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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단지 [Mahabodhi Temple Complex at Bodh Gaya]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단지

상세정보

  • 국가 인도(India)
  • 위치 인도 동부 비하르 주(State of Bihar, Eastern India)
  • 좌표 N24 41 43.008|||E84 59 38.004
  • 등재연도 2002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5, 6세기에 축조된 50m 높이의 웅장한 부다가야 사원은 인도 대륙에 현존하는 초기 건축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대의 뛰어난 건축 기법으로 세운 벽돌 사원들은 인도인의 우수한 건축학적 재능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기준 (ⅱ) : 부다가야 사원은 인도의 초기 벽돌 건축물이 현존하는 사례로, 몇 세기에 걸친 인도 건축술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준 (ⅲ) : 마하보디 사원 기념물은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과 붓다 사후에 이루어진 예불 의식, 특히 아소카 제국이 세운 최초의 사원과 난간 그리고 기념 원주를 포함한다.

    기준 (ⅳ) : 현존하는 최초의 사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이다. 전체가 벽돌로 되어 있으며, 후기 굽타 왕조 시대에 세워진 뛰어난 건축물이다. 석재 조각 난간은 초기 양식의 특징으로 돌 위의 돋을새김은 걸작이다.

    기준 (ⅵ) : 부다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 단지는 붓다의 생애와 직접 연관이 있는 곳이며, 붓다가 정각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요약
마하보디(महाबोधि , Mahabodhi) 사원 복합단지는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4개의 성지 가운데 하나로, 특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초기 불교 사원은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Asoka) 왕이 축조하였고, 현존하는 불교 사원은 5세기〜6세기경 굽타 왕조 후기에 벽돌로 지었으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부다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은 붓다(고타마 싯다르타)가 깨우친 성지이다. 그는 이곳의 보리수 아래에서, 35세 때인 기원전 531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기원전 260년경, 아소카 왕은 이곳을 성지순례 장소로 지정하고, 보리수가 있던 곳, 정확히 말해 붓다가 명상했던 나뭇가지 밑에 최초의 불교 사원을 짓게 하였다. 성지는 보리수 주위로 설치된 난간들과 그 가까운 곳에 지어진 작은 사원을 포함한다. 더욱이 아소카 왕은 붓다가 명상을 하며 앉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원 안의 한 자리에 금강좌를 만들었다. 금강좌는 1863년〜1881년 사이에 이루어진 발굴 작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트나(Patna) 박물관의 점토판에는 서기 1, 2세기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따르면 당시에 지은 새로운 사원이 먼저 있던 아소카 왕의 사원을 대체했다고 한다. 인도인은 사원 주위로 태양신의 이미지가 조각된 석재 난간을 만들었다. 기원후 2세기에, 사원의 많은 부분이 추가되거나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

마하보디 사원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은 404년〜405년에 중국 동진의 승려 법현(法顯, 337~422)이 남긴 『불국기(佛國記)』에 남아 있다. 이 책은 사원의 본당과 보리수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이 책에 따르면, 붓다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네 군데(도시)에 대탑(大塔)을 세웠다고 한다. 637년, 또 한 사람의 중국인 여행자인 당나라 고승 현장(玄奘, 602~664)이 부다가야를 찾았다. 그는 단단한 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는 보리수를 보았다. 담 안에는 마하보디 대사원이 48m 높이로 솟아 있었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소도 있었다. 그는 푸른 기가 도는 벽돌, 석회, 금동 불상이 놓인 벽감 등 세세한 사항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기록하였다. 그가 여행한 이 시기에 사원에는 장엄한 주랑 현관(porche), 각진 탑, 높은 토대 등이 본당 건물에 추가되었다. 사원의 여러 부분은 난간과 마찬가지로 그 연대가 기원전 3세기~1세기, 사원 건물 자체는 450년 또는 5세기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7세기〜9세기에 이루어진 복원 작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하지만 12세기에 버마인이 대규모 공사를 한 것으로 짐작한다. 다른 공사들은 12세기에 기록되었다. 13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몇 세기 동안 마하보디 사원은 사람이 찾지 않았으며, 이때부터 사원은 점차 폐허로 변했다. 19세기에 버마 통치자들이 사원 복원 사업을 일으켰고, 1880년~1884년에는 영국인이 그 뒤를 잇는다. 1949년, 사원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부다가야 사원보호법이 공표되었다. 1953년~1956년에는 사원 복원 운동을 전개하여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가지 개선 사업이 이어졌다.

