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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F. 보우다 증기기관 양수장 [Ir.D.F. Woudagemaal (D.F. Wouda Steam Pumping Station)]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D. F. 보우다 증기기관 양수장

상세정보

  • 국가 네덜란드(Netherlands)
  • 위치 프리슬란트 주(Province of Friesland)|||렘스테르란트 시 레메르(Lemmer, Lemsterland Municipality)
  • 좌표 N52 50 44.988|||E5 40 44.004
  • 등재연도 1998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증기가 출현함으로써 네덜란드 기술자들은 1,000년에 걸친 물 관리 노력에서 강력한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보우다 양수장은 같은 방식으로 지은 시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기준 (ⅱ) : 보우다 양수장은 네덜란드 수리공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시설로, 몇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양수장의 전범으로 통하면서 표준이 되었다.

    기준 (ⅳ) : 보우다 양수장은 자연의 위력을 통제할 때, 특히 네덜란드 기술자들의 물 관리에 적용할 때 증기의 힘을 입증하는 매우 특별한 증거가 되었다.

요약
프리슬란트 주 레메르(Lemmer)에 있는 보우다 증기기관 양수장(Wouda Pumping Station)은 1920년에 가동을 시작하였다. 보우다 양수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증기기관 양수장으로 오늘날까지 가동되고 있다. 이 양수장은 네덜란드의 기술자와 건축가들이 자연의 위력으로부터 자국민과 자국 영토를 보호하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등재된 문화유산이 소재하는 프리슬란트 지방에서는 서기 1000년경부터 제방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물을 자연적으로 배수하였으나 개간지의 면적이 넓어지면서 ‘프리슬란트 저수지’라고 알려진 연계 호수와 수로망으로 물을 배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체계는 1648년부터 프리슬란트 지방정부가 관리하였다. 범람이 상습적으로 일어나자 해안 제방을 적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방정부 조례가 1533년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1570년 대홍수 때 이 지방의 저지대가 완전히 침수되었다. 1825년에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프리슬란트 주의 자위더르 해(Zuyder Zee)에 면한 레메르 토지를 포함하여 100,000㏊가 넘는 저지대가 침수되었다. 그 결과 이곳에 수문이 설치되고 제방은 더욱 단단히 보강되었다.

19세기 후반부에는 프리슬란트 지방의 물 관리 체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는 1876년 저수지 수면이 높아졌을 때 약 60,000㏊의 땅이 침수된 데 비하여, 1993년에는 침수 면적이 약 3,000㏊로 줄어든 사실로 증명된다. 물은 저장용 저수지 역할을 하는 라우베르 해(Lauwerszee)로 배수된 뒤, 그로부터 다시 자위더르 해 쪽으로 배수되었다.

1894년 범람 이후 교통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 결과 교통부위원회와 프리슬란트 지방정부가 구성한 또 다른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라우베르 해 매립과 프리슬란트 지방 남서부의 배수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시차를 약간 두고, 프리슬란트 남쪽 해안선을 따라 총 처리 용량 1,575마력의 새로운 양수장 2개를 더 건설하기로 하였다.

지방정부는 1913년 두 양수장 중 첫 번째 양수장의 건설을, 배수 운하로 양수장과 연결된 바다 갑문의 건설과 함께 승인하였다. 이때 건축가가 지방 물관리청의 수석 엔지니어 D. F. 보우다(Dirk Frederik Wouda, 1880~1961)였고, 그의 이름을 따라 1947년 양수장 이름도 바뀌었다. 기계 설비를 책임진 사람은 델프트 기술대학 J. C. 데익스호른(J. C. Dijxhoorn) 교수였다. 새 양수장은 1916년에 건설하기 시작해 1920년 처음 가동하였다.

새로운 유입 수문이 1936년~1938년에 양수장 동쪽에 추가로 건설되었다. 1932년 자위더르 해에 댐을 건설함에 따라 ‘에이셀 호수’라고 알려진 곳의 수위가 매우 낮아져 프리슬란트 남부와 서부의 해안을 따라 설치된 수문만으로는 배수가 불가능해 현재는 바덴 해(Wadden Sea)로 배수하고 있다.

유산면적
7.32㏊
완충지역
21㏊
참고번호
867
본문

몇 세기에 걸쳐 양수장의 전범이 되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마련한 보우다 양수장은 네덜란드 수리공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자연의 위력을 통제할 때, 특히 네덜란드 엔지니어들의 물 관리에 적용할 때 증기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이다.

보우다 양수장은 프리슬란트 주 레메르 시 서쪽에 에이셀 호(IJsselmeer) 수변을 따라 있다. 1915년에 개통한 공급 운하(Stroomkanaal과 Afwateringskanaal) 끝부분에 양수장이 있는데, 프리슬란트 저수지에 저장되었던 물이 두 공급 운하를 통하여 흐로테브레켄(Groote Brekken) 호수를 거쳐 에이셀 호수로 유입된다. 1936년~1938년에 건설된 유입 수문은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인 테로엘스테르콜크(Teroelsterkolk)에 있다.

양수장 서쪽에는 ‘마르흐리트 공주(Princess Margriet)’ 갑문과 에이셀 호수에서 유입되는 많은 양의 물을 처리하기 위해 1951년부터 사용하는 운하가 있다. 몇 세기에 걸친 물과의 싸움이 오늘날 네덜란드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제방을 쌓지 않았다면, 정교한 물 통제시스템(waterstraat)이라는 수단으로 건조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면 네덜란드 영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을 것이다. 호수와 자연 상태의 물을 이 나라 서쪽으로 배수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은 17세기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넘쳐나는 물을 배수하기 위해 최초로 이용한 장치는 풍차이다. 풍차는 물을 지속적으로 퍼 올려 중간 저수지로, 그 다음에는 큰 호수나 바다로 내보내는 일을 하였다. 1825년 호린험(Gorinchem) 인근의 아르켈스(Arkelse) 댐에서 처음으로 증기를 이용해 물을 퍼냈다. 방사형 펌프 또는 원심 펌프가 풍차에서 동력을 얻는 수차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원래 영국에서 제조된 이런 종류의 펌프는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네덜란드 기술자들도 제작하였다.

증기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양수장 건설은 1870년~1885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1900년 이후 건설된 증기 양수장은 몇 곳에 불과하다. 1900년~1910년에는 약 700개의 양수장이 가동된 것으로 추산된다. 디젤엔진을 사용한 양수장이 1904년에 처음 건설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가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었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약 1,600개의 양수장이 가동 중인데, 그중 대다수가 전기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