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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Naples]

  • 나폴리 역사 지구
  • 제목 : 나폴리 역사 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F. Bandarin
나폴리 역사 지구

상세정보

  • 국가 이탈리아(Italy)
  • 위치 캄파니아 지방(Campania)|||나폴리(City and Province of Naples)
  • 좌표 N40 51 5|||E14 15 46
  • 등재연도 1995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산타키아라 교회나 누오보 성의 수녀회 복합 사원과 같은 뛰어난 건축물은 나폴리의 도시 조직과 전체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들의 특질들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합됨으로써 특별한 경관을 연출해 내고 있다.

    기준 (ⅲ) : 나폴리의 도시 조직은 지금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게 직사각형 격자형 도시 배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질서정연한 격자형 패턴 위에 정교하게 지은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기준 (ⅳ) : 나폴리는 거리의 패턴, 여러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나폴리 만에 자리 잡은 입지 조건 등으로 유례없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기준 (ⅵ) : 나폴리는 초기의 기독교 역사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폴리의 수호성인 성 야누아리오(St. Januarius) 등 많은 성자와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지하 묘지는 기원 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 만들어졌으며, 이곳은 순례자들의 성지가 되어 있다.

요약
나폴리는 기원전 470년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네아폴리스(Neapolis, ‘새로운 도시’라는 뜻)라는 도시로 건설되었으며, 그 모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오보(Nuovo) 성과 산타키아라(Santa Chiara) 성당과 같은 훌륭한 기념물이 풍부한 독특한 유적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기원전 7세기에 무역항이던 쿠마이와 인접해 있던 파르테노페(Partenope)는 쿠마이와 시라쿠사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에트루리아 함대를 패배시킴으로써 티레니아 해를 장악하려는 에트루리아 인의 야망을 종식시켰다. 나폴리는 기원전 470년경에 최초에 건설된 식민 도시 파르테노페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장소에 건설되었다. 나폴리의 어원은 그리스어 ‘네아폴리스(새로운 폴리스)’로, 새로 건설된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질서정연한 격자 도시 계획 위에 정교하게 지은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아테네는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곡물을 나폴리에 제공하였다.

기원전 4세기 말, 로마와 삼니움(Samnium)족 사이에 벌어진 삼니움 전쟁 동안, 나폴리는 황제의 동맹국으로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유사한 문화와 언어의 연결고리 때문에 그리스와의 관계도 유지하면서, 도시는 제국 시대 동안 남쪽과 동쪽으로 팽창했다. 62년과 79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신속하게 재건되어 도시의 가치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3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도시는 쇠퇴하여 일부 영토를 포기하였고, 4~5세기에 방어 시설을 수리하였다. 6세기 초, 이탈리아 재정복에 착수한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벨리사리우스 장군에 의해 이탈리아 반도는 라벤나를 수도로 하는 비잔틴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도시는 처음에는 라벤나에 의존했으나, 스테판(Stephen)이 공작이 된 763년부터는 자치 도시가 되었다. 나폴리와 라벤나의 문화적 관계는 이 시대에 세워진 많은 건축물과 교회나 수도원의 장식에서 엿볼 수 있다. 도시의 규모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재건축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그 후 시칠리아의 노르만 왕 루게로 2세(Ruggero II)에게 도시의 핵심 부분을 넘겨주면서 남부 이탈리아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후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될 때까지 여러 번 도시 이름이 바뀌었으며 여러 왕가의 지배를 견뎌야 했다. 1189년 나폴리 왕가와 독일 슈바벤의 명문 가문인 호엔슈타우펜(Hohenstaufen) 가(家)의 결혼이 성립되었다. 프레데리크 2세(Frederick II)는 1224년 나폴리에 대학을 설립하였다.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이 대학에 입학했다.

호엔슈타우펜 가(家)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여, 1265년에 성 루이(St Louis)의 형인 앙주의 샤를(카를로 1세)을 시칠리아의 왕좌에 앉혔다. 그는 수도를 자신의 왕국인 팔레르모로 옮겼지만, 나폴리는 앙주의 통치가 이어진 2세기 동안 번성하였고 행정 중심지와 항구 등의 규모를 확장하였으며, 많은 예술적·문화적 보물들로 산타키아라 성당과 산로렌초 마조레 성당 등의 건축물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442년 앙주 왕조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초대 아라곤의 왕인 알폰소 1세(Alfonso I)가 앞당겨 즉위했다. 그는 주로 토스카나 양식으로 지은 누오보 성을 포함해서, 도로의 구조와 방어 시설을 재건축하는 등 나폴리에 많은 건축물을 세웠다. 이어 잠시 프랑스 시대(1495~1503)가 시작되자, 나폴리는 스페인 제국의 지방으로 영입되어 총독의 통치하에 들어간다.

