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자비드 역사 도시 [Historic Town of Zabid]

  • 자비드 역사 도시
  • 제목 : 자비드 역사 도시
  • 설명 : © UNESCO / Author : V
자비드 역사 도시

상세정보

  • 국가 예멘(Yemen)
  • 위치 호데이다 지방(Province d'al-Hudayda)
  • 좌표 N14 11 53.016|||E43 19 48
  • 등재연도 1993년(2003년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등재)
  • 등재기준

    기준 (ⅱ) : 자비드의 주택 건축과 군사 건축, 도시 계획은 고고학적·역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요소이다. 이곳은 예멘에서 유일하게 중앙 모스크와 수크가 포함된 전형적 이슬람 도시의 공간 배치와 사생활을 보장하는 가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이다. 자비드의 건축은 예멘 해안 평야의 건축 양상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기준 (ⅳ) : 자비드는 주택 건축과 군사 건축, 성벽 유적 잔해, 망루, 성채 등이 도시적·방어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우회적인 출입로(indirect access) 등을 갖춤으로써, 탁월한 고고학적 유적지로 남아 있다. 자비드의 주택 건축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티하마 양식의 마당 있는 가옥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기준 (ⅵ) : 자비드 역사 도시는 알라샤르 모스크(Alash'ar Mosque)의 고고학적 유물에서 볼 수 있듯이, 헤지라 초기의 이슬람교 전파와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선지자 마호메트(무함마드)의 동료들(companions) 중 한 명이었던 알-알라샤리(Al-Alash'ari)가 지은 이 모스크는 이슬람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만들어진 모스크였다. 자비드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예멘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지식을 전파하는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수 세기 동안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요약
자비드(Zabid)의 주택 건축과 군사 건축물, 도시 계획은 이 도시를 훌륭한 고고학적·역사적 유적으로 만들었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예멘의 수도로 번성했으며 이 도시에 이슬람 고등교육 기관이 있었기에 수 세기 동안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자비드는 예멘 서쪽 티하마(Tehama) 지역에 있는 해안 도시들 중 하나로, 강의 합류점 위의 얕은 산과 비옥한 범람원에 자리 잡고 있다. 자비드는 평면도가 원형인 요새 도시로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4개의 문이 아직 남아 있다. 물은 광대한 운하들로부터 공급 받았다. 이슬람교가 이 지역에 자리 잡았던 7세기 당시, 자비드는 이미 번성하던 중이었다. 자비드는 820년에 칼리프 알-마문(Caliph al-Mamun)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으로 보냈던 이븐 지야드(Ibn Ziyad, 지야드 왕조의 창시자)에 의해 발전했다.

자비드의 핵심부는 ‘아사이르(Asa'ir)’라는 이곳 최초의 모스크이다. 도시 서쪽에 대(大) 모스크(Great Mosque)가 소재하며, 도시를 향해 수크(souq, 시장)가 펼쳐져 있다. 자비드는 예멘에서 모스크가 가장 많이 밀집한 지역 중 하나이다. 총 86개의 모스크들은 대개 단순한 벽돌 구조로 되어 있지만, 일부는 정교하게 조각된 벽돌과 치장 회반죽 세공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 14개의 모스크는 라술 왕조(Rasulid period)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당시 예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는 최대 규모의 건축물 군집이다. 14개의 모스크는 모두 마드라사(madrasa, 고등교육시설)로서 기능했다.

도시 전역에 펼쳐진 좁은 골목들의 네트워크와 토착 건축물들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 형태로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구운 벽돌로 만든 가옥들은 응접실, 무랍바(murabba, 직사각형 방), 벽에 둘러싸인 마당으로 난 통로로 구성되며 모두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규모가 큰 가옥들은 높이가 2, 3층에 달하기도 하는데, 솜씨 좋게 조각된 벽돌 벽, 니치(niches), 천장 등과 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내부 장식을 갖추고 있다.

자비드는 좁고 막힌 길, 전통 가옥, 첨탑 등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일관적 복합건축물의 우수 사례이며 이슬람 시대 초기의 공간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도시 주변에는 공동묘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북서쪽의 묘지에는 모스크, 우물, 그늘진 나무들이 있다.

자비드의 이슬람 대학(고대 모스크와 마드라사)은 이슬람 지식을 획득하고 다양한 과학(이슬람 과학자들은 전반적인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세계 곳곳에서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비드는 이슬람교 전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완전성

이 유산은 적정 면적 안에 주택과 군사 건축물 등 도시와 방어적 구조의 필수 요소들을 모두 갖춘 뛰어난 고고학적·역사적 유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콘크리트 건물 건축과 전기 공급 시스템 설치로 인해 머리 위로 보기 싫게 얽힌 전선들이 늘어나고, 콘크리트나 파형 강판(corrugated steel sheeting)과 같은 현대식 자재를 많이 사용함에 따라 공지(空地)가 감소하는 등의 문제는 그 완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 유산의 시각적·물리적인 완전성은 새로운 개발과 잠식 현상으로 인해 그 구조의 40%가 취약해진 상태이다. 이러한 쇠퇴를 막고 부정적인 변화들을 되돌리는 작업이 시급하다.

