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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Jongmyo Shrine]

  • 종묘 정전
  • 제목 : 종묘 정전
  • 설명 : 출처 : 문화재청
종묘

상세정보

  • 국가 대한민국(Korea, Republic of)
  • 위치 서울시(Seoul City)
  • 좌표 N37 32 60|||E126 58 59.988
  • 등재연도 1995년
  • 등재기준

    기준 (ⅳ) : 종묘는 유교 예제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기반시설이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유교의 조상숭배관이 독특하게 결합된 한국의 사묘 건축 유형에 속한다. 죽은 자들을 위한 혼령의 세계를 조영한 건축답게 건물의 배치, 공간구성, 건축 형식과 재료에서 절제, 단아함, 신성함, 엄숙함, 영속성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과 함께 제사, 음악, 무용, 음식 등 무형유산이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제례가 행해진다는 점에서 종묘의 문화유산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요약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왕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문무백관(文武百官)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에 참여한 공간으로 왕실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보여 준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왕실 제례 건축으로서 공간계획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14세기 말에 창건되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초에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심 건물인 종묘 정전(宗廟 正殿)은 정면이 매우 길고 건물 앞마당과 일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정신적 전통인 조상숭배 사상과 제사 의례를 바탕으로 왕실 주도 하에 엄격한 형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현재에도 조선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종묘제례(宗廟祭禮)라 불리는 제사 의례가 행해지고 있으며 제사에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음악과 춤이 동반된다. 종묘의 건축과 관리, 제례 봉행에 관한 모든 사항은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으로 상세히 남아있다.
목차
완전성

종묘는 제향 공간과 건축물, 제향을 지원하는 부속 공간과 시설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건물과 시설물은 조선 시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심과 분리되어 있다. 종묘와 그 주변 경관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으며, 종묘제례 및 제례악 또한 국가 지정 문화재이다. 종묘제례는 매년 정기적으로 봉행된다.

진정성

종묘는 유형적 원형과 무형적 행례 절차에 있어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종묘의 공간 배치와 건축은 조선 시대 축조 당시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제의와 음악, 춤 또한 잘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17세기에 중건된 건물은 선왕의 신위 수가 늘어남에 따라 두 차례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조건물의 특성상 보수공사가 진행되어 왔지만 보수공사 또한 관련 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 법식에 맞는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공인된 장인들이 진행한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서 체계적으로 전승, 보호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종묘는 조선왕조의 선왕들을 모시는 유교 사당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 8월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같은 해 12월 중추원부사 최이에게 종묘를 짓도록 명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에 완성된 종묘는 처음에 ‘태묘(太廟)’라고 했으며, 태조의 4대조의 신주를 개성에서 종묘로 옮겨 보관했다.

세종 원년(1419년)에는 조선 2대 왕 정종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태묘의 서쪽에 별묘인 영녕전을 지었다. 공간이 부족해지자 1547년에는 네 개의 묘실을 증축했다. 1592년 5월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종묘의 신주들을 가지고 피신했지만, 종묘 건물은 모두 파괴되었다. 그후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1667년에 영녕전을 증축했고 1778년과 1836년에는 정전을 증축하여, 영녕전과 정전의 묘실 수는 각각 8실과 19실로 늘어났다. 이후에도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는 영녕전은 16실, 정전에는 19실이 있다. 또한 정전에서 매년 거행되는 제사인 종묘제례는 굉장히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중요한 무형문화재이다. 음악, 노래, 춤을 아우르는 종묘제례는 14세기 말 태조 때 중국에서 들어온 궁중음악을 기원으로 한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종묘의 전 영역과 정전, 영녕전 등 주요 건물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14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그 형태가 온전히 전해져 온 종묘제례 및 제례악 또한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이다.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의 지역은 문화재보호법과 종로구 조례에 따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해당 구역 내의 모든 건설 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종묘의 보존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기관으로 종묘의 건물 및 시설물 보수정비, 발굴, 예산 지원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또한 25명가량의 직원들이 배치된 종묘관리소는 현장에서 직접 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상시 모니터링이 진행되고 있으며 3, 4년 주기로 전문가들이 정밀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도시교통과, 문화재과가 협력하여 종묘 주변지역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기적으로 기본 경관 계획, 지구 단위 계획을 수립하여 주변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 및 사업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종묘의 보존 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종묘의 문화재 수리는 해당 분야별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공인된 문화재수리기술자가 진행한다. 목조건축물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화재 위험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2009년부터 ‘5대궁 및 종묘 종합경비시스템구축사업’을 추진하여 화재를 비롯한 문화재 훼손과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유산면적
19㏊
참고번호
738
본문

