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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부처의 탄생지 [Lumbini, the Birthplace of the Lord Buddha]

  • 룸비니, 부처의 탄생
  • 제목 : 룸비니, 부처의 탄생
  • 설명 : © UNESCO / Author : Junko Okahashi
룸비니, 부처의 탄생지

상세정보

  • 국가 네팔(Nepal)
  • 위치 룸비니 지구(Lumbini Zone)|||루판데히 구(Rupandehi District)|||테라이 서부(Western Terai)
  • 좌표 N27 28 8.004|||E83 16 33.996
  • 등재연도 1997년
  • 등재기준

    기준 (ⅲ)(ⅵ) : 싯다르타의 탄생지인 룸비니 성지는 세계의 위대한 종교 가운데 하나인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며, 룸비니의 유물은 오래전부터 이곳이 순례의 중심지가 된 이유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담고 있다.

요약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는 기원전 623년 룸비니(Lumbini) 동산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은 곧 순례 장소가 되었다. 순례자 중에는 인도 황제인 아소카(Ashoka)도 있었는데, 그는 이곳에 기념 석주(石柱)를 세웠다. 이 유산은 현재 불교 순례 센터로 개발 중이며, 부처의 탄생과 관련된 고고 유물이 주된 볼거리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부처로 더 잘 알려진 사카야의 왕자 싯다르타는 기원전 623년 유명한 룸비니 동산에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의 통치자인 숫도다나 왕의 부인 마야데비가 수도인 틸라우라콧(Tilaurakot)을 떠나 친정이 있는 데바다하로 가던 중 낳았다. 기원전 249년 독실한 불교도였던 인도 마우리아의 세 번째 통치자 아소카 왕이 그의 스승 우파굽타(Upagupta)와 함께 이 성지로 순례를 왔다. 그는 인도 여러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룸비니·고티하와(Gotihawa)·니글리하와(Niglihawa)에 기둥을 세웠다. 룸비니 석주에 새긴 명문은 이곳이 싯다르타가 탄생한 곳임을 확인해 준다.

룸비니는 15세기까지 순례 성지였다. 룸비니의 초기 역사는 중국의 유명한 순례자들인 법현(法顯, 4세기)과 현장(玄奘, 7세기)의 글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방문한 사원과 불탑, 다른 건물들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14세기 초에 리푸 말라(Ripu Malla) 왕이 자기의 순례기를 아소카 석주에 명문으로 추가하였다.

15세기 이후 룸비니 순례가 중단된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 지역 사람들만 3세기~4세기의 마야데비 상을 힌두교의 어머니 신으로 숭배하였다. 1896년에 포이러 박사와 당시 팔파의 총독이던 카드가 삼셔(Khadga Samsher)가 아소카 석주를 발견할 때까지 불교 사원은 파괴되어 폐허로 있었다.

유산면적
1.95㏊
완충지역
23㏊
참고번호
666rev
본문

룸비니 성지는 아시아의 평화와 빛의 사도인 부처가 기원전 623년에 태어난 곳이다. 이곳은 세계의 3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유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이 순례의 중심지가 된 이유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담고 있다. 네팔 테라이(Terai) 지방 남서부에 위치한 룸비니는 기독교도에게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에게 메카가 그렇듯 전 세계 불교도에게 경건한 성지이다.

룸비니는 타타가타(Tathagata, 여래)로 알려진 부처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은 불교 신자라면 반드시 방문해서 무상(無常)의 참뜻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 이 유산과 주변 지역은 유순한 짐승이 있고 농사에 알맞은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부여받았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유적과 유물이 많은 보물 같은 곳이다. 부처 시대에 아름다운 동산으로 묘사된 이 유적은 지금도 여전히 전설적 매력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Parinibbana Sutta)에는 싯다르타가 직접 미래의 순례자들에게 태어난 곳, 깨달은 곳, 첫 설법을 한 곳, 죽은 곳의 네 장소를 알려 주었다고 적혀 있다. 네 사건은 모두 저 밖 자연 속에 있는 나무 밑에서 일어났다. 이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부처가 항상 환경과 자연의 법칙을 존중한 이유를 설명하는 듯싶다.

룸비니는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언덕에 있다. 부처 시대에는 룸비니가 푸르고 그늘진 사라수(Shorea robusta)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이 정원과 고요한 주변 지역은 사카야(Shakyas) 왕조의 소유였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아버지인 숫도다나(Suddhodana) 왕은 사카야 왕조의 일족으로 크샤트리아(Kshatriya, 무사 계급)에 속하였다.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데비(Maya Devi)는 고향인 데바다하(Devadaha)로 가는 도중 룸비니의 사라수(沙羅樹, sal tree) 아래에서 쉬다가 기원전 642년 3월 싯다르타를 낳았다. 룸비니의 아름다움은 팔리(Pali) 문헌과 산스크리트(Sanskrit) 문헌에 묘사되어 있다. 마야데비는 룸비니의 웅장한 자연을 보고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는 선 채로 늘어진 사라수 가지를 잡고 진통하여 장차 부처가 될 아이를 낳았다.

기원전 249년 인도의 아소카 황제가 방문하였을 때 룸비니는 번성한 마을이었다. 아소카 황제는 불탑 4기와 꼭대기에 말 모양이 조각된 석주(石柱)를 세웠다. 이 석주에 글을 새겼는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신들(devas)의 사랑을 받는 파야다시(Piyadasi) 왕(아소카)이 재위 20년에 친히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을 방문하다. 박가범(스승, 세존)이 태어난 곳에 돌난간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다.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감면하고 (생산물의) ⅛만 바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룸비니는 몇 세기 동안 방치되었다. 1895년 독일의 저명한 고고학자 포이러(Alois Anton Feuhrer)가 추리아 산맥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가 큰 석주를 발견하였다. 포이러는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벽돌로 된 사원과 사원 안에서 싯다르타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사암 조각을 발견하였다. 학자들은 마야데비 사원이 하나 이상의 사원 또는 불탑 위에 건축되었으며, 따라서 아소카 불탑 위에 세웠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였다. 마야데비 사원 남쪽에 푸스카르니(Puskarni)로 알려진 유명한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마야데비가 출산하기 전에 목욕한 곳으로 추측된다.

아소카 석주 옆에는 남동쪽으로 흐르는 그 지역에서는 올(Ol)이라고 하는 강이 있다. 1996년 어느 고고학자가 기원전 249년에 아소카 왕이 2600년보다 더 전인 싯다르타의 정확한 탄생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놓아둔 ‘흠 없는 돌(flawless stone)’을 흙 속에서 파냈다. 이것이 진짜임을 증명한다면 룸비니는 수백만 명의 순례자에게 훨씬 돋보이는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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