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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쓰쿠시마 신사 [Itsukushima Shinto Shrine]

  • 이쓰쿠시마 신사
  • 제목 : 이쓰쿠시마 신사
  • 설명 : © UNESCO / Author : G. Boccardi
이쓰쿠시마 신사

상세정보

  • 국가 일본(Japan)
  • 위치 히로시마(廣島縣|||Hiroshima Prefecture)
  • 좌표 N34 17 39.9|||E132 19 28.7
  • 등재연도 1996년
  • 등재기준

    기준 (ⅰ) (ⅱ) (ⅳ) (ⅵ) : 종교 성지의 최상의 예로서 이쓰쿠시마 신사는 인상적인 자연 배경과 대비를 이루는 훌륭한 예술적 기술적 가치를 가진 전통 건축물로서, 비견할 데 없이 아름다운 형태미를 가진 예술작품을 창조해 냈다.

요약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있는 이쓰쿠시마(嚴島) 섬은 일찍부터 일본의 토착 종교인 신도(神道)의 성지로 여겨져 왔다. 아마도 6세기에 신사가 처음 세워진 것 같다. 현재의 신사(12세기)와 주위의 조화롭게 배치된 건축물들은 예술적이나 기술적으로 훌륭한 수준을 자랑한다.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이 신사는 색깔과 형태에 있어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자연과 인간의 창조성이 잘 결합된 일본적인 경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목차
역사적 배경

이쓰쿠시마 섬은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서쪽 부분에 있는 많은 섬들 중의 하나이다. 세토나이카이는 일본 열도의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에 있는 내해(內海)이다. 이 섬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미센산(弥仙, 530m)이 있어서 고대부터 숭배를 받아 왔다. 고대인들은 섬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지 멀리서 숭배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너무나 커서 일찍이 섬의 해안가에 신사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나, 사실 여부는 811년 전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후기(日本後記)에 보면 이쓰쿠시마노가미(嚴島神)가 명신(名神)의 반열에 올랐으며, 왕실에서 이 신사에 성직자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신성한 신사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신사의 건축 공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그러나 신도의 승려였던 가게히로 사에키(景弘佐伯)가 1168년 주요 건물을 재건했음을 왕실에 보고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의 작업을 통해 건물의 규모가 늘었으며 지붕 재료도 널빤지에서 노송나무 껍질로 바뀌었다. 이러한 재건축 작업은 당대의 정치 지도자인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후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규모나 구성에 있어서 이후의 사원 재건축의 기준이 되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호겐(保元)의 난과 헤이지(平治)의 난 때 커다란 전공(戰功)을 쌓았고,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성공했는데, 이쓰쿠시마 신사에 대한 그의 믿음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쓰쿠시마의 신(神)이 헤이케(平家) 일가의 수호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쓰쿠시마 신사를 더욱 숭배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신사를 찾곤 했다.

재건축된 신사의 주요 건물들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2)인 1207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8년 뒤 다시 지어졌다. 그 뒤 1223년 딱 한번 불에 탄 적이 있다. 이때의 재건축 작업은 시간이 좀 더 걸려 1241년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건물들은 이때에 재건축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신사의 총괄적인 재건축은 너무나 큰 작업이 되었기 때문에, 개별적인 차원에서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막부(幕府)의 후원을 받았으나, 이후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3~1572)에는 후원이 끊기게 된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바다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바람과 홍수로 인해 계속 피해를 입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국가나 지역의 유력 인물들의 지원을 받아 복원을 했다.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오오토리이는 바다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특히 피해를 많이 입었다. 여러 차례 복구되었는데, 가장 최근 기록은 1875년이다.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추가되어 현재의 규모를 가지게 되었다. 1407년에는 5층탑인 고주토가, 1523년에는 2층탑인 다호토, 1556년에는 셋샤 덴진샤 혼덴이, 1587년에는 맛샤 호코쿠진자 혼덴이 건축되었다.

