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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나베 고고 유적 [Kernavė Archaeological Site (Cultural Reserve of Kernavė)]

  • 케르나베 고고 유적
  • 제목 : 케르나베 고고 유적
  • 설명 : © UNESCO / Author : Vujicic-Lugassy, Vesna
케르나베 고고 유적

상세정보

  • 국가 리투아니아(Lithuania)
  • 위치 빌니우스 카운티 (Vilnius county)|||슈리빈토스 디스트릭트(Širvintos district)|||케르나베 타운 (Kernavė town)
  • 좌표 N54 53 16|||E24 49 50
  • 등재연도 2004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케르나베 고고 문화경관은 유럽 발트 해 연안 지역에서 수만 년 이상의 인류 거주 역사의 발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교도와 기독교 봉건 전통이 만난 예외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기준 (ⅳ) : 주거 형태와 인상적인 언덕 위의 성채들은 서력 기원전 역사와 구조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요약
리투아니아 동부 지역인 빌니우스(Vilnius)에서 북서쪽으로 약 35㎞ 떨어진 케르나베(Kernavė) 고고 문화경관은 수만 년 이상의 인류 거주 역사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곳은 네리스(Neris) 강 계곡에 위치해 있으며, 케르나베 도시와 요새, 일부 요새화되어 있지 않은 주거지·매장지·기타 유적지 등, 구석기 후기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고고학적·문화적 역사유산들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 19.4㏊에 달하는 이 경관은 고대인들의 토지 사용의 흔적과 탁월한 방어 시스템의 일부인 5개의 언덕 위 요새들의 유적을 보존하고 있다. 케르나베는 중세의 중요한 봉건 도시 중 하나이다. 14세기 말, 튜턴 기사단(Teutonic Order, 독일기사단)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는 장소이다.
목차
유산면적
194㏊
완충지역
2,455㏊
참고번호
1137
본문

케르나베 고고 문화경관은 유럽 발트 해 연안 지역에서 수만 년 이상의 인류 거주 역사의 발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교도와 기독교 장례 전통이 만난 예외적인 증거이다. 주거 형태와 인상적인 언덕 위의 요새들은 기독교 이전 시기의 역사와 이러한 구조의 형태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탁월한 예이다.

케르나베에 관한 역사기록은 1279년에 처음 나타난다. 그 후 이 유적지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졌다. 25년 전부터 시작된 고고 발굴 작업으로 이곳에 맨 처음 살기 시작한 사람들의 생활상이 밝혀졌다. 가장 앞선 주거 유적은 파자우타(Pajauta) 계곡의 네리스 강에서 발견되었다. 네리스 강에는 물고기가 많고 강 위쪽으로는 광대한 고원이 있어 수렵이 가능했다. 스웨더리안 문화(swiderienne, Swiderian culture, 구석기 말의 폴란드와 그 주변 지역의 문화)와 초기 구석기 말기의 사냥꾼들이 이 지역에 도래한 때는 기원전 9,000~8,000 년 전이다. 이후 중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에 주거지가 확대됐다.

기원 후 초기 몇 세기는 발트족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렸다. 소철석(沼鐵石)으로 철기를 제조하고 농업과 목축이 본격화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증가했다. 1세기~4세기 네리스 강의 지류를 따라 수 킬로미터 주변에 살았으며, 파자우타 계곡에는 대형 주거지들이 산개(散開)하여 자리 잡았다. 아쿠로 칼나스(Aukuro Kalnas), 민도고 소스타스(Mindaugo Sostas), 리즈데이코스 칼나스(Lizdeikos Kalnas) 등의 몇몇 언덕은 방어 수단으로 개조되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아쿠로 칼나스(Aukuro Kalnas)의 목책요새는 훈족으로 여겨지는 많은 유목민들이 저지른 화재로 불탔다. 파자우타 계곡의 주거지 역시 황폐화되었다. 기후가 악화되고 강물이 불어나 더 이상 계곡 지역에서 살 수가 없게 되면서 언덕의 요새가 자리 잡은 강 위쪽 경사면에 새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이 고대 부족의 중심지는 12세기와 13세기 동안 중세 봉건 시대의 중요한 성으로 발전했다. 영주들은 요새화된 언덕을 방어 수단으로 삼으면서 아쿠로 칼나스에 성을 세우기 시작했다. 장인과 상인들도 요새에 정착했다. 13세기 중반의 케르나베는 전형적인 봉건 도시가 되었다. 영주 소유의 영지를 위해 일했던 장인들은 필리스 칼나스(Pilies Kalnas) 언덕 요새의 도시 위쪽 지대에 거주했고, 특별한 기술을 가진 전문 장인들은 파자우타 계곡 아래 도시에 살았다. 장인이 거주하는 시설은 7~9 에이커(ac) 정도로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거주 시설은 주택과 2~3개의 작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동묘지는 요새화된 키르베이키슈키(Kriveikiškis) 언덕 위 도시 외곽에 있었다. 장례 관습과 발굴된 시체를 싸는 데 쓰였던 밀랍 입힌 천은 유럽에 남은 마지막 이교도 국가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이웃한 기독교 국가들의 영향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중세에 케르나베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중반기까지이다. 리투아니아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대공(大公)의 주거지였다. 그러나 1365년 튜턴 기사단의 공격으로 유린당했다. 튜턴 기사단은 1390년 또 한 번의 공격을 통해 리투아니아의 이 고대 수도를 완전히 초토화하였다. 이후 도시나 성은 재건되지 못했다. 주민들은 오늘날 도시가 있는 장소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았다.

옛 도시의 유적들은 매우 두꺼운 퇴적층으로 다시 덮였으며, 거기에는 유기체의 잔해들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이 유기체의 잔해는 파자우타 계곡과 요새화된 언덕에서의 살던 사람들의 삶이 갑작스런 종말을 맞으면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자원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파자우타 계곡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재건되지 않았고 이 영토의 대부분은 초원과 방목장이다. 1966년과 1986년에 이곳을 개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고고학적인 발굴은 더 이상 없었다. 1989년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는 초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농경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 지역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형성된 모래 언덕들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목초지와 소나무 숲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계곡 가장 아래에는 부분적으로 늪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케르나베는 구석기 후기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5개의 언덕 요새와, 요새화되어 있지 않은 일부 주거지, 매장지, 기타 고고학적 유산들이 모여 있는 장소이다. 위쪽 테라스 끝, 문화유산의 중심에는 4개의 언덕 요새가 나란히 서 있다.

또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와 매장지, 역사 유산들이 이곳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고 있다. 파자우타 계곡 언덕 요새의 아래에는(c . 25 ha), 네리스 강 퇴적층 아래 중세도시였던 케르나베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주거지와 매장지는 강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13세기~14세기 가장 규모가 컸던 매장지는 키르베이키슈키 언덕 요새에서 북쪽 방향, 네리스 강의 위쪽 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후의 역사는 키르베이키슈키 유적(15세기~19세기), 키르나베 II의 유적(15세기~20세기), 키르베이키슈키의 영지(15세기~20세기), 키르나베의 오래된 교회(15세기~19세기)와 관련 유적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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