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라싸의 포탈라 궁의 역사 유적군 [Historic Ensemble of the Potala Palace, Lhasa]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라싸의 포탈라 궁의 역사 유적군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티베트 자치구(Tibet Autonomous Region)|||라싸(拉薩, Lhasa)
  • 좌표 N29 39 28.512|||E91 7 1.812
  • 등재연도 1994년(2000년, 2001년 확장)
  • 등재기준

    기준 (ⅰ) : 포탈라 궁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건축물의 장식이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상상력과 디자인의 창조성이 발현된 뛰어난 걸작이다.

    기준 (ⅳ) : 티베트 건축의 절정을 보여 주는 포탈라 궁전의 예술적 가치와 규모는 현대 사회까지 전해지는 여러 사례 중에서도 신성한 건축의 탁월한 예이다.

    기준 (ⅵ) : 포탈라 궁은 세속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가 단일하게 통합된 실체로서 강력하면서도 이례적인 상징물이다.

요약
7세기 이래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으로 사용된 포탈라 궁(布達拉宮)은 티베트의 불교와 전통 행정의 중심지이자 상징이다. 백궁(白宮)과 훙궁(紅宮) 및 부속 건물들로 구성된 건물군은 라싸(拉薩) 계곡의 한가운데 고도 3,700m 높이의 홍산(紅山)에 세워져 있다. 또한 7세기에 건축된 조캉 사원(大昭寺)은 빼어난 불교 사원이며, 18세기 무렵 건축된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罗布林卡, Norbulingka)는 티베트 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라싸의 세 유적지는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독창성, 화려한 장식, 빼어난 경관이 조화롭게 통합되어 역사적·종교적 가치를 빛내 준다.
목차
역사적 배경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포탈라 궁의 건설은 7세기 무렵 토번의 손챈 왕조 시대에 시작되었다. 17세기 중반 달라이라마 5세가 재건축하였으며, 이후 여러 해에 걸쳐 개축과 증축을 거듭하며 현재의 규모에 이르렀다. 티베트의 초대 국왕 손챈감포(재위 609~649)는 티베트의 정치·경제·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티베트를 통일한 뒤 정치 군사적 이유로 수도를 라롱(Lalong)에서 홍산의 라싸로 옮겼다. 또한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추진하여,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네팔 왕국의 브리쿠티(Bhrikuti) 공주를 왕비로 맞았다. 그의 궁전은 3개의 방어벽과 999개의 방, 홍산 정상의 홍루(紅樓)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건축물의 복합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9세기 들어 토번 왕조가 몰락한 뒤 홍산 궁전은 황폐해지고 티베트 사회는 오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곳은 종교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2세기에 카담(Kadam)파의 형포 드락세(Khyungpo Drakse)가 이곳에서 설법을 전하였으며, 이후에는 같은 목적으로 격노파(格魯派)의 창시자와 그 제자들인 츠루푸 카르마파(Tshurpu Karmapa)와 총카파(Tsongkhapa, 1357~1419)가 사용하였다. 격노파는 15세기에 이르러 티베트를 지배하며 빠르게 발전하였다.

17세기 중엽 몽골 호쇼트(Khoshotd) 부족의 지도자 구시 칸(Gushri Khan, Güshi Khan)의 도움을 받은 달라이라마 5세는 카르마파 왕조를 물리치고 간댄포드랑(Ganden Phodrang) 왕국을 세워 드레풍(Drepung) 사원을 첫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홍산의 궁전은 손챈감포의 거주지였을 뿐 아니라 주요한 세 사원인 드레풍, 세라(Sera), 간댕(Ganden)과도 가까웠기에, 결국 정치적·종교적 지도력을 키울 수 있는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재건하기로 결정하였다.

재건 공사는 1645년에 시작되어 3년 뒤에 중심부인 백궁을 포함한 포드랑 카르포(Phodrang Karpo)가 완공되었다. 드레풍 사원에 머물던 달라이라마 5세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 포탈라 궁전은 후대 달라이라마 정부의 정착지이자 거주지가 되었다. 홍궁의 건설은 당시의 실력자인 상게 갸초(Sangye Gyatsho)가 주도한 것으로, 이곳은 달라이라마 5세가 죽은 후 그의 기념비이자 사리탑을 세우기 위한 장소였다. 1694년에 완공되었으며, 백궁 다음으로 큰 궁전이다.

포탈라 궁전은 궁전 사원과 불교 사원, 사리탑 등의 거대한 복합체이다. 사리를 보관하는 영탑은 달라이라마 7세, 8세, 9세, 13세의 개인 사원에 각각 증축되었다. 가장 최근의 것은 1934년~1936년에 재위했던 달라이라마 13세의 기념비이다. 로케시바라(Lokeshvara) 사원은 손챈감포가 수행한 곳이라고 알려졌는데, 사원이 있는 산의 정상에는 다르마(Dharma) 왕의 묵상동굴(Meditation Cave)도 있다는 사실은 특별히 언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궁전 건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두 장소는 이제 포탈라 궁의 복합건물군에 편입되었다.

조캉 사원은 중국 당나라 시대인 7세기 무렵 손챈감포의 재위 기간에 세워졌다. 손챈감포는 티베트를 통일하고, 데몬(Demon, 지금의 라싸)으로 천도하였다. 티베트의 불교는 도입 당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와 당나라 문성공주가 왕비로서 티베트에 오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832년 티베트 정부와 당나라는 협정을 맺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원 밖에 ‘당번회맹비(唐蕃會盟碑)’를 세웠다. 11세기 초에는 조캉사원의 첫 번째 재건이 진행되어, 사원을 광범위하게 보수하고 동쪽 편에 석가모니 불당을 새로 지었다.

