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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 지구 [Holašovice Historical Village Reservation]

  • 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 지구
  • 제목 : 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 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Ron Van Oers
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 지구

상세정보

  • 국가 체코(Czech Republic)
  • 위치 남부 보헤미아 지방(South Bohemian Region)
  • 좌표 N48 57 35|||E14 15 10
  • 등재연도 1998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 지구는, 그 고장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건축 전통의 융합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건축 전통의 융합한 건축양식을 ‘남부 보헤미아 민속 바로크’라고 부른다.

    기준 (ⅳ) : 홀라쇼비체와 이 마을의 건물들은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중부 유럽의 전통적인 농촌 정착지 모습을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다.

요약
홀라쇼비체는 중부 유럽 전통 마을이 이례적으로 완벽하게 보존된 곳이다. 이 지역에는 ‘남부 보헤미아 민속 바로크(South Bohemian folk Baroque)’라고 알려진 18세기, 19세기의 뛰어난 전통 주택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으며, 중세시대 이래로 계속 유지되어 온 도시 배치도 잘 보존되어 있다.
목차
유산면적
11㏊
완충지역
368㏊
참고번호
861
본문

홀라쇼비체는 중부 유럽 전통 마을을 이례적으로 완벽하게 보여 준다. 이 지역에는 ‘남부 보헤미아 민속 바로크’라고 알려진 18세기, 19세기의 뛰어난 전통 주택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으며, 중세시대 이래로 계속 유지되어 온 도시 배치도 잘 보존되어 있다. 고고학적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부터, 빠르면 기원전 제2천년기부터 인류가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9세기, 10세기에 슬로바키아 인이 이곳에 정착해서 살았다.

10세기 말에는 프르제미슬로브치 왕가(Premyslid, Přemyslovci)의 지배를 받았으나 13세기 전반기 보헤미아 국경 지역이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는 설립되지 않았다. 최초의 문헌 기록은 1292년 바츨라프 2세(Václav II)의 문서에 남아 있다. 바츨라프 2세는 이 마을과 다른 여러 마을의 소유권을 비시브로드(Vyšsí Brod)에 있는 시토 수도회 수도원에게 주었다. 이 수도원은 1848년까지 이 마을을 소유하였다.

16세기 초반까지 이 지역에는 체코 사람들이 살았으나, 1521년 전염병이 돌아 보헤미아가 황폐해졌을 때 단 두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그러자 시토 수도회는 바이에른 주와 오스트리아의 다른 교구에서 정착민들을 데려왔다. 1524년~1530년의 수도원 문서에는 독일인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 마을은 한때 번영을 누렸으나 30년 전쟁(1618~1648)으로 모든 게 파괴되었으며, 그 뒤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았다.

농장 주택의 수는 16세기 초부터 17개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1895년에는 독일 출신 주민이 157명 있었으며 오직 19명만이 체코 출신이었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이곳에는 독일인이 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인이 추방될 때까지 체코 인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1827년 최종 토지대장에 따르면 ‘홀쇼비츠(Holschowitz)’의 농장 건물은 외양간을 제외하면 모두 석재로 되어 있었다. 이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1840년~1880년에 북부 보헤미아 마을에서는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남부 보헤미아에도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민속 바로크’라고 알려진 양식은 이 지역의 특징이 되었다.

홀라쇼비체는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에 있으며 체스케부뎨요비체(České Budějovice)의 서쪽 15㎞, 체스키크룸로프(Český Krumlov)에서는 북쪽으로 18㎞ 떨어져 있다. 가늘고 길게 이루어진 마을의 광장 주변에는 건물 120동이 있고, 또 십자가가 있는 작은 교회가 있으며, 외곽에는 좀 더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이 몇 채 있다.

역사적 보호구역은 확실한 토지 대장을 조사하여 원래 생겨났던 마을을 중심으로 지정하였다. 보호구역 안에는 창고 및 마구간 등 부속 건물과 정원 또는 토지와 함께 건축 기념물로 보호되는 23개 농장 주택이 포함되어 있다. 농장 주택은 박공지붕으로 건축하였으며 모두 광장을 향해 있다.

이 마을에서는 ‘농장 주택 8번(Farmstead No. 8)’의 규모가 가장 크다. 농가는 대개 방 2개로 이루어진 수수한 구조물에 아치형 천장이 있는 방으로 나뉜 긴 외양간이 붙어 있다. 외양간의 건물 정면에는 1861년이라고 시대가 명기되어 있다. 출입구 오른쪽에는 거대한 3층짜리 곡물 창고가 있는데 현재와 같은 형태는 19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마당 뒤쪽은 넓은 석재 외양간으로 막혀 있다. 이 외양간은 이전의 목재 구조를 대체하려고 19세기 말에 지은 것이다.

몇몇 곡물 창고와 외양간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은퇴자를 위한 거주지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건물을 재건축하였다. 농장 주택들 이외에 훨씬 작고 단순하게 디자인한 건물이 여럿 있는데, 농장 인부들이 숙소로 이용한다. 대장간과 대장장이 주택은 마을의 광장 중간에 있다. 이런 시설은 홀라쇼비체에 18세기 초부터 있었다고 한다. 원래 광장 서쪽에 있었는데, 1885년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건물은 모두 안장 모양의 지붕이 있는 1층짜리 주택이며, 대장간은 광장 쪽으로 아치 형태로 열려 있다. 이 건물들은 거주 목적으로 사용하므로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이 마을 광장의 또 다른 건축학적 특징은 성 얀 네포무스키(Nepomuk)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작은 교회 건물은 가느다란 구조물로 되어 있는데, 정면은 종 모양으로 높이 솟아 있다. 내부는 직사각형에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으며, 이를 가리는 아치형 채광창이 2개 있다. 한쪽 끝에 추녀마루가 있는 안장 모양의 지붕이 있으며 그 중심에는 등불 첨탑이 있다. 종이 달린 기둥이 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8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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