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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 [Humberstone and Santa Laura Saltpeter Works]

  • 제목 : 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
  • 설명 : © UNESCO / Author : Nuria Sanz
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

상세정보

  • 국가 칠레(Chile)
  • 위치 이키케 지방(Province of Iquique)
  • 좌표 S20 12 20.952|||W69 47 38.616
  • 등재연도 2005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초석 산업은 종합적인 지식과 기능, 기술, 그리고 남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들어온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재정투자 등에 힘입어 발전했다. 거대한 문화 교류 단지를 이룬 초석 작업장에서는 초석 생산을 위한 창조적인 생각들이 빠르게 흡수되고 활용되었다. 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이 두 작업장은 이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기준 (iii) : 초석 작업장과 작업자들이 소속된 회사가 이룬 마을은 이들이 쓰는 모국어와 조직, 관례, 창조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창업을 보여 줌으로써 매우 광범위하고 독특한 도시 공동체로 발전했다.

    기준 (ⅳ) : 칠레 북쪽의 초석 작업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초석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이곳에서 생산된 비료 덕분에 대초원과 농업용 토지의 지력이 증진되었다. 두 작업장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보여 주면서 작업장 특유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요약
움베르스톤(Humberstone)과 산타 라우라(Santa Laura)의 작업장은 과거에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의 노동자들이 회사 내의 마을에 거주하면서, 독특한 팜피노(pampino)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킨 곳이다. 이곳에는 200여 개의 초석(질산나트륨) 작업장이 있다. 팜피노 문화는 다채로운 언어와 창조력, 결속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 정의를 위한 선도적인 투쟁을 하는 등 사회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초석 작업장이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지역으로, 대초원 지대인 팜파스와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 작업장에서 수천 명의 팜피노가 1880년부터 60년 넘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해 왔다. 초석의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이 지역에서 팜피노들은 초석을 채굴하고 가공했으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유럽 농토의 지력을 증진시킨 질산나트륨 비료를 생산해 칠레에 막대한 부를 안겨 주었다.
최근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진의 영향과 이를 견디기에 취약한 건축 구조 때문에 200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되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스페인 점령 이전부터 아타카마 주 사람들과 잉카 제국 토착민들은 질산염 비료를 사용했다. 초석을 추출하고 분쇄한 후 들판에 뿌린 것이다.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폭발물을 제조하는 데 초석을 사용했는데, 그들은 광물을 채굴한 다음 화약으로 가공하려고 노새에 광물 짐을 얹어 리마로 보냈다. 18세기 후반에 폭발물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사람들은 칠레 북쪽의 새로운 지역을 탐사하여 타라파카 주의 경계에서 초석을 발견했다. 그 무렵에 독일의 과학자 타데우스 핸케(Thadeus Haencke)는 질산칼륨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최초의 초석 작업장은 1810년에 문을 열었다. 규모가 작은 이 작업장은 개인 사업자 소유였는데, 작업자들은 손으로 직접 광물을 캐내고 부수어 간단한 통에 넣고 끓인 다음 햇빛에 말려 증발시켰다. 최초의 선적은 1820년대에 영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뒤이어 1830년대에 폭발물 제조용으로 미국과 프랑스로 보내기 위한 선적도 이루어졌다. 1830년대에는 유럽에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는 초석이 개발되었다. 비료의 개발로 곡식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미국과 아르헨티나, 러시아의 미개척지에도 비료가 퍼지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커피 농장,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설탕 농장에서도 비료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칠레는 곧 세계적인 천연 질산 비료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작업장의 규모와 범위가 변경된 것은 1853년 칠레인이었던 페드로 감보니(Pedro Gamboni)가 초석을 용해시키는 새로운 공정 기술을 개발한 덕분이다. 이로 인해 광산 소유자들은 보일러와 반죽 그릇 같은 고정 설비를 확충했고, 작업자들이 머물 거주지를 확장했으며, 다음으로 수송로를 개선했다. 19세기 후반 철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짐을 말의 등에 싣고 해안으로 수송했는데, 이는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 뒤 개인 투자자를 통해 기금을 확충하여 철도를 설치하게 되었다. 1905년에 1,787㎞에 불과했던 철도 노선은 1913년에 자그마치 5,000㎞로 늘어났다.

1879년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볼리비아를 지지한 페루 사이에 이른바 초석 전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칠레가 초석 산업을 지배하게 되었고, 유럽인들은 칠레에 투자를 확대하였다. 이것은 칠레의 국가 경제가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0년까지 초석은 칠레 총 수익의 50%를 차지했으며, 1913년까지 수출품의 80%를 차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초석 생산자들을 위기에 빠뜨렸다. 뱃길은 안전하지 않았고, 가장 큰 초석 수입자 가운데 하나인 독일은 합성 암모니아를 기반으로 초석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유럽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해 갔다.

칠레인의 참여도가 증가하긴 했지만, 초석의 수요는 계속 감소했다. 결국 작업장들은 회생 절차에 들어가고, ‘칠레 초석 회사(COSACH)’가 설립되었다. 그 와중에 주 정부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 질이 낮은 광석의 생산을 허용했는데도 시장은 살아나지 않았고, 칠레의 초석 회사는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1930년대에는 칠레에서는 세계 질산염 생산의 10%를 겨우 생산했으며, 1950년대에는 3%까지 감소했다. 칠레 초석 회사의 후임자로 초석을 독점하던 ‘타라파카 안토파가스타 초석 회사(COSATAN)’는 1961년까지 사업을 계속했다.