이 밖에 사원 주위를 연결하는 복도는 벽화가 복원된 1167년에 증축하였다. 곡선을 이루는 기와 올린 처마는 13세기 초의 것이다. 13세기 중반 티베트 왕국이 재통일되는 기간에도 궁전 곳곳이 개발되었다. 이 무렵 석가모니 불당을 증축하고 새로운 대문과 다르마팔라 불당을 지었으며, 손챈감포와 문성공주, 브리쿠티 공주의 조각상을 세웠다. 또한 불당들과 황금기와 지붕들이 동, 서, 북쪽 방향으로 3층에 추가되었다. 총카파는 대기도축제(Great Prayer Festival)를 주도하여 15세기 초에 티베트 불교를 개혁한 격노파 학교를 세웠고, 조캉사원의 안뜰이 시작되는 부분에 지붕을 만들기도 했다.

티베트는 원나라(1279~1368) 시대에 공식적으로 중국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이후 1642년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황제 직위를 받은 달라이라마 5세는 포탈라 궁 복원 작업에 착수하여 30년에 걸친 공사를 진행하였다. 복원 작업은 상게 갸초(1679~1703)의 재위 기간에도 계속되었다. 조캉 사원의 대문, 천불랑(千佛廊), 벤다나 길(Vendana Path)을 만들고, 주 불당의 3, 4층도 이 시기에 증축하였다.

노블링카 궁전 유적지는 조용한 개울과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있고, 수많은 새와 라바첼(Lava tsel)이라는 동물이 사는 장소였다. 건강이 나빴던 달라이라마 7세는 치료를 위해 환경이 좋은 이곳에 머무르곤 했다. 1751년 중국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우야궁전을 지은 것이 노블링카 궁전 건설의 시작이다. 후대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으로 이용되고 각종 건물이 증축되면서 이곳은 포탈라 궁전 이후 티베트의 새로운 종교,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게상(Gesang) 궁은 1755년에 건축하였으며, 토론장도 들어 있었다. 1920년대의 초제(Tsoje) 궁과 젠센(Jensen) 궁은 그 시기 베이징에서 영향을 받은 달라이라마 13세가 세운 것이고, 게상 데제(Gesang Deje) 궁은 1926년에 지어졌다. 또한 탁탄 미규르(Tagtan Migyur) 궁은 중앙인민정부의 지원으로 1954년~1956년에 건축되었다. 노블링카는 1959년 달라이라마 14세 때부터 자치구 임시위원회 산하의 문화관리그룹에서 운영하다가 지금은 문화관리위원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유산면적
61㏊
완충지역
199㏊
참고번호
707ter
본문

포탈라 궁은 7세기 무렵 토번(吐蕃)의 손챈(松贊) 왕조 시대에 건설을 시작하여, 17세기 중반 달라이라마 5세가 30년에 걸쳐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개축과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라싸 계곡의 중심에 있는 3,700m 높이의 홍산에 자리한 포탈라 궁은 총 면적이 130,000㎡에 달하며, 높이는 110m 이상이다. 백궁은 궁전 앞 열린 광장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로 접근한다. 궁의 중앙에는 각종 종교의식이 열리는 동대전(東大殿)이 있다.

달라이라마의 집무실은 백궁 북쪽 면에 있으며, 맨 위층은 달라이라마가 개인 공간으로 사용한 곳이다. 백궁의 벽은 종교와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홍궁은 백궁의 서편에 있는데, 달라이라마의 유품을 보관하는 사리탑을 짓기 위해 만들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불상과 경전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홍궁 서쪽의 일광전(日光殿)은 달라이라마의 개인 수도원이다. 백궁과 홍궁 이외의 포탈라 궁 주요 구성물들은 북쪽과 서쪽 광장에 있고, 굳힌 흙과 돌로 지은 웅장한 궁전 벽은 동·남·서쪽의 문과 연결되어 있다. 조캉사원은 당나라 때인 7세기 무렵에 건축을 시작했다.

이곳은 티베트 궁중 사원으로 도입될 때부터 추앙을 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손챈감포(松贊幹布)의 아내인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석가모니상을 운반하던 중 수레가 우탕 호수(Wotang Lake)의 진흙에 빠졌는데, 바로 그 자리에 조캉사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장소가 용궁의 위치여서 사원이 지어지면 해로운 기운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647년에 사원의 초석을 놓았으며, 첫 번째 개축은 11세기 초에 진행되었다. 13세기 중엽 석가족(釋迦族)이 티베트 왕국을 재통일하는 동안 개발은 더 많이 진행되었다. 석가모니 불당 증축, 새로운 대문과 다르마팔라(Dharmapala) 불당 건설 등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조캉 사원은 라싸의 구시가지에 있는데, 나무와 돌로 지었으며 출입문과 뜰, 수도승을 위한 시설로 둘러싸인 불당, 건물 사방의 창고들로 구성되어 있다. 달라이라마 7세가 병을 치료하려고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노블링카 궁 건설은 1751년 우야궁전(乌鸦宫殿)에서부터 시작한다. 후대 달라이라마는 여름철 피서 공간으로 쓰려고 별채와 궁과 불당 등을 계속해서 증축하였다. 이후 이곳은 티베트의 새로운 종교,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보물 정원’이라는 뜻의 노블링카 궁은 포탈라 궁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라싸 강가에 있다. 이 유적지의 면적은 36㏊에 이르며, 여러 개의 궁과 불당, 그리고 부속건물과 넓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5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