이쓰쿠시마 섬은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세토나이카이의 주요 상업적 역할을 해 왔다. 무로마치 후기에는 시장이 열렸고, 그 주변으로 도시 지역이 개발되었다. 미센산 정상에 불교 사원이 세워졌고, 그 때문에 많은 참배객들과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리하여 이쓰쿠시마 섬은 오래전부터 숭배의 대상으로서 배타적으로 보호되어 왔던 성스러운 섬으로서의 무서운 이미지를 떨쳐 내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개방된’ 섬이 되었다. 자연 환경과 종교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 훌륭한 경관 덕분에 에도시대(江戶時代, 1600~1866) 중반에는 일본 삼경(三景)의 하나로 지정되기에 이르렀으며 아키노미야지마(安藝宮島)라고도 일컬어진다.

유산면적
431㏊
완충지역
2,634㏊
참고번호
776
본문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물들은 일반적으로 산기슭에 사원을 건축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건물들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유행했던 양식이며, 인간의 자연 숭배에 대한 발로로서, 주변의 자연경관과 사원이 일체를 이룬 고대의 사원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중심 건물인 혼샤(本寺)의 건축물들은 단일 디자인 개념에 따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되고 만들어졌다. 다른 건축물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새로 추가되었다. 각각의 건물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건축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북향의 혼샤 건물과 서향의 셋샤(攝祀) 마로도신사(客神)는 회랑(回廊)으로 서로 연결되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귀족들의 주거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뒤쪽의 산이 배경이 되어 건물들의 정면 모습은 한층 두드러지며, 전면의 오오토리이(大鳥居)부터 뒷산까지 전 지역이 마치 한 폭의 병풍과 같다. 진녹색의 산을 배경으로 하여 서 있는 빨간 색의 건물의 섬세한 모습은 색깔과 형태가 뚜렷하게 대비를 이루는 빼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 불교가 배척받게 되자, 이쓰쿠시마 신사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불교 사찰을 사원 내에 함께 두었던 일본의 다른 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언덕에 남아 있는 몇몇 신사는 신도의 유적으로서 이쓰쿠시마 신사의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혼샤(本寺) 건물은 하라이덴(祓殿), 하이덴(拝殿), 헤이덴(幣殿), 혼덴(本殿)으로 이루어지며, 오오토리이와 일직선 상에 놓여 있다. 하라이덴은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헤이덴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이덴과 혼덴은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넉넉하게 펼쳐진 처마, 부드러운 굴곡의 지붕, 마루의 수평선, 수평 들보 등이 만들어 내는 섬세한 선들은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준다. 육중한 나무 기둥과 받침대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이것들을 지탱하고 있다. 하라이덴 앞에는 제단인 히라부타이(平舞臺)가 있으며, 널빤지 마루를 통해 히가시카이로(東回廊)와 니시카이로(西回廊)와 연결된다. 이들 카이로(回廊)를 통해 이쓰쿠시마 신사의 다른 건물들로 갈 수 있다. 히라부타이는 앞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짙은 주황색으로 4면이 옻칠된 다카부타이(高舞臺,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무대에서 공연되었던 궁중 무용은 헤이안 시대(794~1184)의 조정에서 유래된 것으로, 8세기 이상 동안 이쓰쿠시마 신사의 승려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혼샤 건물들의 북동쪽에 있는 셋샤 마로도 신사(攝寺客神社)는 서쪽에 면해 있다. 하라이덴, 하이덴, 헤이덴, 혼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혼샤의 건물들과 같은 형태에 건축 양식도 비슷하다.

이쓰쿠시마 신사 주변에는 오랜 세월 동안 공존해 온 신도와 불교라는 두 종교가 잘 결합된 부속 건물들이 여럿 있다. 5층탑인 고주노토(五層塔), 다호토(多寶塔), 셋샤 덴진샤 혼덴(攝寺天神社本殿), 맛샤 호코쿠 신사 혼덴(末社豊國神社本殿, ‘센조카쿠’라고도 함)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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