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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계곡 [Kathmandu Valley]

  • 카트만두 계곡
  • 제목 : 카트만두 계곡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카트만두 계곡

상세정보

  • 국가 네팔(Nepal)
  • 위치 카트만두 계곡(Kathmandu Valley)
  • 좌표 N27 42 14.22|||E85 18 30.888
  • 등재연도 1979년
  • 등재기준
요약
카트만두 계곡(Kathmandu Valley)의 문화유산은 일곱 그룹의 기념물과 건물 군(群)으로 나뉜다. 각 군들은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카트만두 계곡의 역사적·예술적 성과를 잘 보여 준다. 이 일곱 그룹은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의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 카트만두 소재)과 파탄(Patan)의 더르바르 광장, 바크타푸르(Bhaktapur)의 더르바르 광장, 스와얌부(Swayambhu)의 불교 스투파(불탑), 보드나트(Bauddhanath)의 불교 스투파, 파슈파티(Pashupati)의 힌두 사원, 창구 나라얀(Changu Narayan)의 힌두 사원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카트만두 계곡은 네팔에서 정치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전설로 내려오는 역사와 문서에 기록된 역사가 서로 얽혀 있어 따로 분리하기가 어렵다. 이 지역에 정치 체제가 확립된 것은 1세기 초 키라티(Kirati)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이어 3세기~9세기에는 키차비(Kichchhavi) 왕조가 다스렸다. 파탄은 점점 확장되어 7세기 말에는 강력한 도시가 되었다. 후에 리차비(Lichchhavi) 왕이 카트만두 시를 만들었다.

9세기부터 암흑기를 거쳐 14세기에 말라(Mallas) 왕조가 등장하면서 네팔의 미술과 건축은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미술과 건축이 발전하면서 밀교 쪽으로 정신적 지향을 보이게 되어 순수하게 불교적이거나 순수하게 힌두교적인 미술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바드가온(Bhadgaon, 바크타푸르의 다른 이름) 시는 13세기 중엽부터 번성하기 시작하여 거대 수련 센터가 되었다.

18세기 중엽에 카트만두 계곡은 3개의 왕국으로 나뉘었는데, 이들은 경쟁을 통해 예술 표현을 최고 단계로 끌어올렸다. 1769년 외부에서 온 지도자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가 계곡을 정복하여 통일시켰다. 그는 카트만두를 왕도(王都)로 삼고 자신이 거처할 하누만 도카 궁을 지었다. 1833년과 1934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계곡이 파괴되었지만, 기념물 중 일부는 원래의 재료와 장식을 사용하여 복원되었다.

유산면적
167㏊
완충지역
70㏊
참고번호
121bis
본문

세계적으로 독특한 기념물들이 집중되어 있는 기념물 구역은 카트만두 계곡의 종교·정치·문화 생활의 고도로 발달한 건축 표현을 나타낸다. 이곳은 네팔 산악 지역의 중심 주거지이며 히말라야 문화의 핵심 중 하나다. 파슈파티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교 발원지이다. 창구 나라얀 사원은 2층 지붕이 있는 인상적인 사원으로, 카트만두 계곡에서 가장 오래된 비슈누 사원이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네팔의 정치·상업·문화의 중심지이며 풍요로운 문화 예술과 전통을 자랑하는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전시장이다. 타원형 그릇 모양의 카트만두 계곡은 테라스 모양의 녹색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붉은색 타일 지붕의 가옥들이 점점이 모여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계곡은 예전에 호수로 덮여 있었는데, 문수보살(文殊菩薩, Manjushri)이 지혜의 검을 들어 벽처럼 막고 있는 산을 갈라 길을 내고 물을 모두 빼내 최초의 정착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카트만두 계곡에는 네팔 내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네와르(Newars)족은 이 계곡의 찬란한 문명을 만든 토착 원주민이다. 카트만두 계곡은 기본적으로 도시화된 환경(카트만두·파탄·바크타푸르) 안에 3개의 역사적 왕궁과 2개의 힌두 사원(파슈파티나트·창구나라얀), 2개의 불교 사원(스와얌부나트·보드나트)이 있는 기념물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트만두 시는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에도 다인종의 용광로였는데, 이 도시의 풍부한 문화유산은 여기에 기인한다. 독특한 건축 유산·왕궁·사원·정원이 있는 카트만두는 네팔 국내외의 많은 작가·화가·시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 도시는 수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불교·힌두교, 밀교인 탄트리즘(Tantrism)이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자랑한다.

이런 종교들의 영향은 도시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요 기념물들은 대부분 12세기~18세기에 고대 말라(Malla) 왕조의 왕들이 세운 도시의 사회적·종교적 중심 지역인 더르바르 광장에 있다. 그중 흥미로운 것으로는 탈레주(Taleju) 사원, 칼 바이라브(Kal Bhairab) 신상, 나우탈레 더르바르(Nautalle Durbar), 국왕 즉위식 장소인 나살 초크(Nasal Chowk), 가디 바이타크(Gaddi Baithak, 유럽풍의 흰색 왕궁), 프라타프 말라(Pratap Malla) 왕의 동상, 큰 종, 큰 북, 자가나트(Jaganath) 사원이 있다.

이곳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왕궁 벽에 새겨 넣은 15개 언어로 쓴 17세기의 돌 비문이다. 누군가 이 비문을 해독하면 비문을 새긴 돌벽 밑의 토수구에서 우유가 흘러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이 비문에는 프라타프 말라 왕이 더르바르 광장의 모한 초크(Mohan Chowk) 밑에 묻은 보물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내용이 암호로 씌어 있다고도 한다.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약 14㎞ 떨어진 성스러운 바그마티(Bagmati) 강 맞은편에 있는 랄릿푸르(Lalitpur, 파탄(Patan)의 다른 이름)는 역사적·문화적으로 흥미로운 도시다. 바크타푸르(Bhaktapur, 바드가온(Bhadgaon)의 다른 이름)는 해발고도 1,401m에 위치해 있는데, 소라고둥처럼 생긴 이곳은 ‘신자의 도시’라는 뜻이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카트만두 계곡에서 북동쪽으로 5㎞ 떨어진 중요한 힌두 사원이다. 이곳은 네팔에서 가장 신성한 힌두교 성지이자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큰 시바 유적으로, 신성한 바그마티 강 강둑을 따라 수백 년 동안 사원, 아슈람(힌두교 수행자의 마을), 그림, 비문들을 모아 놓은 거대한 전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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