톨레도의 페드로 알바라즈 총독 재위(1532~1533) 동안은 비록 도시의 환경은 여러 가지로 개선되었지만, 나폴리를 포함해서 이탈리아의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다. 1738년에 체결된 빈 협정으로 스페인 제국의 필리페 5세의 아들인 샤를 2세가 시칠리아와 나폴리의 왕으로 승인되었다. 그리고 나폴리는 다시 한 번 자치 왕국 수도로서의 신분을 회복했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나폴리는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의 통치하에 들었고, 그 덕에 야심찬 도시 개발 사업이 추진되었다. 1815년 나폴리는 부르봉 가(家)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나, 1860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으며 그 후에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근대화가 더디어져서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참고번호
726
본문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오늘날의 도시 구조에는 그 도시의 유구한 역사가 간직되어 있다. 나폴리는 거리의 패턴, 여러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나폴리 만에 자리 잡은 입지 조건 등으로 유례없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나폴리의 중요성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도시 구조에 기인하며, 무려 2,500년의 도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식민 도시로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발굴을 통해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식민 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성벽 가운데 3개의 구역은 북서쪽에서 볼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은 대규모의 극장, 묘지, 지하 묘지 등 훨씬 더 구체적이다.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 지역의 거리 구획은 이 같은 고전적인 기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의 시기에는 교회 건물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성벽 바깥쪽의 산 젠나로 교회(San Gennaro), 산 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교회, 성조반니 마조레 교회(San Giovanni Maggiore) 등은 4세기 및 5세기 건축의 유물이다. 14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의 산타 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 예배당은 나폴리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알려져 있다.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 성은 노르만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가장 구체적인 유적이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Lucius Licinius Lucullus)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요새 겸 수도원으로 세워진 그 건물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축이 이루어졌으며, 17세기 말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노르만·슈바벤 시대에 지어진 도시는 거의 고전적 성벽 내부에 남아 있었지만, 앙주 왕가가 들어서자 마을 외곽이나 주변 마을로 흡수되거나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서양 예술과 건축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고딕 양식이 국내의 건축과 종교 예술 분야에 만연했다.

앙주 왕가 기간 동안에 새로운 성당, 산 로렌초 마조레(San Lorenzo Maggiore) 성당, 산 도미니코 마조레(San Domenico Maggiore), 산타키아라와 그 밖의 교회 건축물, 그리고 누오보 성, 타란토 왕자의 카푸아노(Capuano) 성과 궁전과 같은 일반 건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의 강한 영향을 받아 나폴리에는 정교한 프로방스식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아라곤 왕조가 즉위하자 많은 건물이 지어졌으며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성벽을 새로 단장하고 보수 개선하였다. 나폴리의 르네상스 유산은 대부분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작품이고, 일부는 카탈로니아의 건축물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궁전은 이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산타 카테리나 포르미엘로(Santa Caterina a Formiello)와 몬테올리베트 복합 단지(Monteoliveto complex) 등 많은 주요 교회 건축물들이 이 시대에 세워졌다.

16세기 초, 이후 두 세기 동안 이어지는 스페인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이때 방어 시설을 강화하게 된다. 특히 톨레도의 페드로 총독이 다스린 20년간,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그의 구상 중 일환으로 도시 정책이 수립되었다. 1600년에 왕궁을 짓고, 한쪽에는 플레비시토(Plebiscito) 광장이 건설되었다(1510~1593). 교회 건물에는 분수대, 자선 기관 단체인 몬테 데이 포베리 베르고그노시(Monte dei Poveri Vergognosi), 산타고스티노 데글리 스칼치(Sant’Agostino degli Scalzi), 카포디몬테에 있는 예수회 학교 박물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 도시는 외곽으로 계속 뻗어 나갔고, 이곳 역시 대규모의 종교 건축물과 일반 건물들이 세워졌다.

성벽의 내외부에 조성한 구역은 국적, 사회 계급과 사업 업종별로 구별하였다. 항구도 17~18세기에 걸쳐 도시의 증가하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성장하였다. 19세기에는 도로의 계획에 급진적인 변화를 보인다. 페르디난트 6세(Ferdinand IV)의 재위 당시 세운 메르카토(Mercato) 광장이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이후 목재로 지은 막사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1860년 대통합으로 대대적인 사회복구 계획과 사회 재건 사업이 벌어져 빈민가를 깨끗이 청산한 결과, 초기에 세웠던 많은 건축물들이 제거되었다. 도로 역시 구 시가지의 도로를 부수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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