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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나라의 역사기념물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

  • 제목 : 고대 나라의 역사기념물
  • 설명 : © UNESCO / Author : Giovanni Boccardi
고대 나라의 역사기념물

상세정보

  • 국가 일본(Japan)
  • 위치 나라현(奈良縣|||Nara Prefecture)
  • 좌표 N34 40 32|||E135 50 22
  • 등재연도 1998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고대 도시 나라의 역사 기념물은 중국 및 한국과의 문화 교류의 결과물로서, 일본의 건축과 예술의 발달을 훌륭하게 입증하는 사례이다. 중국과 한국은 이후의 일본의 문화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기준 (ⅲ) : 나라 시대에 일본 문화는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며, 이는 건축 유산에 잘 드러나 있다.

    기준 (ⅳ) : 현존하는 역사 기념물의 디자인과 왕궁의 배치는 고대 아시아 국가의 수도의 건축과 설계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사례이다.

    기준 (ⅵ) : 나라의 불교 사찰과 신사는 이들 종교의 지속적이면서도 영적인 힘과 영향력을 잘 드러낸 준다

요약
고대 나라(奈良)의 역사 기념물은 710년~784년까지 일본의 수도로서 나라가 국가로서의 기틀이 확립하면서 건축한 여러 건축물과 건축물의 터이다. 나라는 찬란한 번영을 누리면서 일본의 문화 근원지로 부상했다. 사원, 신사, 궁터 등 수많은 역사적 기념물들은 중요한 정치적·문화적 변혁기였던 8세기 일본 수도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목차
유산면적
617㏊
완충지역
2,502㏊
참고번호
870
본문

고대 도시 나라의 역사 기념물들은 중국 및 한국과의 문화 교류의 결과물로서, 일본의 건축과 예술의 발달과정을 훌륭하게 입증하는 사례이다. 중국과 한국은 이후의 일본의 문화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유적들은 일본의 문화적·정치적 발전 과정에서 중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 시대를 생생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710년 겐메이 천황(元明天皇)이 후지와라(藤原)에서 나라로 수도를 옮겼다. 나라는 이후 74년 동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헤이조쿄(平城京) 입지는 중국의 풍수지리 원리에 따라 선택되었다. 장안(長安) 등 중국의 도시를 모방하여 도시 계획을 세웠으며, 궁전, 불교 사찰, 신사, 행정기관, 가옥 등이 배치되었고, 도로도 격자 모양으로 설계했다.

면적은 2,500ha이고,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조궁은 중앙로의 북쪽 끝에 있고, 면적은 120㏊에 달한다. 헤이조궁에는 정치나 종교 의식이 거행되는 행정 기관이 있는데, 특히 대극전(大極殿), 조당원(朝堂院), 천황의 거처인 내리(内裏) 등이 있다. 행정이나 다른 목적의 건물들도 여러 있다. 이 시대 동안 왕실의 불교 진흥정책은 나라에서 집행되고 적용되었다. 쇼무 천황(聖武天皇)은 일본 각 지역에 사찰과 승원을 세우도록 명령했고, 745년 전국 사찰의 수장 역할을 하도록 도다이지(東大寺)를 건설했다. 784년 수도는 나가오카(長岡)로 이전되었고 약 9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지금의 교토(京都)인 헤이안(平安)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1184년까지 헤이안 시대가 지속되었다. 버려진 수도인 나라는 농경지가 되었다. 하지만, 사찰과 신사는 대부분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높은 지위를 누렸는데, 이는 왕실의 후원 덕분이었다. 이들 주위로는 난토(南都)라 알려진 새로운 도시가 개발되었다. 도다이지, 고후쿠지(興福寺), 간고지(元興寺),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주변의 지역들이 특히 번성했고, 이곳들은 16세기에 근대 도시로 발전했다.

도다이지는 여러 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금당(金堂)이라고도 불리는 대불전(大佛殿)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좌상이 있다. 대불전은 7개의 격실 구조로 된 목조 건축물이며, 불상의 높이는 대략 15m이다. 원래 후지와라에 있었던 고후쿠지는 710년 수도가 이전되면서 나라에 다시 세운 것이다, 간고지는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로서, 6세기에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가 세운 것이다. 원래 이름은 아스카데라(飛鳥寺)였으며, 718년에 아스카에서 나라로 이축한 것이다.

도다이지와 고후쿠지는 1180년 내란의 와중에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 사찰들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초기인 1185년 다시 건축되었다. 고후쿠지가 일본의 전통적인 와요(和樣)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면, 도다이지는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다이부쓰요(大佛樣) 양식이다. 나라의 사찰들은 무로마치 시대(實町時代, 1333년~1572년)에 이르러서는 고유의 특권을 상실했다. 간고지도 1451년 화재로 대부분 불타 버렸다.

사찰들은 화재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도다이지의 경우를 보면, 동탑(東塔), 강당(講堂), 승방(僧房), 대불전(大佛殿), 중앙문(中大門), 회랑(回廊 등이 모두 파괴되었다. 몇몇 건물들은 막부의 지원을 받아 에도 시대(江戶時代, 1615~1867) 초기에 재건되었다. 대불전의 경우 원래 크기의 2/3로 규모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현존하는 세계 최대(最大)의 목조 건축물이다.

도쇼다이지(唐招提寺)는 759년 중국 당나라의 고승(高僧)인 감진(鑑眞)이 불교 제자들을 위해 세운 것이다. 특이하게도 화재 및 다른 천재지변으로부터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주요 건물들로는 금당(金堂)이 있는데, 이는 나라시대에 세워진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로서 일본 사찰 건축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당은 원래 나라의 궁전인 헤이조쿄의 동조집전(東朝集殿, 고관접견소)을 옮겨 지은 것으로, 나라 시대 궁정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예이다. 이밖에 경전 보관소인 고루(鼓楼), 나라 시대의 창고인 경장(経蔵)과 보장(宝蔵)이 있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는 전설에 따르면 768년에 건설되었지만, 원래의 건물은 나라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영산(靈山)인 가스가산(春日山)과 미가사산(御蓋山) 기슭에 있다. 가스가타이샤의 건물들은 여러 차례 훼손되고 붕괴되었지만, 그때마다 새로 지어지고 복원되었다. 건물들은 신사의 경내에 있고, 전통에 따라 지붕이 낙엽송 껍질 재질로 되어 있어 주변의 자연 환경과 잘 어울린다.

가스가산 원시림의 자연 환경은 모든 신사의 필수 요소이다. 가스가타이샤의 경우 영산(靈山)으로 보존되어 온 가스가산이 그 역할을 한다. 이곳에는 신도와 참배객을 위한 산책로 외에는 어떠한 형태의 인공적인 요소도 없다. 헤이죠 궁터에는 왕실의 공적·사적인 업무를 위한 건물들이 있다. 정전(正殿)인 대극전(大極殿), 조당원(朝堂院), 내리(内裏), 집무실, 작업장, 상점, 마구간 등이 있다. 건물들은 대략 5m 높이의 방벽으로 둘러 싸있고, 성문이 12개 있다. 주 출입구는 남쪽 성벽 한가운데 있는 주작문(朱雀門)이며, 이 문을 통해 대극전, 조당원으로 연결된다. 대극전과 조당원은 왕궁의 가장 중요한 건물로서 조정의 의식이나 연회가 열리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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