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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기르 역사 도시 [Historic City of Trogir]

  • 트로기르 역사 도시
  • 제목 : 트로기르 역사 도시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트로기르 역사 도시

상세정보

  • 국가 크로아티아(Croatia)
  • 위치 스플리트-달마티아 주(County of Split-Dalmatia)
  • 좌표 N43 30 45|||E16 15 6.012
  • 등재연도 1997년
  • 등재기준

    기준 (ⅱ)(ⅳ) : 트로기르는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도시 배치 계획 구도에 부합되게 건축된 중세 도시의 완벽한 사례이다. 특히 이례적일 만큼 현대적인 간섭을 최소화하며 옛 도시적 요소를 보존하고 있으며, 이 도시의 모든 부분에서 사회적 · 문화적 발전의 궤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요약
트로기르(Trogir)는 도시의 지속성을 보여 주는 놀라운 예이다. 이 섬은 직교(直交)형 도로 계획을 지니고 있으며 이 도시계획은 헬레니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후 이곳을 지배한 여러 세력에 의해 많은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 요새 등이 건설되었다. 도시에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교회들과 베네치아 시대의 뛰어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함께 건축되어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트라구리온의 고대 도시는 기원전 3세기, 비스(Vis) 섬에서 온 그리스 식민지 주민들이 본토와 아드리아(Adria) 섬 사이에 있는 마니오스(Manios) 만의 서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이미 작은 정착지였던 섬)에 무역 정착지로 건설한 곳이다. 이 헬레니즘 도시는 거대한 돌로 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로는 ‘히포다미안(Hippodamian)’ 격자 계획에 따라 배치되었다. 고대 중심가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 선은 현재 주요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로마 시대에 이 도시는 로마 시민의 도시로 번영했으며, 후기 로마 시대에 도시는 좀 더 확장되었으며 다시 요새화되었다. 이곳에서는 로마시대 묘지가 많이 발견되었고, 그중의 한 곳에는 성당이 건설되었다. 비록 기독교 초기 시기에는 주교의 관할 지역이 아니었지만, 트로기르에는 큰 복도가 있는 2개의 성당이 자리 잡았으며, 이후 들어선 말일 대성당과 베네딕트회의 성 세례 요한 교회도 지금까지 전해 온다.

9세기 후반에 트로기르는 수도가 자다르에 있는 달마티아의 비잔틴 세력의 일부가 되었으며, 10세기 말에는 베네치아에 지배당했다. 중세 초기에 트로기르는 남쪽으로 확장됐고, 새로운 요새가 축조되었다. 12세기 초반에 달마티아의 세력이 들끓을 때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14세기 초반에 잠시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1420년에는 베네치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3세기부터 15세기에 많은 건물이 새로 건설되었는데, 이 기간에 대성당과 카메렝고 요새가 건설되었다.

또한 주 광장을 완벽하게 리모델링했으며, 두 번이나 요새를 재건하고 강화했다. 캄포 포르미오(Campo Formio, 1797) 조약에 따라 트로기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이양되었고, 잠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1918년까지 일리리아 지방에 포함되어 있었다.

유산면적
6.40㏊
완충지역
4.80㏊
참고번호
810
본문

트로기르는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건물이 있는 도시 배치 계획으로 건축된 중세 도시의 완벽한 사례이다. 이곳은 이례적으로 현대적인 간섭을 최소화하며 옛 도시적 요소를 보존해 오고 있다. 이 도시의 곳곳에서 예부터 오늘날까지의 사회적 · 문화적 발전 궤도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기독교 초기 시기에는 주교 관할 지역이 아니었지만, 큰 복도가 있는 2개의 성당이 트로기르에 자리 잡았으며, 이후 들어선 말일 대성당과 베네딕트회의 성 세례 요한 교회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9세기 후반에 트로기르는 수도가 자다르(Zadar)에 있는 달마티아(Dalmatia)의 비잔틴 세력의 일부가 되었고, 10세기 말에는 베니스에 지배당했다. 중세 초기에 트로기르는 남쪽으로 확장했고, 새로운 요새가 축조되었다. 12세기 초반에 달마티아의 세력이 들끓을 때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14세기 초반에 짧은 기간 동안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420년에 베네치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많은 건물이 새로 건설되었다.

트로기르 역사 도시는 거주 지역의 위치와 규모, 형태에서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을 받은 도시 배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대 시내 중심가인 카르도(cardo)와 데쿠마누스(decumanus)는 여전히 이용되고 있으며, 광장의 포장 면은 교차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이 작은 섬의 동쪽 끝에 있는 고대의 트라구리온(Tragurion,‘염소의 섬’)은 중세 초기에 확장된 것이다.

파시케(Pasike)의 중세 교외지역은 서쪽으로의 다른 배열에 따라 개발되었으며, 이후 요새로 둘러싸였다. 항구는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당량의 베네치아 요새가 ‘카메렝고(Camerlengo)’로 알려진 제노바의 요새를 포함하고 있다. 이전의 성당 부지에 건설되어 주 광장을 우뚝 서있는 성 로렌스 대성당은 1200년경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16세기 말에 완성되었다. 성 로렌스 대성당은 건축 기간이 지연되면서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곳곳에 반영되게 되었다. 성당에는 통로가 세 군데에 있는데, 각 통로의 마지막은 애프스(apse)로 끝나며, 서쪽 끝에 있는 출입구를 지나면 세례당이 있다.

여러 궁전 중에 시피코(Cipico) 궁전은 대성당의 서쪽 끝과 마주하고 있으며,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궁전 안에 건축물들은 도시 구간에 전체를 덮고 있는 하나의 단지이다. 이들 건축물의 연대는 대부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로마 시대 말기의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15세기에 건물주들은 당대에 가장 인기 있는 3명의 예술가에게 건물의 정면과 내부를 꾸미도록 했다. 도시 곳곳, 특히 성곽 주변에 당대를 호령하던 가문들의 궁전이 있는데, 이 궁전들은 대부분 고전주의 시대 후기나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반으로 건설되었으며, 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까지 모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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