종묘는 선왕을 기리는 유교 사당의 뛰어난 예이다. 16세기 이후 상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조선왕조(1392~1910)의 선왕들을 모시는 사당인 종묘에서는 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가 거행되어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에 수도를 한양(漢陽, 현재의 서울)으로 옮기면서 종묘를 건축하도록 명했고, 태조의 4대조 신주를 개성에서 종묘로 옮겼다. 이후 후대 왕들의 신주를 모실 건물을 증축했고, 정전(正殿)에 있던 신주(神主) 일부를 새로 지은 영녕전(永寧殿, 16실)으로 옮겼다. 종묘에는 모두 35실이 있다.

종묘는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하며, 전통 풍수지리에 따라 자연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종묘는 각각 향대청(香大廳), 정전(주전), 영녕전(별묘)을 중심으로 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 주요 구성 요소로는 두꺼운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외대문(정문), 제례가 거행되기 전에 왕이 대기하던 기와지붕 목조건물인 망묘루, 태조가 고려 공민왕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지었던 공민왕신당, 제례에 사용하던 물품들을 보관하던 향대청, 참가자들이 의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리던 재실(齋室, 주 건물과 양옆의 부속 건물로 구성됨) 등이 있다.

정전은 남문, 동문, 서문이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닥에는 거친 화강암으로 만든 묘정 월대(廟庭月臺)가 넓게 깔려 있다. 세 개의 계단이 돌 기단에서 정전을 향해 나 있으며, 보다 작은 계단들이 양옆 끝에 있다. 정전은 목조건축물이며, 그 좌우에는 월대 쪽으로 나온 동월랑(東月廊)·서월랑(西月廊)이 딸려 있다.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정전은 개방된 정면에 긴 복도가 있고, 나무문이 달려 있는 내부에 19실이 있다. 이 묘실들은 다시 여러 개의 칸으로 구분되어 신주 49개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칸막이가 쳐진 협실이 딸려 있다. 정전의 박공지붕은 소박한 목재 까치발이 받치고 있다. 영령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여 정문으로는 사람의 통행을 금지했다. 왕은 동문으로 드나들었으며, 악사들은 더 작은 서문으로 다녔다.

칠사당은 사명(司命), 사호(司戶), 사조(司竈), 중류(中霤), 국문(國門), 공려(公厲), 국행(國行) 등의 칠사(七祀)와 함께 역병으로 사망한 이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공신당(功臣堂)은 역대 공신 83명의 신주를 모신 곳이며, 전사청(典祀廳)은 제례에 사용된 물품과 예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전 수복방(守僕房)은 관원들의 거처로, 제례에 쓰일 제물을 검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영녕전에는 정전에 있던 왕들의 신주를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옮겨서 보관했는데, 정전에 계속 모실 수 없는 왕들의 신주를 옮겨 모셨다. 영녕전은 문이 세 개가 달린 직사각형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당에는 얇은 화강암이 깔려 있다. 영녕전의 주 건물 양옆에는 크기가 다른 곁방이 딸려 있다. 둥근 기둥의 꼭대기에는 목재 까치발이 달려서 박공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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