진정성

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 모스크, 공간 배치, 전통 건물 등의 요소들은 건물들의 형태와 자재가 부패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상태이다. 도시의 북쪽과 동쪽에서 진행 중인 일관성 없는 개발 활동들도 유산의 보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비록 위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유산의 진정성은 어느 정도 남아 있으며, 공간 배치와 전통 가옥 복구를 통해 탁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보다 적절하게 복원한다면 더욱 향상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쇠퇴적인 경향을 되돌리는 일이 시급하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자비드 역사 도시는 1973년의 유물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도시 전체에 대한 종합 기본 계획이 2004년에 승인되었고, 도시 보존 계획이 현재 준비 중이며, 관리 계획 역시 이어질 예정이다. 또한 역사 도시 보존법이 곧 승인되어 시행될 예정이다. 예멘의 모든 역사 도시의 관리, 보호를 목적으로 1990년에 ‘예멘 역사 도시 보존을 위한 일반 조직(GOPHCY)’이 설립되어 이 유산을 담당하고 있다.

2007년부터 ‘독일 국제협력유한책임회사(GIZ)’가 운용하는 프로젝트의 지원을 통해 GOPHCY 자비드 지부의 활동이 강화되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주택 재건과 기간 시설 향상 사업 등을 통해 자비드의 극심한 쇠퇴를 해결하고,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GOPHCY가 장기적으로 본 유산의 보존, 지속에 필요한 사항들을 해소하고, 중기적으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쇠퇴적 흐름을 막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지원, 재원, 역량강화, 기술적·재정적 원조가 필요하다.

참고번호
611
본문

자비드는 이곳에 있는 이슬람 대학으로 인해 여러 세기 동안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라술 왕조 시대였던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자비드는 예멘의 수도였다. 자비드의 건축은 예멘 해안 평야의 건축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자비드의 주택 건축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티하마 양식의 마당 있는 가옥의 특성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자비드의 평면 구성은 타원형에 가까우며, 북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평평한 점토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자비드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비옥한 지역은 이슬람 세력이 자리 잡았던 631년 이전부터 이미 성장해 있었다. 자비드는 원래 알-후사이브(al-Husayb)라고 불렸는데, 언제 지명이 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820년경에 칼리프 알-마문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으로 보냈던 지야드(지야드 왕조의 창시자)에 의해 자비드가 발전하게 되었다. 지야드는 자비드를 타원형 평면 구성으로 조직했고, 요새를 건축했으며 운하 네트워크를 통해 물을 공급했다. 아울러 대 모스크가 지어졌으며, 그 전에 건축되었던 알-아사이르 모스크는 1012년까지 티하마 지역을 다스렸던 지야드 왕조의 후대 통치자들에 의해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자비드는 종교적 혁명가들로부터 두 차례 약탈을 당했으나 재건되었다.

예멘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자비드는 1021년부터 1159년 사이에 바누 나가(Banu Nagah)와 마디드(Mahdid)의 통치기에 고초를 겪었으며, 궁궐과 방어 시설 일부가 파괴됨에 따라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살라흐 앗딘 알 아이유브(Salah ad-Din al-Ayyubi, 살라딘(Saladin))의 형제인 투란사(Turansah)가 이 지역을 평정하자, 예멘은 총독이었다가 통치자가 된 라술 왕조의 다스림을 받으며 동쪽 지역에 있는 주도 세력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1216년부터 1429년까지 라술 왕조의 통치자들은 학문을 장려하고,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에게 코란과 과학을 가르칠 마드라사와 그들이 묵을 숙소를 지었다. 기록에 있는 62개의 마드라사 중 22개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을 위한 거처를 만들고 기존의 공공건물을 복구, 확장하기도 했다. 자비드는 타히리드 왕조(Tahirid dynasty) 통치(1454~1538) 기간에 정치적·경제적 중요성을 상실했지만 대학 도시로서의 기능은 유지했다. 그러나 오스만 왕조의 수도 사나(Sana’a)가 떠오르면서 자비드는 완전히 방치되었다.

자비드는 예멘에서 사나 다음으로 모스크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로, 86개의 모스크가 이곳에 있다. 자비드의 핵심부는 ‘아사이르’로 불리는 이 도시 최초의 모스크이다. 자비드 서쪽에는 대(大)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은 아마도 기도와 회의를 위한 공지(空地)인 고대 무살라(musalla)가 있었을 지점으로 추정된다. 수크(시장)는 아사이르 모스크에서 대 모스크를 향해 펼쳐져 있다. 골목길과 폭이 최소 2ⅿ인 길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도시 전역에 펼쳐지며, 이따금 작은 광장으로 이어진다. 자비드에서 유일하게 넓은 공지는 요새의 정면에 있으며, 길로 형성된 각 구획마다 가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각 가옥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직사각형 방(무랍바)으로, 방의 기다란 한쪽 면은 불규칙한 형태의 마당으로 이어지며, 마당은 길거리를 향해 나 있는 높고 밋밋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 마당의 모퉁이에는 우물, 화장실, 씻는 공간, 부엌 등이 있다. 자비드의 건물들은 주로 이렇게 구운 벽돌로 만들어져 있지만, 면적이 작은 일부 지역에는 초가지붕과 굽지 않은 흙으로 만들어지거나 재사용된 나무판자로 지어진 소박한 오두막들도 있다. 이러한 오두막들도 직사각형 방에 마당이 딸린 기본적 형태를 따르고 있다.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