유산면적
4.86㏊
참고번호
1056rev
본문

인도의 초기 벽돌 건축물인 마하보디 사원은 몇 세기에 걸친 인도의 건축 예술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사원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가장 눈길을 끈다. 전체가 벽돌로 되어 있으며, 후기 굽타 왕조 시대에 세워진 뛰어난 건축물이다. 석재 조각 난간은 초기 양식의 특징으로 돌 위의 돋을새김은 걸작이다.

마하보디 사원단지는 붓다의 생애(기원전 566~486)와 직접 연관이 있는데, 기원전 531년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달음, 즉 정각(正覺)을 이룬 곳이다. 마하보디 사원 단지는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기록과 이후의 예불 의식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기원전 260년 즈음에 아소카 왕이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면서 보리수 아래에 처음으로 사원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마하보디 사원 단지는 부다가야의 중심부에 있다. 대사원과 6개의 불교 성지로 둘러싸였으며, 유적의 외곽 남쪽에 있는 연못이 일곱 번째 성지에 해당한다. 이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거대한 보리수(Ficus religiosa)이다. 이 나무는 대사원의 서쪽에 있는데, 붓다가 대각을 이룬 뒤 첫 일주일 동안 앉아 있었던 원래의 보리수에서 파생된 나무로 추정한다. 가운데 길 북쪽으로 약간 솟은 지역은 기도를 위한 탑원(塔院, Animeshlochan Chaitya)이 있는 곳으로 붓다가 대각을 이룬 뒤 둘째 주를 보낸 곳으로 추정한다.

붓다는 셋째 주를 라트나차크라마(Ratnachakrama, 보석 장식 회랑)라는 곳에서 앞뒤로 18보를 걸으며 보냈다고 한다. 이곳은 대사원의 북쪽 성벽 근처에 있다. 넷째 주를 보낸 곳은 라트나가 차이티아(Ratnaghar Chaitya)로, 복합단지의 울타리 북동쪽에 있다. 가운데 길에서 동쪽 입구의 계단을 바로 지나면 아자팔라 니그로드(Ajapala Nigrodh) 나무가 있었던 곳임을 표시하는 기둥이 있다. 붓다는 바로 이곳에서 바라문들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고요히 앉아서 명상에 잠겨 다섯째 주를 보냈다. 붓다는 복합단지 울타리의 남쪽에 있는 연못가에 앉아 여섯째 주를 보냈고, 현재 나무로 표시된 라지아타나(Rajyatana) 나무 아래에서 일곱째 주를 보냈다.

대사원은 인도 전통건축 양식으로 지었다. 인동나무와 거위 모양의 쇠시리 장식 기단이 그 특징이다. 기단 위 틈새마다 붓다의 형상을 장식하였다. 그 위에 쇠시리와 차이티아 벽감(壁龕), 곡선 처리된 꼭대기(shikara)가 있다. 이 위에는 연꽃 모양의 아말라카(amalaka), 칼라샤(kalasha)를 얹었다(인도 전통 불교 사원의 건축학적 특징). 불상 4좌를 모신 작은 불당은 사원의 난간 네 모퉁이마다 있다. 이 불당 위에는 작은 탑이 있다. 동쪽을 향해 서 있는 이 사원의 동쪽에 작은 앞뜰이 있고 뜰 양 옆으로 불상을 모신 벽감이 있다.

보리수 옆에는 잘 손질되어 광택이 나는 사암으로 조성된 금강좌(Vajrasana)가 있고, 위에 불상을 단아하게 모셨다. 이는 아소카 왕이 붓다가 앉아서 명상하던 곳을 기리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 기원전 5, 6세기에 이곳을 확장하면서 화강암 석주를 세웠다. 대사원을 향해서 남쪽으로 가운데 길을 따라 오르면 뒤에 붓다 입상이 있으며, 검은 돌에 붓다의 발자국(Padas)을 새긴 작은 불당이 나타난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할 당시에 조성되었다. 대사원 방향으로 길을 따라 더 오르면 붓다상과 여러 보살의 상을 모신 불당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15세기~16세기에 이 지역에 살았던 힌두교 제사장(Mahant)을 기념하는 곳이 있다. 길을 따라 남으로 가면 왕족과 귀족, 신도들이 쌓아올린 봉헌탑 무리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