hegoumenos, 헤구메노스)의 왕좌를 1335년경에 만들었고, 스테판 데칸스키 왕의 목조 관은 1340년경에 만들었다.

스테판 데칸스키의 생애를 저술한 작가 그레고리에 캠블라크(Grigorije Camblak)는 15세기 초 이곳의 지도자였다. 16세기 전반에는 수도원에서 예술에 크게 열광했다. 이때 화가 수도사 론긴(Longin)이 여기에서 20년을 지냈다. 론긴은 대연회와 은자들을 묘사하는 성화 열다섯 점을 창작했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덕이 높은 왕의 일생을 담은 스테판 데칸스키의 성화이다. 17세기가 끝날 무렵, 투르크족이 수도원을 약탈했으나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19세기에 수도원을 복구하고, 성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 성 니콜라스의 부속 예배당에 새로운 성화벽을 놓았다. 현재 이 유산은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이자 문화와 역사의 기념관으로 예배 의식에 사용한다.

• 세르비아의 중세 기념물
13세기에 이 지역에서 종교 문화가 꽃핀 것은 세르비아를 발칸 반도의 강대국으로 만든 밀루틴(Milutin, 1282~1321) 왕 때문이었다. 밀루틴 왕은 가장 관대한 수도원의 후원자로서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로마, 살로니카, 마케도니아, 그리고 아토스 산에 교회를 40개나 지었다.

이보다 약간 앞서 스테판 네마냐 왕(Nevanjič, 1166~1196)이 스투데니차(Studenica) 수도원을 세웠는데, 수도원은 이 왕조의 묘지가 되었다(1986년에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1219년, 니케아의 총대주교가 세르비아의 독립 대주교 지위를 허락했다. 왕국과 교회가 함께 세르비아를 강국으로 발전시켰으며, 최초의 대주교가 지배 가문에서 나왔다. 1346년, 세르비아의 독립 총대주교 관할교구를 두샨 왕이 수립했는데, 펙 수도원이 그 중심이었다.

두샨 이후 세르비아는 몇 개 왕국으로 분할되는 바람에 어느 왕국도 투르크족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왕국들은 투르크에게 패한 뒤 권력 중심지를 북부로 옮겼다. 1459년에 투르크족이 세르비아의 수도를 함락하자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은 최후를 맞이했다. 1557년 투르크족의 허락으로 펙 대주교 관할교구를 복구했다. 이후 펙 수도원은 콘스탄티노플 수도원(Patriarchate of Constantinople)과 아토스 산 수도원(Monasteries of Mount Athos)과 함께 다시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756년이 되기 직전에 투르크가 재정복한 뒤 레예비사 성녀 교회가 회교사원으로 바뀌면서 상당히 많이 개조가 되었다. 1766년에 총대주교직이 다시 폐지되고, 몬테네그로 왕국의 일부가 되면서 1912년에 체티네 시(Cetinje metropolity)에 합쳐졌다. 프리즈렌(Prizren)이 투르크족에게서 해방된 후 레예비사 성녀 교회는 다시 한 번 기독교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1918년에 세르비아 왕국과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세워지면서 세르비아 교회가 부활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발칸 지역에서 거센 충돌이 있었지만, 펙 수도원과 그라차니차(Gračanica) 교회들은 수도원의 기능을 이어왔으며 여전히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민족의 뿌리를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라차니차와 펙 총대주교 수도원은 코소보 전쟁 중에도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레예비사 성녀 교회는 2004년 3월의 폭력 사태 후 사용하지 않는다.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면 교회도 다시 예배 장소의 기능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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