페루 질산염 회사는 1862년에 원래 라팔마(La Palma)로 알려진 움베르스톤 초석 작업장을 건설했다. 이 작업장은 1889년까지 타라파카 지역에서 약 3,000명의 작업자들이 거주했던 가장 큰 초석 광산의 하나였다.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질산나트륨 생산에 차질을 빚은 라팔마는 칠레 초석 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간 뒤 1933년에 다시 문을 열기로 하고는 일단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지금 알려져 있는 대로 화학 공학자인 움베르스톤을 기려 ‘움베르스톤 초석 작업장’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그 뒤 1933년부터 1940년까지 생산이 확대되어 시장 광장 주위에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면서 인구는 3,700명에 이르렀다.

‘산타 라우라 작업장’은 움베르스톤 작업장이 건설된 지 10년 뒤인 1872년에 바라 리스코 회사에 의해 건설되었다. 1920년에 단지 450가구만 정착했을 만큼 규모가 작았던 이 작업장은 계속되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타라파카 안토파가스타 초석 회사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타라파카 안토파가스타 초석 회사도 1959년에 사업을 정리했으며, 이로써 2개의 초석 작업장은 문을 닫는 상황을 맞이했다.

두 작업장은 1961년에 경매로 팔렸는데, 수집 목적으로 이를 구입한 개인에게 넘어갔다. 초석 작업장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70년에 국가 기념물로 등재되었지만, 급격하게 퇴보한 이 지역은 강도와 약탈, 장비 파손 등이 멈추지 않았다. 시설물 소유자가 파산한 뒤, 1995년에 이 소유물은 국가재산부의 관할 하에 비영리 단체인 초석 박물관 법인에서 30년 동안 위탁 관리를 하게 되었다.

참고번호
1178
본문

초석 산업은 종합적인 지식과 기능,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들어온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재정투자 등에 힘입어 발전했다. 거대한 문화 교류 단지를 이룬 초석 작업장에서는 초석 생산을 위한 생각이 빠르게 흡수·개척되고 활용되었다. 초석 작업장과 작업자들과 이들이 소속한 회사가 이룬 마을은 자기들이 쓰는 모국어와 조직, 관례, 창조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창업을 보여줌으로써 매우 광범위하고 독특한 도시 공동체로 발전했다. 칠레 북쪽의 초석 작업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초석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고, 이곳에서 생산된 비료 덕분에 대초원과 농업용 토지는 지력이 증진되었다. 움베르스톤 작업장과 산타 라우라 작업장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보여 주면서 작업장 특유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버려졌으나 타마루갈(Tamarugal) 고원에 자리 잡은 이 2개의 초석 작업장은 서로 1.5㎞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도로 A16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초석 매장지는 건조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타라파카(Tarapacá) 주와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주에 걸쳐 있는 안데스 산맥의 알티플라노(altiplano) 사막으로, 칠레 북쪽 끝에 있는 이 고원은 실제로 연 강수량이 거의 ‘0’에 가깝고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며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다. 토양이 다공성(多孔性)인 고원은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걸러내는데, 이 물은 해안 산등성이 근처에서 안으로 스며들지 않는 화강암 같은 바위 지대에서 작은 호수를 이룬다. 이 물이 증발해 ‘소금판’의 근원이 되는데, 칠레 초석은 딱딱한 바위와 부드러운 바위 사이의 길게 갈라진 틈에 있었다.

초석은 해안 산맥의 동쪽 끝자락에서 채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초석으로 폭발물을 제조했으나 좀 더 이윤이 많이 남는 비료를 제조해 전 세계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1880년부터 50여 년 동안 이곳에 각종 시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 혹독한 기후를 이겨내면서 초석을 채굴하고 가공할 200개의 광산이 생겨났고, 초석 가공 근로자들이 거주할 마을을 건설했으며, 가루를 해안까지 운반할 철도를 건설했다. 이 고원의 초석은 고품질이며 매장량이 풍부하였으므로 이 지역은 곧 세계적인 자연 질산염의 주요 생산지로 발돋움했다.

1920년대에는 유럽에서 합성 질산염이 생산되자 그 여파로 많은 작업장이 문을 닫았다. 1933년까지 대부분의 사업장이 생산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움베르스톤과 산타 라우라 초석 작업장은 마지막까지 남아 부분적으로 작업을 계속하였다. 이곳이 최후의 작업장인 셈이다. 지금은 방문객들을 접견하는 건물과 방문객용 화장실 말고는 어떤 건물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곳 작업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기술과 사회 체계를 대표하는 동시에, 몇몇 사람들에게 주어질 막대한 부와 번영을 위해 고된 공동생활을 했다. 고원에 사는 팜피노들은 현재 더 나은 작업 조건을 위해 싸우는 사회변혁 투쟁의 개척자들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들의 독특하면서 창조적인 문화는 영화와 인쇄물을 통해 칭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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